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319: 지도 교수님들 (1)

M. S., UC Irvine

내가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배운교수인데, Ordinary Differential Equations,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s, Functional Analysis 를 배웠는데, 특히 PDE를 배우면서, 순수수학의 응용수학에의 응용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how beautiful Mathematics is!)를 느끼게 해준 교수. PDE 의 공학에의 응용도 엄청난데,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이것이 수학하는 재미다! 이것이 공부하는 재미다! 를 아주 철저하게 느끼게 해준 교수.

Jewish 인데, NYC 의 유대인사회에 아주 깊숙이 있어서, NYC 와 LA를 오가면서 생활하고 강의하였슴.

NYU 와 Yeshivah Univ 를 아주 떠나지도 못하여서, UC Irvine 오가면서, 강의 하였는데, PDE 대학원용 교과서를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 꽤 오랫동안 아쉬워 하였슴. 학계에 아주 넓게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그 분야에서는 누구나 존경하는, 진짜로 배울것이 많았던 교수. 나의 UCI 생활은, 셱터교수의 PDE 강의를 들은것으로 보상이 많이 되었슴.

L.S., UCLA

나의 UCLA 수학과 대학원 1년차가 조금 복잡했는데, 원래 기하학을 1지망, 논리학을 2지망으로 원했지만, 두 전공 다 UCLA 에선 그저그래서, 내가 만족을 못했는데, 교수들이 Shapley 교수 전공인, Game Theory를 시도해 보라고 하여서, 다른 선택 없이, 교수와 대담을 하였는데, 날 학생으로 받아주었슴.

새플리 교수는, 2차대전후, 수리 경제학을 새로 만들었고, 지금이 모든 수리 경제학 이론과 시장 예측은, 새플리 교수의 Game Theory 에 기초를 두어서, 모든 경제학 교과서의 기초를 이루고, 모든 경제학과 학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플리의 게임 이론을 배움. 5

0-60년대에 완전히 수학자,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쌓았기에, UCLA 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였고, 섀플리가 학생으로 받았다는 것은, 아주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라고 인정을 받았슴.

하지만, 원래 기하학과 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섀플리 교수의 명성이 최고였고, 게임이론도 앞으로 엄청나게 발전될 분야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내가 전공하려고 했던 분야를 못하고 ,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야 했기에, 갈등이 많았고, 내가 수학전공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슴. 8

0년후반에, 바로 아래 사진의 모습의 섀플리 교수와 매일 만나서, 세미나하거나, 개인교습을 하였는데, 다른 교수들과 달리, Harvard 와 Princeton. 대학 출신인 교수는, 거의 흰화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서 학교에 나왔슴. 키가 190 센티정도 되어서, 173 인 나는, 나무에 매미가 매달려 있듯이, 같이 걸어가면, 그 큰키에, 긴 다리에, .. 교수는 천천히 걷는다고 하지만,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나는, 뛰어야 했고, 뛰면서 걷자니 숨이 차서, 교수하고 대화 하기도 벅차서, 몹시 우스운 상황.

PhC를 통과하고 나서, CSULA에 수학과 교수로 임욤이 되었지만, 수학자로서 학문적 배역이 약하다고 느꼈기에, 수학교수 관두고서, 건축학과에도 갔고, 신문기자 생활도 하다가, 수학과 랭킹 1위인 버클리로 가게 되었슴.

UCLA 에서 , 새플리 교수아래서, 완전히 논문을 끝내지 않았는데, 여러 교수님들과 수학과 학생들이, 지금도 가장 나에 대해서 아쉬워 한 상황. 섀

플리 교수는, 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는데, 경제학을 위해서 연구한적도 없고, 기초 경제학 과목을 한번도 들은적이 없다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 거부의견을 밝혔지만, 많은 학자들이, 수학을 연구해서, 현대 수리 경제학을 만든 사람이니, 수학자를 위해서라도 상을 받으라고 설득을 해서 받았다고 알려져 있슴.

Game Theory 에서 , 현재까지 10여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왔고, 앞으로도 더 나올것이, 현대 수리 경제학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이기 때문.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학자의 대부분이 수학자인것이 현실.

62세인 지금도 예전 교수나 동료 학생들이, 아직도 나의 게임이론 지식은, 응용을 하는데 쓰인다고, 계속 응용을 연구하라고 권하는 상황.

내가 UCLA 생활에 아주 만족을 못햇던 것도, 무조건 떠나려고 했던 이유중의 하나고, 그후로 여러 대학원을 더 다녔슴.

가장 마지막에 다닌 학교가, UC Berkeley 일뿐이지, 그 사이에 여러 대학원에 다른 전공으로 다녔슴.

J. R. S., UC Berkeley

내가 학부 2,3학년때 만났으면, 평생 수학만 전공하고 , 다른 전공엔 전혀 눈을 돌리지 않았을텐데, 30대 초반인 버클리 대학원 4년차때 만나서, 너무 늦게 만났슴. Algebraic Geometry 전공으로, 20대 초반에 만났으면, 수학에서 기하학만 전공하고 , 다른 부전공도 하지 않았을텐데, 암이 걸린 상태에서, 은퇴를 하였기에, 더 배울 기회가 없었슴.

