K320: 지도 교수님들 (2)

근래에 내가 쓴, 지도교수들 1 과 2를 다 읽었고, 내용을 다 기억을 한다는 가정하에, 이 글을 추가함. 부분적인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

정말로 내가 인간적으로 배운것이 있다고 생각이 드는 교수들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였고,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가 않은 교수들은 , 당연히 언급을 안하였고, 결코 존겅심을 저절로 준 교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머리는 좋아도, 이기심으로 가득찬 인간도 있었고, 학생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이, 기계적으로 강의 내용을 되풀이 하기만 하면, 괜찬은 연봉을 많으면서, 권위도 있다는 직업에 만족을 하는 교수도 있었슴.

지도 교수들 4, 를 쓰면서, 좀더 credit 을 주어야 할 사람들에 관해서 쓸것임. 이것은 지난 1,2 편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야 하기에 쓰는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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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전공 분야에 제한해서 썻기에, 전혀 이해를 못하는 회원분들도 많을 것이고, 부분적으로 이해를 하는, 이공계 전공의 회원은 꽤 많으니라 봄.

그리고 미국의 교수들의 배경에 대해서, 대부분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이 되겠으나, 일부는 현재의 교수에게는 전혀 적용이 않되는 것도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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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현재의 미국의 교수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안되는 것이,

회원분들이 거의 다 알듯이, 내 나이가 환갑을 약간 넘겼기에, 80년대 초에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의 지도 교수들의 배경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하고, 교수들의 학문적인 배경도 자세히 이해를 해야 하기에, 조금 구체적으로 배경 설명을 하였슴. 이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려는 것임.

80년대초 미국에서 학부생일때부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대학원을 마칠때가지, 교수들은, 크게, 고참, 중참, 신참 교수로 나눌수 있는데, 내 기준임.

아주 고참 교수들은, 대부분 고참 교수들의 지도 교수여서, 생존해 계시거나 명예교수로 계신경우는, 고참 교수에 대한 , 학문적이고 학맥적인 영향력이 몹시 컸는데, 내가 직접 강의를 들을 기회는 없었고, 만나서 악수를 한정도. 미국의 경우, 한국의 대학과는 다른 영향력.

고참 교수들은, 1945년 전쟁이 끝나기 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이고, 상당수는 유명한 Manhattan Project 에 참여를 했던 경우.

그래서 종종, 그 프로젝트를 했을때의 여러가지 분위기나 경험을 얘기해주엇는데, 아무도 그것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이론과 실험을 보조하는 연구였다는 것을 안 경우는 없었슴.

중참교수들은, 45년이후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들인데, 대부분은 역시 Manhattan Project에 대학원생 연구원으로 참석을 한 경우인데, 군대에 연구원으로 입대를 해서, 전쟁 현장에는 가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부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 통역병이나 정보대에서 일을 한 경우도 있었고, 한 분은 한국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여한 경우도 있는, 전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이 아주 부흥할때, 수학과나 물리학과 교수 생활을 시작한 경우.

신참교수들은 60년대 월남전 반대 운동시절에 , 대학/대학원생이었거나, 막 교수로 임용된 교수들. 중참교수들은 그때쯤 안정적인 교수 생활을 하였겠지만, 신참교수들은 월남전에 안끌려 가려고, 대학교에서 반전시위를 극하게 하거나, 징집을 피하려고, 히피 생활도 하고, 마리화나 피우면서, 기존미국 사회에 대한 반감이 아주 극에 달했던 시절을 보냈던 세대. 하지면 그런 turbulent 시대가 끝나가자, 안정적인 교수가 되어간 세대.

중참이나 신참교수들은, 히피세대를 거쳐서인지, 거의 다, 긴 머리에 턱수염, 콧수염을 기른 세대. 젊었을때 사진을 보면, 다 그렇고, 니이든 사진에서는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었을뿐.

고참세대 교수들은, 거의 다 흰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서, 강의실에 나왔다면, 우리가 학생때는 아주 젊은층이엇지만, 머리가 아주 짧은것이 유행이었는데, 교수들은 다 장발을 넘어서, 길게 길러서 묶고 다닌, 옷차림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

물론 내가 대부분 캘리포니아지역에서만 , 학교를 다녔기에 , 분위기가 더 그러기도 하였을 것임. 동부에서 학교를 다닐때는, 나도 색있는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 멕고도 다녔는데.... 흔히들 영국이나 미국 동부의 학생 차림을, Oxford style 이라고 하는데, 서부의 대학에서 그러고 다니면, 관심을 집중 받음.

현대 미국의 많은 사회적인 이슈를 학생으로서 교수로서 다 직접 경험한 세대라서,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었느냐에 따라서, 생각의 틀이 몹시 다르고, 특히 히피 세대를 거치면서 히피 생활을 햇던 세대의 교수는, 옷차림에서부터 확 다르고, 생각하는 틀도 확 달랐슴.

그리고 아주 중요하게 이해를 해야 하는것이, Manhattan Project 에 박사연구원으로 혹은, 대학원생 연구원으로 참여를 하였건간에, 그 프로젝트가 인간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라알려지자,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과학자들이, 개발을 중단해 달라고 청원을 냇고, 그래서 Oppenheimer 같은 최고 책임자는 쫒겨 났는데, 사회경험이 거의 없는, 신참 박사나, 대학원생 연구원들은, 상당수가 그후에 쫒겨났고, 다른 직장에도 취직이 힘든 경우가 대부분 이었슴.

그래서 나에게는 수학이나 물리학교수였지만, 전공을 바꾸어서, 화학과 대학원생이었다가, 수학과로 바꾸거나, 물리학 전공에서 수학으로 바꾸거나, 전기공학에서 수학으로 바꾸는등, 전공을 바꾸어서, 다시 대학원을 옮겨서 전공을 바꾸어서 대학원을 마치고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경우도 있었고, 수학박사 학위 받고서, 교수로 임용이 안되어서,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십여년을 일하다가, 다시 수학교수로 임용이 된 경우도 있고, , 고등학교 과학선생을 하다가, 다시 대학에 교수로 온 경우도 있었슴.