유대인교수지만, 동양 철학과 문학에 엄청나게 빠져 있었던 교수. 일본과 중국 문학에 아주 능통했는데, 내가 한국인것을 알고서는, 더 살아서 강의할수 있다면, 한국 문학에 대해서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암이 악화되어가서, 간신히 학기를 마쳤슴.

R. S., UC Berkeley

너무 유명한 솔로바이 교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현대 Mathematical Logic, 수학 논리학, 의 최고로 창의적인 두뇌로, 나의 논리학 지도교수.

대표적인 유대인 출신 교수인데, 워낙에 천재적인 두뇌라서, 지도 학생들이 다들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슴. 도저히 교수의 기대치를 맞출수가 없었슴. 하지만 아직도 ,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냄.

D. B., UC Berkeley

이 교수도, Game Theory ,전공으로 흑인 최초로 미국 NSF 학자로 뽑혔고, 수학, 통계학, 경제하과에 적을 두었는데, 게임 이론이 주전공.

50-60년대에, 아주 유명해진 John Nash, Lloyd Shapley 와 함께, Game Theory의 기초를 닦아서, 새로운 학문 분야를 만든 학자. 이 교수를 통해서, Nash 교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도 해보았는데, 나보고 더 깊이 게임이론을 연구하고 싶으면, UCLA로 돌아가서, Shapley 교수와 함께 연구를 더 하는 것이 , 좋을것이라고 조언을 하였지만,

전공은 별개로, UC Berkeley 생활을 아주 만족해 했기에, 별로 만족을 못했던 UCLA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서, 더 깊이 Game Theory에 몰두하지 않았슴.

주위의 여러 학자들은, 나의 그런 결정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한번 다녔던 UCLA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게임이론의 가장 큰 이름은 Shapley 교수 였기에, 갈등이 컷지만, 쉽게 결정을 할수가 있었슴.

버클리 수학과와 통계학과 PhD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서, 이 교수 제자들이 학계와 산업계에 엄청나게 퍼져있슴.

W. H. W., UC Berkeley

정확히는 나의 지도교수는 아니었지만, Mathematical Logic, 수학논리학, 교수이기에, 세미나에서 항상 보게되고, Solovay 교수를 잊는, 현대 논리수학계의 일인자라서, 세미나에 가면, 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힘듬.

UC Berkeley, Harvard, Caltech 세곳의 대학에서 정식 tenure 를 받았고, 어느 한 대학의 수학논리학 연구가 맘에 들지 않아서, 세곳의 대학을 옮겨 다니면서, 강의하고 연구하고 함. 그 세곳의 최고명문대의 수학과 교수 자리를 다 잡았으니, 얼마나 천재인지.

다른 수학, 물리과 학자들과 달리, 미국 백인 정치인 집안 출신. 백인 교수들도, 우딘 교수의 영어는, 너무 보수적인 미국 영어라고 함.

G. B., UC Berkeley

Algebra, 대수, 전공 교수이고, 버클리 가기 전에, .UCLA에서 대학원 대수를 1년 들은것을 이교수가 알게 되었는데 , 버클리 1년차때 이 교수의 대수를 듣게 되었는데, 이 교수가 알고서는, 강제적으로 수학과의 대수 qualifying 을 보게 하여서, 보통 3-4년차가 준비해야 하는데, 난 1년차가 끝나기도 전에 , 준비도 제대로 못했지만, 힘겹게 합격을 해서, PhC가 일찍 되었슴.

이 교수는 나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강제적으로 대수 qualifying 을 보게 하였는데, 첫번째에 붙기는 하였지만, 특출한 성적은 아니었고, 힘겹게 보통이어서, 이 교수가 나보고 대수로 전공을 바꾸려고 권하려다가 만것같음.

Harvard 출신의 , 과정을 아주 중요히 여기는 보수적인 수학교수.

R. H., UC Berkeley

나의 Algebraic Geometry / Topology, 수리기하학 / 위상학, 지도교수.

이 교수도 , 나의 여러 수학과 물리학과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Harvard 와 Princeton에서 학위를 받은 백인 교수인데, 나하고는 정말로 궁합이 안맞은 교수.

하지만 그동안 나의 수학교수였던 여러분들이, 이 교수가 Harvard 대학 수학과 교수일때, 학위를 한 교수였기에, 내가 다른 선택없이 기하학전공 지도교수로 선택해야 했슴.

위에 언급한 Stallings 교수를 ,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의 학문 생활은 확 달라졌을 것임. 버클리 대학 수학과엔 워낙에 유명한 교수들이 많아서, 다 강의를 택해보고서 지도교수를 정할 시간이 모자랐슴. Stallings 교수는 암으로 은퇴를 준비중이어서 , 지도 교수를 바꿀수가 없었던 것이, 너무도 아쉬웠는데, 내가 지도 교수를 바꾸려고 했다는 것에, 엄청나게 화가 나서, 마지막 학기에 나를 아래에 언급한 Pugh 교수를 임시 지도 교수로 , 내 허가없이 바꾸고서, 나하고 반년을 상종을 하지 않았슴. 그래서 나도 , 이 교수의 동선을 알기에, 피해서 다녔슴.