길게보면, 교수들의 Manhattan Project에 참여했다는 것은, 학문적인 경험과, 이력서에 엄청나게 도움이 된것은 사실이나, 살살무기 개발 반대에 싸인을 했다는것으로, 중간에 5-10년씩 아주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던 , 우울하고 슬픈 인생사도 대부분 갖고 있었슴.

고참 교수중에는, 30년대 미국 대공활때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국민학교를 중퇴하거나, 국민학교만 졸업하고서, 어린이 노동자로 일을 했지만, 워낙에 머리가 좋으니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하고서,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한 경우도 몇분 있었는데, 11-12 살에, 공장에서 주급 $3 받으면서, 하루에 12시간씩 6일을 일하면서, 거지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금새 돈벌이가 되는 회계 같은것을 공부할 생각을 안하고, 현실의 돈벌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순수수학이나 이론물리학을 전공을 할 생각을 하고서, 공부를 했으니....

30년대 댕공활때, 하루에 한끼를 먹을수 잇어서 행복했었다는 11-12세 소년의 경험은, 참.. 아주 짠함.....

한 교수는 , 대공황때 너무 가난해세, 국민학교 중퇴후,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을 해서도 월반을 해서, 대학원에 진학. 유일한 졸업장은 박사학위증 하나인데, 제일 부러운 사람은 국민학교 졸업증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국민학교를 중퇴해야 했을때, 엄청나게 부모를 원망했고, 그후로 20-30년을 부모와 연락을 끊고서 살았다고 ....

그리고 "아주 고참" 교수들은, 고참 교수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교수들인데, 즉 세계 1차대전으르 경험한 세대. 세계사를 책으로도 배웠지만,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서 듣게됨.

그 당시의 미국의 학문은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는 권위가 떨어져서, 아주고참교수들은, 미국의 하버드, ,MIT, 예일, 프린스턴, 콜럼비아등 미국의 명문 대학 학부를 나온후에,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 영국, 프랑스, 독일의 명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후에 미국의 유명 대학에 교수로 자리를 잡는, 아주 흔한,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던 시대.

그래서 나의 고참교수들은 미국대학 박사들이지만, 그들의 지도 교수인, 아주고참교수들은, 수학과 물리학전공인것을 감안하면, 영국의 캡브리지나 옥스포드대, 혹은 독일의 Goettingen 대학 박사들.

지금은 아주고참교수, 고참교수, 중참교수분들 거의 다 돌아가셨고, 신참교수님들의 2/3는 돌아가신 상태.

지금 미국의 수학, 물리학 교수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교수들도, 내가 언급한 학문적인 배경을 갖은 분들은 , 전혀 안계시다고 할수가 있기에, 지금은 적용이 안됨.

하지만, 내가 학생 때에는, 그분들의 직접 경험을 아주 자세히 들을수가 있었슴.

고참, 중참교수님들은, 젊은시절, 적국인 읿본과 전쟁을 하던 중이었고, 그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듣기는 하였지만, 그 당시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다고 , 적국땅이라고 알고 있다가,

한참 세월이 지나서, 한국인을 지도 학생으로 받느냐는, 간단히 결정할수 없는 문제라고 고민이 있었다고 들었슴.

그리고 전공을 여러곳을 넘나드는 연구를 하는데, 고참과 중참 교수들의 경우, Manhattan Project 에 참여 하였다가, 살상무기개발반대안에 싸인을 하였다가, 불이익을 당했을때, 수학과 물리학하이, 가장 가깝고 비슷하기에, 수학전공은 물리학으로, 물리학 전공으로 억지로 바꿀수 밖에 없었기에, 연구의 방향이, cross-over 하게된 이유도 있슴.

아뭏든 지금의 미국의 교수들에게는 적용이 안되는 교수들의 배경이지만, 나의 지도교수들을 언급할때는 ,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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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미국이 백인 교수들에게도 대부분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 유대인계 백인이냐, 아니냐임.

일단 영국 출신의 미국 백인 교수. 나의 수학과와 물리학과 교수중 절대다수는 아니었고, 2번째 다수인데, 대부분 성격이 온화하고, 말투도 미국식 농담이라는 것을 섞어가면서, 대화하기가 몹시 편했던 미국 백인 교수들. 동부나, 서부나, 중부출신이라는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으나, 남부출신 백인 교수는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못 보았던것 같음.

절대 대다수도 2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유대계 백인이냐 아니면, 유럽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웨덴, 폴란드 인인데, 미국으로 2차대전중에 망명으로 왔거나, 전쟁후에 이민을 온 유럽게 유대인 출신 백인 교순로 , 둘로 나뉨.

간단히 말하면, 차이가 거의 없는데, 당연히 미국태생 유대인은 영어가 훨씬 유창한데 비해서, 유럽출신 유대인 백인은, 영어가 조금 약하다는 차이이지만, 그래도 유럽인은 영어를 아주 잘함.

하지만 자신들이 유대인출신이라는것을 숨기지 않고, 히브리어로 된 책을 항상 갖고 다닌다거나, 로고가 새귄 책을 갖고 다닌다거나 하면서, 티를 냄.

근데 유대인출신들이, 수학이나, 물리학게의 절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 지난 100년 넘은 현실이어서, 그들끼리의 아주 막강한 network 을 형성하고 있슴.

특히 뉴욕부근 출신이라면, New York Univ, Columbia Univ, Adelphi Univ, Yeshiva Univ 등에서 엄청난 문화적인 유대감을 갖고서 교류를 함. 다른 이공계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봄.

내가 유대계 백인 교수들하고 몹시 친하게 지낼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유럽유대인들은 예전엔 Yiddish 라고, 지금의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짬뽕된듯한, Yiddish 어를 주로 썼기에, 내가 Yiddish 어를 조금 했기에, ... 이 동양놈이 우리가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겠어 하면서, 막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것도 이유가 되고, Yiddish 어을 배웠을 정도로, 지식세계가 넓구나 생각한 이유도 있었을 것임.

아뭏든 그들은 한국인을 이해를 못해도, 난 많은 유대인을 이해할수가 있었고, 그들의 말로 대화를 할수가 있었슴.

그리고 아주 적은 숫자지만, 영국출신의 영국 영어로 말하는 영국인 교수. 너무 전통과 격식을 중요시 하는 , 영국의 생활에엇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온 경우. 일부는 미국은 너무 자유스럽다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도 하였슴.

그리고 러시아 출신, 러시아의 Leningrad Univ , Moskva Univ 에서 수학이나 물리학 박사를 받은후에, 곧장 칼텍이나, 버클리, 스탠포드대학에 정교수로 올 정도로 , 미국 학계에서 인정하는 러시아의 천재들. 난 4명을 아는데, 다들 러시아 박사학위후에, 미국대학에 정교수로 임용된경우.

그리고 위의 어느것에도 해당이 안되는, 여러나라 출신 교수들. 그들은 미국에 적응을 해야하고, 안정된 자리도 잡아야 하기에, 그런 교수를 지도교수로 두면, 학생들은 엄청나게 고생을 하게됨. 공부는 쉽게 할수 있어도, 학생에게 도움이 안되는 교수들이 대부분.

교수와 학생은, 일종의 계약된 비지니스 관계. 학생은 교수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학위를 받게 되고, 교수는 지도 학생의 도움으로 연구를 완성시켜서, 학설을 내는 것이고. 면담을 통해서, 서로가 성격이나 태도가 비슷한지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으, 서로가 성격이 궁함비 맞는지를 파악하는 것으 힘듬.

결국, 학생은 A+, A 라는 성적으로 교수에게 appeal 하고, 교수는 학생에 대해서 달리 학문적인 능력을 파악할 기준이 성적밖에 없다보니, A+, A 받은 학생을 A- , 받은 학생보다 더 선호하는것은 당연.

교수가 학생을 차별한다고, 동양인이라고 백인학생에 비해서 차별을 한다는, 한국 유학생을 보면, 꼭 그말을 하게됨. 성적이 다는 아니지만, 성적외는 보여줄것도 없고, 판단할 기준도 없다고.

그리고 교수에 대한 첫인상과 학생의 자세는, 한국의 대학과는 완전히 달랐슴. 한국에서는 절대로 교수와 같은 위치에 있거나, 질문을 해서는 않된다는 보이지않는 제한이 있어서, 그선을 넘으려고 하면, 다른 학생이 막을 정도인데..

전공이 다른 한국 유학생들이, 내가 거침없이 교수들에게 질문을 하는것에 충격을 받고, 교수들에게 너무 직접 질문을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할 정도로 , 한국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경직되어 있슴.

일단 173센티인 내가 , 우리세대의 동양인, 한국인으로는 평균은 넘는 큰 편의 제일 작은 키인데 비해서, 백인 남자의 평균키가 183 센티이고, 190이 넘는 백인 교수들도 여러분 있어서, 일단 마주하면, 난 올려다 보아야 하는데세, 위압감을 느끼게 되었지만, 부담을 안주려고 괜한 맘 고생을 하는, 백인 교수들을 항상 보게됨. 가까이 서면, 내가 너무 올려다 보아야 해고, 키큰 백인교수는 내려다 보아야 하기에, 거리를 두고서 서로 보아야 목이 안아프게 됨.

몇몇 지도 교수는, 190이 되는 키에, 지도하는 학생하고는, 연구실에서 보다, 같이 걸으면서 대화하기를 편하게 느끼기에, 바깥 공기를 쐬면서, 걸으면서 대화를 하는것은 좋으나, 너무 키차이가 나고, 엄청난 다리 길이에 차이가 나서, 보폭에도 큰 차이가 나니, 교수는 천천히 걷는다고 하여도, 나는 뛰어야 하는 상황.... 보는 사람에, 나무에 매미가 달려 있는것 같다고 , 웃는데... 난 뛰면서 대화 하려니, 숨이 찬 상태.

연구실에서 1-1로 대면하면, 너무 심각해 질수가 있기에, 밖에서 걸으면서 1-2로 대화를 하면, 무거운 주제라도, 너무 무겁지 않게 대화를 할수가 있슴.

일단 겉모습에서 부터 확 차이가 남.

우리세대의 한국의 한국 학생에게, 교수들은 대부분, 나보다 키가 작은 편이어서, 내려다 보아야 했는데....

아뭏든, 미국 태생 백인 교수들은 대부분 학생과의 거리가 가장 적고, 특히 실험실에 있을때는, 완전히 동료같은 느낌이넫 비해서, 유럽출신 백인 교수들은, 철저히 학생과 교수라는 구분을 확실히 하려고 해서, 실험실에서도, 이쪽은 교수자리, 이쪽은 학생자리라고 확 구분이 됨.

그런식으로 구분을 하면, 미국태생 백인 교수중에는, 자신의 연구실 열쇠를 대학원생에게 주어서, 맘껏 들어갈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유럽출신백인 교수중에는, 내 경험으로는 대학원생에게 연구실 열쇠를 주는 경우는 없었던것 같음. 물론 나의 경험으로 제한하기에, 대부분 그런지는 알수가 없슴.

그리고 내가 교수들에게 좀더 대등하게 대할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1982년부터 콤퓨터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하여서, PC 를 사용한 정도가 아니라, super computer center에서 일을 하면서, scientific computation 을 하였기에, 내가 12년정도 학부와 여러 대학원을 다녔는데, 버클리에서의 제일 마지막 학기를 제외하고서는, 가난해서 먹고 살기위해서 였지만, 학생으로서 일주일에 20시간씩 computer research lab 에서 일을 하였기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즐길수가 없었고, 그래서 교포 여학생을 만나서 결혼에 이를 시간이 모자랐지만, scientific computation 엔 엄청난 경험이 쌓인 technical staff 수준이었기에,

수학자나 물리학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연구원이기도 하였고, 내 나름대로 연구자금/장학금을 확보할수가 있어서, 교수가 주는 장학금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니, 교수가 하는 말이 맘에 안들으면, 거부할수도 있고, 더욱 과감하게 질문을 할수도 있었기 때문. 장학금이 교수에게서만 나온다면, 교수 눈치 보기에 바쁘지, 교수하고 싸울일도 없을것임.

UCLA 수학과 대학원 첫학기에, 3명의 지도교수가 바뀌어서 4번째 교수가 지도교수가 되었으니... 칼텍 수학과 첫학기에도 교수와 싸워서, 지도교수를 바꿨지만, 칼텍은 수학공부할데가 안된다고 느껴서, 물리학 공부에만 몰두하게 되었슴.