하고자 했던 전공 분야는, 완전히 일치 했지만, 성격과 스타일이 너무 안맞아서, 일주일에 3번은 지도 교수 면담을 해야 했는데, 정말로 가기 싫었슴.

C. P., UC Berkeley

수학과 교수중에 드물게, Johns Hops Univ 출신으로, 아주 흔히 보는 백인 히피 스타일. 임시로 나를 한학기 동안, 지도 학생으로 맡았는데, 이 교수도 기하학/위상학이 전공이었지만, 나의 임시지도교수가 되자, 난 Solovay 교수의 논리학 공부에 더 집중을 해서, 별다른 교류가 없었슴.

이런 여유있는 백인수학 교수도 있다고 느껴서, 대화 하기에 아주 편했고, 내가 다른 전공인 Solovay 교수의 논리학 공부에 몰두하니까, Pugh 교수 스스로가, 같은 교수라도 Solovay 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급이 다른 학자라고, 몹시 겸손해 하면서, 부드러운 대화를 많이 나누었슴.

십몇년후, 나에게 Johns Hopkins 대학, 수학과 교수로 갈생각 없으냐고, 추천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 그 당시는 교수생활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아주 친절하고 부드럽게, 고려해 주어서 고맙다고 답을 하였슴.

정말로 친구하고 싶었던 백인 교수.

W. A., UC Berkeley

y = f (x) 로 표현되는 Functional Analysis 전공의 백인교수. Hartshorne 교수와 너무 불편해져서, Arveson 교수의 강의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받앗기에, 나를 지도학생으로 받아줄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곧 은퇴를 준비 중이라서, 새로운 학생 받기를 망설인다고 하였슴. 보통 3년에 박사과정 학생 1명을 받았는데, 아주 여유로운 백인 아저씩 같은 스타일.

학부를 Caltech 나오고, 박사학위는 UCLA에서 하였기에, 완전히 동네 친구같은 , 엄청난 공통점을 갖앗던 교수였는데, 내가 버클리를 관두고서 10년쯤 지나서, 버클리 캠퍼스를 방문 하였는데, 교정에서 마주침.

내가 은근히 박쳐서, 십몇년전에 은퇴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은퇴하려고 준비했는데, 명에 교수로 계속 남아서, 지도 학생을 그사이 세명이나 더 두었다고 하기에, 더 빡치게 되었슴.

내가 많이 모자랐느냐고 물어보니, Hartshorne 교수의 학생이었기에, 버클리 수학과의 어느 교수도 나를 새로운 지도학생으로 받으려고 하지 않았을것이라고. 핫숀교수와 학사문제로 말썽이 생기면, 자기 같은 교수는 항상 지게 된다고 하더라고.

Operator Algebra, 라는 강의를 아주 알차게 들었고, 물리학의 양자역학에 응용을 하는데에 절대적으로 도움을 받았슴. 90년대 초반, 그때는 몰랏지만,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다음세대 콤퓨터로 양자 콤퓨터, Quantum computer 를 개발하는데, 물리학적인 이론을, 콤퓨터 공학적으로 응용을 하는데, 아주 깔끔하게 변환을 시켜주는 , 몹시 중요한 요소였슴.

그래서 다음세대 콤퓨터 개발을 하는데, 양자콤퓨터를 개발하는 학자들이, 미래의 기술이라고 , 같이 하자고 지금도 초청을 받는 계기가 되었는데, 연구 분야로 들어갈 마음은 전혀 없슴.

지도 교수중에, 히피가 아니었던 백인 교수중의 한분. 아주 성실한 백인 청년의 모습을 간직했던 분인데, 목소리도 아주 부드러웠으나, 학점은 아주 냉혹하게 주었던 분.

예로 A가 90.0부터라고 하면, 89.9 며는 그냥 A를 줄수도 있지만, ...(아닌가?), 이분은 A- 주었슴. 그렇게 A- 받은 학생은,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 했을까?

J. S., UC Berkeley

Set Theory, 집합론, 전공 교수인데, 논리학 전공이기에, 집합론 여러과목 들어야 해서 들었는데, 아주 대하기 힘든 백인 교수.

처음 보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로 볼 만큼, 현실세계와는 겉도는 느낌인데, 집합론은 최고의 권위자.

어떤 이공계의 교과서도 처음 시작은, 집합부터 시작해서, let A = { 1, 2, 3 } 이런식으로 시작을 하는데, 바로 그런것이 전공부분.

버클리 대학원 수학과는 워낙에 크고, 논리학 부분도 커서, 버클리를 제외한 다른 대학은. Mathematical Logic & Set Theory 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전공과 강의가 있지만, 버클리에는, Mathematical Logic 과 Set Theory 이 두개의 별개 전공으로 되어있고, 두개 분야에 강의가 여러개가 열려있슴.

수학논리학을 정말로 하기를 원했지만, Solovay 교수가 원하는 것이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Silver 교수의 Set Theory 로 갈아탈까 생각도 하였슴.