Stanford 도 3주 다니다가, UC Berkeley 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스탠포드대 수학과를 제대로 알기회도 없이, 좋아하거나 싫어할 기회도 없이, 면담한 교수 몇분이, 왜 UC Berkeley 수학과는 고려 안했냐고 묻기에, 입학 허가는 받았지만, 스탠포드를 선택했던 상황이었기에, 그러면 그냥 버클리로 가자 하면서, 정하게 됨. ... 이유같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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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언급을 하였지만, 버클리의 Canny 교수의 AI Lab에서 일을 하였다면, 나의 콤퓨터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을 할수가 있었으리라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몹시 아쉽게 생각함.

Canny 교수는, 전자공학으로 학부를 햇다가, 대학원에서 CS를 했기에, 이론 위주로 공부한 나에게는, 실제 응용 경험이 많은 Canny 교수와 학문적인 역활 분담을 함으로서, 최대한의 synergy 를 낼수 있었다고, 나중에에 깨닭게 되었슴. AI를 더 깊이 연구하지 못한것이 아쉬움. 수학적인 AI는 할만큼 연구 했는데, CS 쪽으로 AI응용을 해야, 제대로 활용이 되는것인데...

버클리대 수학과의 Borcherds 교수는, 수학 교수들 사이에서 , 수학 천재로 인정을 받고, 대답을 구하는 경우. 내가 여러 advanced algebraic geometry 과목을 듣는데, 여러번, 어떤 주제를 강의하던 교수가, 이것은 교과서에 이렇게 나와있지만, Borcherds 교수하고 토론을 해보니 , 다른 학설을 내는데, 그것이 맞는것 같다고. 이 뭊제에 관한 시럼은 안낼것이지만, 이런 교과서의 학설과, Borcherds 교수의 학설이 다른데, 시간이 흐르면 Borcherds 가 옳다고 증명이 될것 같다고, 기억하라고 ..... 여러 교수가 강의하던 것이 인상 깊었슴.

우리 학생이야,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야지....

버클리 수학과에 천재 교수들이 많았지만, Borcherds 는 진짜, 우리가 천재 수학교수라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천새 수학교수.

하지만 일반 학생들의 경우는, 영어 발음이 나쁘다고... 영국출신 이라서, 영국식 영어를 쓰기 때문에, 그리고 영어 철자도 때로 틀리다고,... 영국영어로 철자를 쓰니, 미국영어 철자와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소한 것으로, 강의 교수 바꾸어 달라고 수학과 사무실에 complain 을 한다니.... 그래도 잘 버티고 있슴.

버클리 수학과의 Hartshorne 교수는, 하바드대학의 수학과 교수로 있을때 배출한 여러 PhD 가 , 내가 다른 대학에 다닐때와 버클리에서 기하학과 교수로 강의를 하였기에, 버클리에서 기하학지도교수를 정해야 할때, 그냥 밀려서 지도 교수로 정해야만 했슴. 잘 모르면서 , 선택권도 없이 정했는데, 나하고는 스타일이 않 맞아서, 서로가 고생을 한것 같음. 최소한 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슴. 핫숀교수는, 자신도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일주일에 세번, 딱 예약한 시간외에는 면담을 안했슴.

마지막 년도에, Stallings 교수를 만나면서, 왜 진작에 만나지 못햇나 하면서, 너무 원통해 하였슴. 학부 2학년대 만났다면, 난 수학에서도 기하학 공부만 하면서, 대학교수로 연구에 몰두했을 것임. 나의 학문 career 에서 가장 아쉬운것임.

핫숀교수와는 달리, 칼텍 물리학과의 Kip Thorne교수는, 일주일에 6일은 마주쳐서 면담해야 했던 교수. 7일중에 6일이라. 일단 칼텍 캠퍼스가 작아서, 하루에 3번이상은 마주 치기도 하지만, 교수 면담도 해야 하는데, 7일중에 6일이라. 칼텍 물리학과는, 그렇게 공부하며 연구할 사람만 오는 곳이라는데야, 나보고는 넌 그렇게 잘 적응하면서 다니지 않았느냐 하는데..... 겉 보기에는 그래도, 마음은 갑갑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말은 못하겠고.

사실 바꿀 다른 물리학 교수를 찾지 못해서 계속 같이 있어야 하기도 했지만, 미국 백인 남자 교수 특유의, 여유롭고 편하게 대화하려는 , 미국 영어를 쓰는 , 그당시에는 젊은 교수 였기에, 아주 딱딱하고 편견이 심했던, 유럽 유대인 출신 교수들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해서, 그대로 지도교수로 둘수 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나에게는 고문관.

금발을 길게 느러트린, 히피세대의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겉모습만 히피처럼 하고 다니고, 생각은 완전히 보수적이었는지도 모름.

칼텍엔 중국계 학생만 20-25%라서, 중국인 만의 network 이 아주 강했씀.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 당시엔 나도 중국어 사용하면서, 한국인과 어울리려는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지금까지 어울려 지내고 있씀.

하지만 한국인이건 백인이건, 거의 교류하지 않고, 같은 중국인들끼리만 어울려 지내는, 중국인들만의 network 이 엄청나게 강했슴.

내가 다니던, 8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중국 학생들은, 그전 20년치의 여러과목 시험지를 갖고 있었슴. 그래서 과거 수년치 시험만 풀어도, 시험 준비는 거의 다 되는 상황. 과거 시험지는, 내가 중국인 친구들하고 아무리 친해도, 절대로 보여 주지 않았씀. 난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외에는, 다른 돌파구가 없었슴.

Caltech 이라는 이름의 premium 이 너무 강하다보니, 낙제 안하려고 지나친 부담을 갖다가 , 자살을 하는 학생은 대부분 중국인 학생들. 몇년전에 한해에 4명의 중국인 학생이 자살한 경우도 있었슴.

학부생때, 공부는 포기하고 안하던 중국 학생중의 일부는,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여자 만나서 결혼을 해야, 최고의 조건에서 할수 있다고, 학교밖에서 열심히 여자 만나러 다니면서, 어떤 미국에 있는 중국여자라도, 칼텍 학생으로 소개받을수 있다고 ,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슴. 근데 그것은 엄연한 현실.