R. M., UC Berkeley

Logic 전공 교수였는데, 젊었을때는 히피였던 백인교수. 아주 실용적인 생각을 갖아서, 명쾌하게 답을 주었는데, 원래 Colorado Denver 출신. 예문을 들때, 여러 가지를 들수가 있는데, 이 교수는 항상, Colorado Denver 와 California Berkeley를 예로 삼아서 들었던, Colorado 백인.

G. S., UC Berkeley

물리학과 교수인데,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슴. Astrophysics, 천체물리학이 전공이지만, 이 교수는 실험전공이라서, 이론전공이엇던 나는, 실험실에 오래 있지는 않았는데, 내가 학생 시절엔 , 이 교수도 젊은 교수여서, 새로운 방법의 실험이 많아서, 내가 관심을 갖았는데, 학교를 떠나기로 맘을 먹었었기에, 아쉽지만 일찍 실험실을 나왔는데, 그 연구 주제로, 십년 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니.........

한국 이화여대에 석좌방문 교수로 있었던적도 ....

F. S., UC Berkeley

Astrophysics 이론 전공의 물리학자이고, 베스트셀러인 천문학 교과서를 썻슴. 나중에 버클리를 떠나서, 아버지도 중국 칭화대 총장이었는데, 이 교수도 중국 칭화대 총장을 역임하였고, UC San Diego 에서 교수 생활을 이어갔슴.

Caltech 의 Astrophysics 교수들과는 달리, Berkeley 의 Astrophysics 교수들은, 인간친화적이엇슴. 그래서 세미나에도 여러번 참석.

F. R., of UC Irvine

Reines 교수는 1953년인가, neutrino를 처음 발견하고서, 199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때까지, 매년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올랐던 물리학자.

Quantum physics, 양자 물리학을 한학기 들었는데, 일단 수강생의 50%에게 A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과 사무실에서 반대를 하여서, 90%의 수강생에게 A를 주지 못한다고, 대학 교육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학생들이 가장 이상적(?) 으로 생각하던 교수.

그후로 neutrino 연구로 , 현재까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12명인가 나왔는데, 앞으로 더 나오리라 예상함. 완전히 물리학의 한 분야를 개척한 학자. 물론 많은 반대와, 실패한 실험으로 손가락질도 많이 받앗으나, 결국 성공시켰슴.

실험실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휘파람 불면서 퇴근을 하던 교수. 워낙에 유명한 교수라서, 연구실은, 학위과정 대학원생은 받지 않았고, post-doc 이상만 받았슴. 그래서 Herbert Chen 연구실에서 잠시 일을하게 되었슴.

H. C., UC Irvine

Chen 교수는 꽃봉우리를 거의 피게 만들고서, 요절한 물리학자.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Reines 교수의 Neutrino Group 에 참여한 이론물리학자인데, 연구소에서는 실험 물리학자로 명성을 날림.

지금의 neutrino 연구는 거대한데, 세계 각국의 물리학자 수백명이 함께 연구를 하고, 지하에 거대한 수조를 만들어서, 실험을 하는 최초 계획을 입안한 학자. 그러고서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내서, 지하 실험실을 짓는 도중에, 그만 백혈병에 걸려서, 1넌만에 사망.

학생으로서, 백혈병이 걸려서, 죽어가는 모습을 하루하루 지켜볼때, 저리 풍성하던 머리가, 항암치료를 받고서, 완전히 다 빠지고, 눈썹도 빠져서, 학교에서 다시 보았을때, 금새 못 알아 보았던 그 충격.

첸 교수는, Caltech 학부마치고서, Princeton에서 물리학박사 취득을 하였기에, Caltech에 연고가 컸고, 나도 실험실에서 있었기에, 추천으로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친구해도 될 정도로 , 같은 스타일. 내 또래의 중국 친구들이 , 다 저런 스타일. 다만 첸 교수는, 내 어머니 나이.

첸교수가 원래 설계한 지하실험실에서 연구하던 물리학자들 십여명이 그후로 ,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아주 중요하고 원초적인 학문의 기초를 마련했슴. 그래서 neutrino 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학자들은, 항상 첸 교수를 언급하면서, 살았으면, 진작에 먼저 받았어야 할 학자로 지명 되었슴.

앞으로도 꽤 많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분야.

첸교수의 아픈 모습을 보면서, 난 물리학과는 끊게됨.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교수를 지켜보면서, 물리학이라는 분야도 함께 떠나 보냈슴. 그후로 버클리에서 astrophysics 강의를 듣고, 실험실에서도 연구 햇지만, 물리학이라는 관심은, 수학에 비해서 훨씬 줄어들었슴.

원래는 Particle Physics, 입자 물리학 전공인데, 첸 교수는, 이론입자 물리학에서, 서서히 실험 입자 물리학으로 바꾸면서, 모범적으로 성공한 경우.

나의 경우는 computation particle physics 라고, 원래 원했던 수학의 기하학도 논리학도 아니지만, 콤퓨터의 힘을 빌려서, simulation. 을 하여서, 실험전에 미리 예측 실험을 하고, 진짜로 실험을 하면서, 정확도를 높이고, 실험이 끝난 data 를 모아서, 다시 예측을 하는 분야를, 첸 교수의 가르침과 학문적인 자극에 의해서 하게 되었으나, 오래 가지를 못하였슴.