지금은 동양학생이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도 엄청나게 동양인이 받았던 학교들. 버클리의 경우, 30%가 중국인 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아무리 중국인구가 늘어도, 버클리 학교에는 30%의 중국인 학생수를 유지한다고, 지난 40년간 계속 비난을 받는중.

근데 버클리의 한국인 학생이 , 교포와 유학생 포함해서, 6-8% 수준으로 높아짐.

UCLA 는 80년대 중반에, 한국인 학생이, 1,000명이 넘었고, 그후로 1,500명까지 늘었던 적도 있었슴. 지금은 모르겠슴. 학교에서 동양인 학생수를 제한 하려고 제한을 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슴.

UCLA를 University of Caucasians Living among Asians, 라고, 동양인 학생속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백인 대학이라는 용어는, 80년대 초에 생겼슴.

또한 MIT는 Made In China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 학생이 많았슴.

Caltech의 고등학생 science program엔, 50%가 중국학생들.

Caltech 물리학과의 Richard Feynman 과 Murry Gell-Mann 교수는, 물리학계뿐 아니라, 이공계전반에 걸쳐서 엄청난 신화를 남기 인물들, 과학자이 연구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남들이 모르게 하지 않고, 연구소 밖으로 끌어내면서, 즐기면서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그러면서, 반드시 물리학 연구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물리학은 재미로 공부할수가 잇다고 퍼지게 하고, 정부관리들을 만나서, 연구비를 더 타내는 방법도 공유.

일부는 거품이 너무 심한 교수라고 비난도 하는데, 물리학 교수라고 반드시, 물리학을 배울때만 만나는것이 아니고,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만날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또 하나의 현실은, 내 전공인 순수수학이나, 이론 물리학의 경우, 집안이 원래 부자가 아니라면, 교수 월급외에는 수입이 전혀 없다는 것. 다른 강의에서 밝힌적이 있었지만, 교수 월급은 교육과 경험에 비해서, 적은편. 일부 교수는 생활고에 몹시 쪼들리는것을 옆에서 보게됨.

5-60이 넘은, 아주 명먕있는, 미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수라도, 집 융자금 할부금 걱정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교수의 체면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업도 못갖고. 내 전공쪽은, 외부 자문의 기회가 거의 없기에, 특히 심함. 외부 자문이 많은 분야의 교수들은,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편.

법적으로, 교수는, 외부자문으로 벌수 있는 max 자문료가, 교수 월급만큼이고, 대학교와 교수가 50:50 으로 나누는것이, 법으로 제한되어 있씀. 연봉이 쎈 교수는, 외부 자문료를 더 벌수가 있고, 연봉이 약한 교수는, 외부 자문료를 훨씬 덜 벌고. 하지만 순수수학이나 이론 물리학자들은, 외부자문의 기회가 거의 없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을 쓴다면ㄴ, 특별 계약에 의해서, 연봉의 몇배를 벌수가 있지만, 대학교와 교수가 50:50으로 나누는것에는 변함이 없슴.

수학자 Shapley 교수의 경우, 워낙에 실물 경제에서 , 거대한, megaton 급 이릉이라서, 서류에 이름하나만 올라가도, 엄청난 가치와 영향력이 있는데, UCLA 경제과와 경영대학원에 자문을 많이 했는데, 내가 학생이었어도, Shapley 교수의 연봉이 얼마인지도, 어느 정도의 외부 자문료를 받는지도 몰랐슴.

교수라도 사회적으로 거물인 교수들은, 연봉도 일반 교수와는 다른데, 현대 수학의 최고 천재라고 불리는, UCLA 수학과의 Terence Tao 교수의 경우, 20여년전에 연봉이 거의 $50만달러. 다른 대부분의 교수들은 $10-15만 달러 받을때, 엄청난 연봉을 받았슴. 기본 연봉에, 보너스 형식으로 추가된 액수임.

지금 Tao 교수는 연봉 $1백만달러, 12억원, 수준이 아닐까 예상. 그정도 주니까, 많은 유명한 수학과 교수의 자리를 주어도, UCLA로 왔겠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도, 교수 연봉이 조금 높아질뿐, 아주 많아지지 않기에, 몇몇 노벨 물리학사 받은 교수의, 생활고도 옆에서 자세히 보게됨. 노벨상 받은 교수라도, 체면 유지비가 없어서, 고생을 하는것을 보면, 짠하고.... 그게 정상인가 하는 , 회의감이 들기도 함.

물론 외부 강연을 가게되면, 강연비가 엄청난데, 원래 연구를 주로 하던 교수들이라서, 외부 강연을 대부분 아주 싫어하고, 꼭 해야만 할때만 함. 자식이 많으면, 가난한 교수는, 아이들 양육비도 감당하기 힘들어함.

듣기로는 경영대학원 교수들의 연봉이 제일 쎄다고 들었슴. 언어학과 철학과 교수들은, 정말로 바닥... 한숨만.

근래엔 한국이 노벨상수상자들에게 엄청난 자문료를 주면서 , 초총한다고 알려졌는데, 유럽에 4-5개국에 가느니, 한국에 한 번 갔다오는게, 많이 받는다고.... 일본도 한때는 그랬고, 중국은 한국보다 자문료를 더 많이 주어도, 공산국가라서 말을 자유스러이 못할수도 있는데에 비해서, 그래도 한국에서는 말하는데 제한이 없어서, 아주 선호 한다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UC Berkeley 의 George Smoot 교수가, 이화여대에 석좌교수로 한학기씩 5년인가 방문해서, 연구한적이 있었는데, 이화여대에 물리학과도 있고, 구색을 갖추었지만, 과연 노벨상 받은 교수를 데려다가, 깊이 연구할만큼의 학풍이 있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자문료를 주었기에, 세계의 그 많은 대학을 패스하고, 이화여대로 가기로 했을까 하는것...

Computer Science 분야는 아주 심한데, 교수마다 연봉 수준이 다른데, 버클리 콤퓨터 공학과 교수중에도, 인간 말종 같은 놈들이 있는데, 역시 그들의 연봉도 최저수준. 간단히 비교하면, 그 교수들의 제자가 학사학위를 받고서, 사회에서 10-15년을 일하면 받는 연봉과, 그 교수들의 연봉이 비슷. 공부한 깊이와 시간과, 경험에서 엄청난 차이인데, 그것이 과연 공평한지, 안공평한지, 판단을 못하겠슴.

지금 Silicon Valley의 20-30년 경력의 콤류터 공학자의 연봉의, 2/3 정도 되는, 버클리와 스탠포드대 콤퓨터 공학과 교수의 연봉.

사회 생활을 하면서, 연봉이 충분해야, 가정 생활도 편하고 여유가 생기고, 체면유지비도 충분해야, 사회에서 활동을 편하게 할수가 있는데, 워낙에 경제적으로 쪼달려 하는, 수학, 물리학과 교수들을 보면서, 전공에 대한 갈등도 커짐.

언어학과, 어문계열, 철학과는 더 심각한 수준. 왜 그분야 교수들이, 성격이 대부분 나쁘고, 아주 목소리만 큰 이유를 알겠더라고. 돈 못 버는것,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푸는것 같음.

건축학과의 경우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편. 교수직이 주된 직업이기에, 외부에서 설계 의뢰가 들어와도, 시간이 모자라서 못하는 상황. 외부 설계를 맡으면, 학생들을 고용해서, 임금도 절약하고, 학생들은 일할 기회를 얻으니, 만족해 하고.

교수가 개인 기업체를 갖고서 자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교수가 된 후에 자문업체를 세우면, 학생을 반드시 고용해야 하고, 자문료의 50%를 대학교에 주어야 하는것은, 법으로 정해져 있슴.

하지만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자문업체를 운영하였으면, 그 법 조항이 해당이 안되어서, 자문료의 1원도 대학교에 지불할 필요가 없슴.

그래서 연구보다는, 교수 타이틀을 갖고서, 자문료 벌이나 하자고 마음먹은 교수는, 대학교를 옮겨가면, 그 법조항에 해당이 안되어서, 아주 여유있게 생활을 하지만, 연구를 제대로 안하니, 평판이 나빠짐. 돈벌이에만 집중하는 교수들은, 지도 학생을 안 맡으려고 하고, 개인 일에만 몰두. 학교에서 쫒아내고 싶어도, tenure 받은 교수는 쫒아낼 방법이 없어서, 학과에서도 고민.

또한 유학생의 경우, 학생비자를 지도 교수가 쥐고 있고, 장학금도 지도 교수가 쥐고 있어서, 학생은 아주 종노릇을 하게 되는데, 나도 동양학생이니까, 유학생 비자와 장학금으로 종처럼 부리려고 했던 , 백인 교수들이 있었는데, 그런 백인 교수가 꽤 있슴..., 미국 영주권자라서 비자 문제가 없고, 내 스스로가 외부 장학금을 많이 받아서, 교수에게 장학금 달라고 할 이유도 없다보니, 면담이 제대로 안되면, ... 나야 다른 교수로 바꾸어야지 하면 그만인데... 그런 교수는, 자기 체면 때문에, 수학과 대학원 사무실에, 지도학생을 release, 즉 해촉한다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그냥 꽉 붙잡고 있는 경우가 생기면, 아주 골치 아파짐.

다른 지도교수 찾겠다는데, 안된다고 하니.... 그 당시 UCLA 수학과에, Steinberg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가 아주 대하기 껄끄러워 하는 교수가 있었는데, 그 스타인버그 교수가 , 학생이 원하는대로 가게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도, 버티다가, ... 안된다고 버티면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기하학 교수에게 강제로 지도교수를 바꾸었고, 그래도 내가 싫다고 하자, 또 강제로 논리학 교수로 바꾸어서, 모든 교수들을 골치 아프게 하였는데, 그 당시 대학원 학과장이었던 Gamelin 교수가 진짜로 아주 고생을 하면서, Shapley 교수에게 중재를 부탁했는데 , 나를 학생으로 받겠다고 하여서, 사건이 해결되었슴. 즉 첫번째 학기에, 5번째 지도 교수가 된것임. 물론 2면은 비공식 지도교수.

한번은 특허 문제로 교수와 이견이 낫는데, 화학과 교수들이 해결애 주었는데, 그 교수가 학생 괴롭히려고, 특허 문제를 들추면서 나를 고생시키려 하였는데, 같은 수학과 교수들은 대놓고서 중재하기가 힘든데, 물리학과도 아닌, 화학과 교수들이 중재해서 해결해주어서, 누구를 믿고서, 세상 살이를 해야하나 갈등도 많았고, 진짜로 필요한 도움이 전혀 예상치 않은데서 온것에 또한, 세상살이란 예측을 못하겠다고, 20대의 한국 이민자는 인생에 대해서, 갈등을 아주 많이 하였슴.

그때는 앞으로 미국 살기에 너무 겂이 나기도 하엿지만, 한국은 전통에서 노통으로 옮겨가련느 시기여서, 뉴스에 보면 더 끔찍한 기사만 나오고...

그냥 혼자서 양심껏, 법 어기지 않고서, 사는수 밖에 없다고 , 다시 깨닭게 되었슴.

UCLA를 관두면서, 그 특허는, UCLA 화학과에 기증을 하였는데, 수학과 교수는, 그래도 내가 수학과에 특허를 기증할줄 알았다고 나중에 말했는데 , 내가 딱 6번을 그 당시 시세로 $350에 라이센스를 팔았기에, $2,000 정도 수입을 냈고, 화학과에서는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는 모름.

그 당시 비슷한 경우라고 하면서, 몇몇 한국 유학생들이 도움을 청했는데, 완전히 나와는 다른 경우.

그들은 학생비자가 그들이 일한 실험실의 교수가 쥐고 있었고, 그 연구실에 받은 연구자금과 생활비로, 연구하고, 생활을 하였기에, 모든 권리가 연구실 교수가 에게 감.

나는 비자 문제도 없고, 그 교수에게서 연구비를 전혀 받지 않았고, 서류상의 지도 교수인 그 교수를 빼달라고 , 과사무실에 신청중이었던 상황. 그리고 작앗지만, 83년부터 나의 개인 사업을 정식 등록해서, 그 회사이름으로 개발하고, 자문을 하엿던 경우.

남에게서 1원이라도 보조를 받았다면, 그 학생은 100% 자기 것이라고 우길수가 없슴.