첸 교수 한명때무에, 새로운 분야를 시도할수가 잇었지만, 그땐 난 벌써, Caltech의 수학과와 물리학과 실험실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고, 첸 교수도 칼텍출신으로 연구소 경험이 있다보니, 서로를 이해하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슴.

그래서 비슷한 배경이 필요함. Caltech 학생으로 있으면서, JPL/NASA 연구소에서 연구했으니, 어디에건 공통적인 배경의 학자를 만나기가 비교적 수월하였슴.

아직도 약간의 credit 이 나에게도 잇어서, 지금이라도 applied mathematician 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하는데, 그 십여명이 넘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니, 아는 연구원 출신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면, 나는 며칠간 우울해짐..... (

위에 언급 햇듯이, 수학과에서 game theory를 같이 연구했던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계속 받는것을 보아도, 나는 며칠간 우울해짐......

그 두 분야다, 분야별로 십여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분야이고, 나도 초창기부터 연구했던 학자였는데..... 어떤 이유이건 중간에 판단 실수를 하게되면, 그런 결과가 나오는것 같음)

첸교수는, 중국이 혼돈의 시간일때, 홍콩으로 피난을 와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서 지내다가 , 대만으로 이주가 허가 되었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올수가 잇었고, 그리 힘든 상황에서도, 칼텍에 학부생으로 입학. 프리스턴 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삶이 결코 쉬운적이 없었다고, 홍콩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떠올리곤 했는데, 결혼하고, 딸도 낳고, 행복하고 여유있게 살아볼까 할때에, 백혈병으로 떠나감.

R. S., Caltech

칼텍에 입학을 했을때, 너무 가난한 학생이어서, 교내 일자리를 찾는데, 마침 스페리 교수의 심리학 실험실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을 뽑는다고 하여서, 심리학 실험실에서 왜 수학이 필요하지 ,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서, 내가 수학을 잘 하는 지는 몰라도, 수학과 물리학과 학생이기에, 지원을 하였고, 실험실에서 일을 하게됨. 학부 2학년생 이었기에, 연구라고 할수는 없었고, 실험실에서 각종 잡입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스페린 교수가 81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았고, 난 83년에 편입을 하였기에, 노벨상 받은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었기에, 단순히 잡일만 하는것은 아니었고, 수학이 어떻게 심리학에 적용 되는지,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이었슴.

한 학기후에, 너무 새로운 분야라서 관두고서, JPL/NASA 로 옮겨서, 원래 좋아했던, 천체물리학 실험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스페리의 연구실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몹시 중요한 경험임. 만약에 심리학 전공이었다면, 당연히 절대로 관두어서는 안되었겠지만, 난 수학이나 천체물리학이 주된 관심 이었기에, 편하게 관둘수가 있었슴.

81년 이후로, 과학계나 노벨상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어떻게 수학자가 노벨 의학상을 받았느냐? 뭔가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지금까지 계속 받는 질문.

수학적인 방법을 심리학에 적용을 해서, 더욱 analytic, 분석학적으로 연구를 하는 기초를 닦았기에, 받은 노벨 의학상임. 도저히 일반인에게는 설명이 불가능. 수

학의 힘을 보여준, 스페리 교수의 연구는, 수학에만 국한된 연구가 아니라고 보여주었슴. 어떻게 수학을 심리학 연구에 응용하려고 하였는지... 정신상태가 보통이 아닌 천재. 20대 초반의 이민자 출신 학생의 입장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교수를 대하는것이 엄청나게 힘들고 부담스러웠는데,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구분이 안되었슴. 그

후로 수년간, 내가 스페리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학기 동안이지만, 일했다는 것을 알게된 주변 학생이나 교수들이, 어떻게 수학이 심리학에 응용이 되는가를 평범한 언어로 설명해 달라고 하는데.... 정말로 힘들었슴. 지금도 같은 질문을 때때로 받음.

간단히 말하면, 정상을 비정상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보아야, 낼수 있는 학설들.

스페리 교수의 사망후로, 같은 학풍을 이어가는 연구원이 없어서, 더 발전이 없는데, 워낙에 천재적인 두뇌가 연구를 해서, 한 획을 그어 놓으면, 수십년간 , 같은 천재적인 학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발전이 힘듬.

칼텍같은 자유스러운 학풍이, 스페리 같은 천재가, 수학을 심리학에 응용을 하는 연구를 지원하고 가능하게 함.

A. M., UC Irvine

물리학자인데, 나하고는 Mathematical Physics 를 같이 연구하는 교수로 만나서 교류하였고, 몹시 귀족적인 생활과 태도로 지내는 백인 교수. 히피세대 이지만 , 히피생활은 안햇던것 같은데, (솔직히 젊었을때 어땠는지는 모름), 주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서 강의실에 나타났고, 글은 만년필로 쓰는등, 서부에서 보는 대부분의 백인 교수들과는 달랐슴.