나의 경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인 기업이라서, 그 기업의 사장/투자자는 나 한명이고, 그 회사의 직원도 나 한명... 하지만 따로 법인을 설립하고, 세금도 내면서, 독립 기업의 구색은 다 갖추었슴. 그래서 1인회사 유지비용도 꽤 들지만, 잘 되면, ,내 뜻대로 모두 control 할수가 있었슴.

그런것도 내가 학생일때, 일부 수학 교수들이 알려준 방법. 수학교수로만은 밥벌이가 시원치 않기에, 부수입을 벌기위한 방법을 찾고서는, 강의실 밖에서 나에게 가르쳐준 경우.

그후로 사회에 나와서 회사 경영을 하거나, 큰 회사의 중역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내 주위에 있다고 반드시 나의 동지도 아니고, 나와 경쟁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의 적군이 아니고, 우군인 경우도 꽤 있슴.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은 경우가 꽤 있어서, 무사히 생존해서, 지금까지 올수가 있었슴.

여러 교수들에게서, 강의실에서 전문 지식을 배운것 보다는, 강의실 밖에서 실제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지식을 배운것이 더 컷씀. 그럼으로서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더 가치를 갖게 되었슴.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20-35년을 계속 연락을 하면서 지내게 되기도 하였슴.

유럽출신교수 중에도, 영국출신은, 영국영어가 미국에서 권위를 갖기에 별 어려움이 없고,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출신 교수들도, 영어를 아주 잘하지만,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출신 교수들은 매너도 거칠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기에,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 물리학자라고 하여도,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듬.

버클리 수학과 응용수학 전공의 , 헝가리 출신 교수인데, Voiculescu. 헝가리대학에서 박사받고 곧장 , 미국 버클리 수학과 교수가 된 경우인데, 일단 저 이름을 제대로 발음을 할수가 없어서, 교수 만나기가 부담스러워. 미국 문화에서 , 상대 이름을 제대로 못 부르는것은, 엄청난 실례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수도 있는데, 저 이름은 도저히 부르기 힘듬. 강의를 듣는 학생도 , 학기말이 되면, 제대로 발음을 하지만,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금새 까먹음.

시간이 흐르고서 , 버클리 수학과 동창들을 만나게 되면, 그 이름이 가장 부르기 힘든 교수.... 라고 하면, 다들 기억함. 영어가 딸리는 외국출신 교수들은 주로, 학점을 아주 잘 주어서, 수강생이 많아짐. 저 교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교수이름 정확히 발음 하는것. Numerical Analysis 를 주로 가르쳤는데, 수강생이 붐비던 강의중의 하나.

보통 교수 정년이 65세쯤 되는데, 학술 활동이 활발한 교수들은, 대부분의 버클리와 칼텍 교수의 경우, 하지만 UCLA 교수의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65에 정년을 안하고, 70, 75세까지도 현역으로 있으면, 연구실 유지하고, 학위학생도 받고 함. 노벨상 받은 교수들은 , 75세 넘겨서 80이 되어도, 현역교수로 타이틀이 남아 있는데, 교수월급 그대로 받고, 연구실 그대로 유지하고, 학위과정 학생도 두고, 특히 노벨상 프리미엄이 커서, Pos-Doc은 정말로 많이 두고서 연구에 더 몰두할수 있는 환경에 있슴.

버클리나 칼텍같이 연구가 아주 활발하도 못해서, 치열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40이 되면서 부터 , 걸러내기 시작해서, 연구 활동은,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저조하다 싶으면, 대학원 학장과 학과장이, 퇴임을 하는것이 어떠냐고, 권고의 편지도 많이 보내고, 전화도 자주 하면서 부담을 줌. 직접 얼굴보고 하기는 부담이 되니, 편지와 전화로, ... 그건 옛날의 경우고, 지금은 메신저도 사용해서, 압박을 줌.

지도 교수와 사이가 않좋았던 학위과정 학생도, 그런 이른 명퇴를 권고하는 편지와 전화와 메신저를 보게되면, 그리 싫던 지도교수에게 동정심이 생긴다고 함. 40부터 쫒겨나는 교수는, 앞으로가 깜깜 하겠지만, 미국 최고로 불리는 대학은, 교수들도 엄청나게 관리해서,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임.

40살 되는 교수들 걸러내고, 50이 되는 교수들 걸러내고... 그러면 신규 교수를 채용할수가 있어서, 수준에 눈높이를 마출수가 있슴.

과에서 아무리 압박을 주어도 버티는 교수들도 있는데, 그런 교수들은 거의다, 성격이 나쁘고, 성과가 적으니, 연봉수준도 낮고, 학생들을 아주 괴롭히는 경우가 많음. 최고 명문대 교수 타이틀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인데, 그렇게 65세 정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슴.

UC Berkeley, computer science 가 대표적. 쫒아 내야할 CS 교수들이 여럿있는데, 정년까지 버텼슴.

근데 다 교수들의 능력차이. 버클리의 논리학 교수인 Solovay 이 경우, 65세에 은퇴를 하겠다고 하자, 그냥 현역 교수로 계시라고 사정을 했다고 들었슴. 그럼 은퇴해서 명예교수 Professor Emeritus, 가 되어도, 정교수와 똑같이 대접을 할테니, 지도 학생도 받아 달라고 했다는데,...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는데, 은퇴하고서, Oregon 주의 시골 농가로 은퇴를 해서, 논리학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버클리 수학과 하고는 계속 연락한다고 함.

버클리 수학과의 Hartshorne 교수는, 은퇴를 해서 Professor Emeritus 이지만, 강의와 세미나는 정상적으로 하고, 연구실도 혼자서 그대로 쓰고, pos-doc 도 여러명 그대로 고용하고. 다만 지도 하는 학위과정 학생은 없다고 들었슴.

철저히 교수의 능력과 지명도 나름.

그래서 그런 옛 지도교수와의 연락이 단점인 경우는, 지금 통화를 해도, 난 25년을 손을 안댄, 그 어려운 수학, 물리 문제를 논하고 싶어하는것. 학생때뿐 아니라, 25년이 지나서도 , 나를 고문함. 지금은 제목은 기억해도, 내용은 기억을 못함.

몇년전에, 칼텍에서 나의 고문관 지도교수 였던, Kip Thorne 이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그전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내가 한국과 일본에 자주 방문을 한다고 들었는데, 학술회의차 방문하니, 시간이 맞으면, 일본과 한국에서 만나자고...