미국 스탠포드대 출신이지만, 영국 University of Bristol 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구활동 때문에, 나도 U of Bristol에 자주 갔고, 그 지역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얼마나 많았냐 하면, Bristol 지역은 그 지역만의 특색있는 여어 발음이 있는데, 브리스톨 영어를 하는 영국 친구들이 많아서, 방송에서 브리스톨 영어를 들으면 몹시 친근하고, 이해가 빠름.

어떤 영국 영화였는지, 표준 영국 영어로 안 만들도 브리스톨영어로 영화를 만든적이 있었는데, 난 대화를 거의 다 이해하고, 자주 방문하던 곳이어서, 몹시 편하게 영화를 보았슴.

브리스톨 지역인, Cambridge, Bath, Stonehenge 등이 있는 지역이라서, 아주 강한 신분제가 존재하는 영국에서, 몹시 좋은 지역이고, 브리스톨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일종이 우위권을 상징 하기도 함.

아뭏든 미국 백인 교수지만, 영국 브리스톨에서의 추억이 더 많은 교수.

T. G., UCLA

나의 UCLA 수학과 대학원 시절, 대학원 댬당 학과장이어서, 첫 학기에, 내가 다른 교수들과의 충돌로, 첫 학기에, 두명의 배당된 지도 교수와 싸우고서, 세번째로 Shapley 교수로 갈아타는데, 학사 문제를 아주 잘 해결해준 교수.

행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위한 결정을 하고 일처리를 해준것이, 두고두고 내가 교수로서, 어떻게 학생을 위해야 되는지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교수. 학생의 성적이 좋거 나쁘건, 항상 학생 위주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배웠슴. 그래서 지금도 종종, 학생문제 관련 상다을 하면, 부모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를 더 많이 하면서, 학생의 입장도 생각해 보라고 함.

이 교수도 버클리 수학박사 출신인데, 나중에 내가 버클리로 간다고 하니까, 여기보다 훨씬 더 만족할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윙크를 하더라고.

대학원 1년차, Analysis, 해석학, 을 들었는데, 편하게 강의를 들었슴. 아주 뛰어난 수학자는 아니었던것 같으나, 모범적인 수학교수였슴.

C. d. P., Caltech

캁텍의 수학과 지도교수 였는데, 이태리 유대인 출신으로, NYU와 New York 의 유대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두고 있었지만, 강의는 칼텍에서.

내가 어떤 강의를 신청할것이라고 하면, 왜 원하냐고 반드시 묻곤 하였지만, 아주 특별한 수학적인 교류는 없었고, 이 교수의 친구나 동료 학자들과는 오히려 교류가 많았슴.

NYU의 그 유명한, Courant 교수에게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Differential Equations 전공으로, 그가 만든 여러 공식은 , 지금도 우주선 공학에 필수적인 기초 수학이 되어서, 은퇴를 하고서도, NASA에서 계속 모셔다가 자문을 듣곤 하였슴.

수학과 보다는, 기계공학과에서 더 신처럼 모시는 응용수학자가 되어버림.

W. Y. H., UC Berkeley

내가 원래 원했던, Differential Geometry, 미분기하학, 전공의 중국출신 교수인데, 몹시 거친 매너와 엉망인 영어로, 학생들이 피했슴. 200년간 안풀리 기하학 문제를 풀어서, 순식간에 수학계의 스타가 되었고, 버클리 수학과 교수로 입성. 그 명성으로 꽤 오래 버텼슴.

근데 2000년대 중반, 이 교수가 풀었던 200년된 난제가, 약간의 오류가 있었고, 이 교수가 풀었던 방법이 , 답이 될수가 없다는, 난리가 나자, 이 교수는 , 그 난제도 올바른 문제였고, 자신이 푼 방법도, 70년대의 수학의 지식으로는 맞다고, 자신을 수학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 , 아주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 몹시 힘들어 보였슴.

내가 초년병 학생시절에는, 기하학 중에서도 Differential Geometry 가 최신인줄 알았는데, 거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Differential Topology, 미분 위상학, 으로 발전을 하였지만, 거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Algebraic Geometry, 대수 기하학, 으로 최신 수학의 난제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는, 내가 수학에 대핵서 너무 잘못 알았다고, 후회도 꽤 하였는데, 너무 어렵기 때문.

UCLA 시절, Differential Geometry. 관련 강의를 다 들었지만, 수학계의 흐름이 지나간 분야여서, 다시 Algebraic Geometry.를 듣던가, Lloyd 교수 밑에서, Game Theory를 더 연구해야 했던 상황. Algebraic Geometry 는 버클리에 가서야 , 강의를 듣게 되었슴.

Hsiang 교수는, 많은 중공출신 교수들에게서 보았던, 특히 북경대나 청화대 출신들의 우월한 태도와, 모든 아시아인을 깔보는 태도가 너무 명확했던 교수였고, 샹 교수는, 중공 출신 수학교수들만 초청을 하여서, 특강을 하곤 하였는데, 강의하던 중공출신 교수가, 나보고, 중국인냐고 물으면, 난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면, 그 눈에 보이는, 후진국 출신놈하는 눈초리가 너무도 싫었씀. 중공출신 교수들이, 영어가 짧기 때문에, 그럴때는, 유창한 영어로 기를 죽게 만들고, 이해를 못해서 고생을 하게 해야 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수학은 어느 인간언어도 필요없고, symbol 로만 된 수식을, 풀어어 답을 내면, 말하는 언어가 안 통해도, 박수를 쳐줄수 밖에.

어쨌건 나하고는 좋은 감정이 없었지만, 200년간 안풀린 난제를 푼 수학교수와 , 대학원생과는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으로 공생해야 하는 상황.

2000년대 중반, 그 난제 문제로, Hsiang 교수가 고생을 한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고 있던 상황에, 어느날 갑자기 샹 교수가 나에게 연락을 하여서, 상황 설명을 하더니, 전화로 더욱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을 하는데, 십여년을 수학책을 손을 안댔고, 특히 전화로 설명을 하니, 도저히 이해도 안되는데, 한참 설명을 하고나서는,

나보고 같이 , 문제 풀이에 동참을 하라고 함. 내가 UCLA에서 강의듣고 연구했던 것으로도, 수학적인 이론을 충분히 낼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나도 모르던 내가 공부하고 연구한것이, 샹 교수의 연구에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을때, ...

샹 교수도 , 자존심 다 버리고, 옛날 학생한테 도움을 청하는 구나 하는 모습에, 뭐러 설명하기 힘든 , 아주 복잡한 감정이 지배를 했슴. 이제는 옛 학생이 아니라, 같은 수학자 동료로 인정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

그 당시 , 십여년 이상을 수학연구를 안하였기에, 도저히 내가 다시 따라 잡을수 없는 분야였기에, 아주 정중히 거부를 할수밖에 없었지만, 몹시 아쉬운 기회이기도 하였슴.

샹 교수 같은 태도를, 내가 보일수 있었을지, 스스로도 의문임. 샹 교수는 아직도, 학문적인 방어를 하는것 같은데, 수학게에서는, 그 200년된 난제를 풀었다고 인정을 하던것을 취소 했다고 알고 있슴. 수학자로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더 정확히는, 처음에 문제가 된 난제의 필요 충분 조건중의 하나가, 잘못된 조건이어서, 다른 조건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을 200년이 훨씬 지나서야 발견이 되었다고. 그래서 잘못된 조건을, 올바른 조건으로 알고서, 200년된 난제를 푼 , 샹교수의 해법은 맞지만, 원래 조건이 잘못 되었기에, 그 조건을 넣으면, 원래 난제가 다른 문제가 되기에,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임. 하지만 조건이 달라져도, 난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학자도 있었슴. 더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고.

추가 설명을 하면, 원래 .Stanford 대 수학과로 가서, Algebraic Geometry.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2-3주 다녀보니, 스탠포드대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안들어서, UC Berkeley 로 옮긴것임.

J. E. B.: UC Berkeley

버클리의 몽고어, 만주어, 티벳어, 위그르어 교수인데, 이 교수가 은퇴하자 , 알타이어 전공이 없어질 정도로, 아주 드물게 여러 알타이 제어어 유창했던 학자. 원래 스웨덴 출신이고, 그리스어 라틴어 전공을 하였다가, altai. 언어학계의 대가인 Nikolas Poppe 교수를 만나서, 알타이어학 전공으로 바꾸었슴.

기초 공부를,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하였기에, 서양의 인문학적 학문을 연구하는 기초가 아주 든든해서, 알타이 제어 언어학 연구에도 큰 성과가 있어슴.

난 버클리에서 알타이 언어학은 부전공으로 여겼지, 주된 밥벌이로 생각했던 적은 전혀 없었기에, 보손교수가, 내가 은퇴하면,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고 물을때,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고 답을 하고나서는, 아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 버렸슴.

좀더 한국어와 여러 알타이제어와의 연결성을 연구하고 싶어 했으나, 내가 그리큰 관심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경우. 몽고어, 만주어, 티벳어, 위구르어 독해를 하면서, 정말로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고, 한국의 설화와 비슷한 것이 너무 많아서, 어느거싱 원조인지, 몹시 헷갈렸슴.

몽고어와 만주어 사전을 만드는 작업 제안을 받았으나, 10년 이상을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언어의 단어 수집과 교정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 , 거부.

하지만 90년대 초반, 내가 많은 어휘와 문장을 콤퓨터에 입력해서 data base 로 활용을 했기에, 더 연구할 분야가 있었어도, 못하였슴.

아주 전형적인 유럽의 귀족형 백인 교수라서, 스웨덴 출신 답게, 몹시 품위를 찾으면서 강의를 하는 백인교수. 직접 강의를 듣는 백인 학생은 거의 없엇지만, style은 백인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는 백인 남자 스타일.

J. C.: UC Berkeley

AI 전공의 콤퓨터 싸이언스 교수. 내가 일시적으로 수학에서 콤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바꿀 생각을 했었는데, 어차피 관심 분야가 AI 였기에,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었슴.