... 미쳤어... 한국과 일본 여행을 망치라고.... 바빠서 갈 계획이 없다고 하였는데, 시차를 두고서 방문을 하였는데, 나중에라도 그것을 알고서, 내가 스케줄 조정을 하지 않았다고 , 화를 냈을지, 아니면, 다니엘이 그럴줄 알았다고 햇을지는 , 나는 모름. 하지만, 정말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슴.

하지만 한국의 교수들과 정부 관계자가, 내가 낍쏜교수와 아주 가까운 것을 보았다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임.

반면에 적당히 유명한 교수들은,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 얘기 하고, 사진도 보여 주면서, 나보고, 결혼경험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여자와 데이트 하게되면, 어떤 식당에 가면 아주 분위기가 좋다고 소개하기도 하고.

이혼을 권하는 것은 아니나, 일단 결혼을 해보고, 맘에 안들면, 금새 이혼을 하더라도, 한번은 결혼을 해보아야 한다는 조언도 주고. 그래서 존경을 안할수 없는 교수님들이지.

한국사람이 가장 오해하는것중의 하나가, 미국의 이공계 대학원 진학은 2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석박사 통합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석사로 들어가서 무사히 마치면, 박사과정에 진급하거나, 아니면 석사 마치고서, 쫒겨나는 형식이 있슴.

석박사 통합과정이면, 명문대는 대부분 석박사 통합과정인데, 요구하는 시험을 능력껏 쳐서 통과하면, 박사 학위가 나오고, 그전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한것에 대한, 석사 학위도 나옴. 그래서 굳이 석사 학위 신청을 안하는 경우가 많음.

석박사 통합 과정에서, 중간에 성적이 않좋으면, 석사학위는 받게 하고서, 퇴학시키는데, 다시 그 대학원으로 돌아오지 못함.

물론 처음에 입학한 석사과정이나 석박사 통합과정보다 , 더 유몋하고 좋은 박사과정으로 옮기기도 함.

이론과학에서는, 석사논문이 없이, 필요한 학점만 이수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서거사논문을 쓰는것 같음.

그래서 미국에서는 , 아주 똑똑한 학생들은 2년반-3년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기도 함. 그런 학생들은 학사 과정도 보통 2년반 - 3년에 마침. 그래서 5-6년만에 학사,석사, 박사를 다 마치는 경우를 , 버클리나 칼텍에서는 어럽지 않게 보게됨. 하지만 UCLA에서는 거의 없슴. 나를 섣불리 그런 학생과 비교하면, 인생이 힘들어짐.

일부 한국인은, 한국 교포는, 2년간 석사과정 안했다고, 날라리 학생인줄 아는데, 2년 석사과정을 했다면, 보통정도라는 것이고, top tier 대학원생들은 보통 1년이면 마침.

그리고 교수들의 경우, 출신 대학, 대학원이 몹시 제한적임. 순수수학이나, 이론 물리학의 경우, Harvard .학사, Princeton 박사가 최고의 천재코스인데, 위에 설명한 고참교수의 상당수는 이 패턴. 아주 철저히 , 이론과학만 집중해서 가르치는데, 학생의 머리가 따라가 주기에 가능. 그리고 필요한 과목만 통과하면 학위가 나옴. 그 과정은 6-7년을 넘기는 경우가 없슴.

그리고 UC Berkeley, Stanford, Yale, MIT, Caltech, Chicago대학을 학사나 박사과정으로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 90%이상의 교수들이, 그 몇개의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공부하였슴.

내가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준이 되어야 함. 학사 4년, 석박사 5년이라는, 아주 표준적인 학위 과정을 거쳤다면, top tier 교수들이 될 확률은 거의 없슴. 특출하게 뛰어 넘어야만 최소 자격이 주어지고, 다시 평가가 됨. 아주 냉혹하게 짤라 버림.

한국의 교유에서 가장 강조되는, 지식보다는 "인간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교수가 내가 학생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으니, 내 밑에서 종노릇 하고, 시키는 것에 의문을 달지 말라는 것인데,

미국대학이나, 유럽대학에서는 그런 헛소리 안함. 인간성은 , 각자가 집에서 배워오는 것이고 , 집안이 콩가루라도, 혼자서라도 스스로 좋게 발전시켜야 하는 것일뿐, 학교라는 사회는 , 지식의 능력껏 배우고 활용하는 곳이기에, 교수가 나이가 더 많고, 경험도 더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학생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

학생이 아주 똑똑하면, 그런 똑똑한 학생을 두게된 교수가 영광이라고, 그 학생을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려주려고 하지, 그 학생의 credit 을 훔치려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슴. 벼로 없다는 것이지, 무조건 훔치려는 인간말종 같은 교수도 꽤 됨.

UC Berkeley 수학과 대학원생 George Dantzig 의 일화는, 수학계의 신화.

조지 댄치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지 댄치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그런 교수가 있어야, 그런 학생이 나올수가 있슴. 학생이 전반적으로 교수보다 , 경험과 지식이 적은 것은 사실. 하지만 그러해도 능력이 적은 것은 아님.

미국 대학에 다니면서, 한국의 교환교수들이 있으면, 아예 상종을 피한것이, 자신들이 어느 대학 교수라고 밝히고서, 학생들을 개인 심부름꾼처럼 부릴려고 하는것을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

내가 워낙에 중국 학생들하고만 어울려 다녀서, ... 종종, 저새끼 한국놈처럼 생겼는데, 짱께네... 하는 소리를 유학생과 한국의 방문교수들에게서 자주 들었슴. 나중에 내가 한국학생인것을 알고서는 , 몹시 민망해 하지.... 난 하도 그런 소리를 들어서, 그러려니 함.

미국 교수들도, 내 친구가 아니기에,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함. 그래야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할수가 있슴.

그래도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음.

지도교수들 4, 에서는 이루엇거나 못이룬, 연구주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것임. 내가 연구한것도 조금 정리하고 , 나 세데에는 못 이루지만, 다음세대는 이룰수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환갑을 넘기 내 나이에는 시간적으로 모자라서, 포기를 해야만 하는 주제에 관해서 정리할 것인데, 이것은 글쓰는데, 시간이 걸릴 것임.

(Decembe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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