호주 출신 백인 교수인데 , 몹시 shy 한 면도 있어서, 나하고 더 좋은 학문적인 유대관계를 유지못한것이 , 두고두고 후회가 됨.

나를 학생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지만, 내가 칼텍에서 물리학 공부하고서, 스탠포드 거쳐서, 버클리 수학과로 온 배경을 알기에, 콤퓨터 싸이언스에서 보다, 나에게 주어질 기회가 훨씬 많은것을 알고서, 적극적으로 나에게 접근을 못했다고, 다른 교수와 학생들이 나중에 나에게 말해줌.

근데 몹시 중요한 요소가 빠졌는데, 그 당시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연구하려고 했던 분야가,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분야였고, 논리학에서의 학문적인 응용도 AI 였는데, Solovay 교수의 논리학도 첫번째 응용 분야가, AI 였지만, Solovay 같은 수준의 교수를 쉽게 찾을수도 없어서, 섣불리 전공분야를 세분화 하지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흐르고서야, Canny 교수가 적격자였다고 알게된것.

어쨌건 같이 연구를 하지 못한것은, 내가 정말로 원했던 기하학과 논리학의 , 학문적인 응용을 완성하지 못한것이 되었는데, 몹시 아쉬움.

지금도 AI 가 나의 최고의 학문적인 응용분야임. AI 중에서도 computer vision & graphics.

이 교수도, MIT 의 AI Lab 출신이라서, 내 주변의 많은 CS 연구자들 처럼, MIT AI Lab 의 연구방향과 흐름을 자세히 지속적으로 알게됨. 그렇기에 서로의 현재 상황을 자세히 알고 지냄. 지금은 은퇴 준비중.

현재 미국에서 AI 연구는, MIT, Stanford, UC Berkeley 세개의 대학이 리드하고 있슴. 스탠포드대의 AI 강좌가 아주 유명한데, 그 교수들은 대부분 버클리 박사 출신.

그 AI 연구 network 에 , 칼텍도 끼어들고 싶어 하는데, 아직은 전반적인 수준과 분위기 미달. 학생과 교수들의 수준은 대등하지만, 학문적인 전통과 분위기를 만드는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칼텍이 쉽게 AI 에 main network 에 편입이 되지 못하고 있슴.

나처럼 여러학교에 적을 두었던 학생과 교수가 꽤 있기에, 칼텍의 AI 가 빈약해도, 버클리와 스탠포드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보니, 직접 접하게 됨. 칼텍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노력을 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슴.

M. K., UC Berkeley

나보다 나이는 몇살 어린데 , 버클리에서는 세미나에 참가한 교수와 대학원새응로 만났슴. 그리고 생활 스타일이 비슷해서, 친구처럼 교류가 많았는데, 수학적인 능력으로는, 고참교수와 학생 수준.

나중에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 Field Medal을 받았는데, 버클리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프랑스로 가면서, 나보고 같이 가서 연구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민자로서, 다른 나라로 또 이민을 가고 싶지 않앗기에, 교류가 끊겨버렸슴.

나와 같이, Mathematical Physics 를 전공해서, 학문적으로는 같은 세미나에서 자주 마주쳤슴.

러시아 출신으로, 보았던 많은 러시아 출신 수학자나 물리학자 처럼, 거칠지만 아주 여유있는 생활이 몸에 배여있었슴. 버클리에 남기를 바랐는데, 더 편하게 느끼는 유럽으로 가는것은, 본인의 선택.

R. B., UC Berkeley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출신의 , 영국 백인 남자인데, 버클리에서 수학과 교수로 있을때, field medalm 을 받았는데, 나의 영국인 친구들을 통해서, 80년대 초반부터 알고지냈슴.

많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대인 관계를 아주 힘들어 했슴. 그냥 혼자서 조용히 수학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수학과 교수의 특성상, 학생 대하고, 불만을 대답해 주어야 하는것등을 몹시 어려워 했슴. 지금은 훨씬 더 적응을 잘하고, 캘리포니아주에 사는것을 즐기는것 같음.

F. C., UC Irvine

Mathematical Logic 교수로, 부산대에 교환교수로 갔다온적도 있어서인지, 한국 학생엔 관심이 컷슴. 뉴욕출신의 이태리 유대인 출신으로, 유태인 대학인, Adelphi Univ 생활을 몹시 즐겨서 자주 언급을 하였슴. 학부는 Columbia 대학출신.

유태인 출신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강한 결속력을 갖았는지, 경험하게 해준 수학교수. 공부는 즐기면서 해야 하는것인데, 조금 특이한 분야를 해야만 , 소수성에 상품가치가 높아진다고, 그 당시로는 흔치않은, 논리학 전공. 어느 대학 수학과에 논리학 전공교수 한명은 필요함.

G. K.; UC Irvine

아주 전형적인 유럽식의 기초교육을 받은, 독일계 유대인 출신. 미국에 와서는 2년만에 학사, 2년만에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두뇌의 소유자. 2

차대전중에,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피해서, 프랑스 지역에서 미군에 포로로 잡혀서, 망명을 하였는데, 독일 유태인이라고 하는데 , 프랑스어를 너무 완벽하게 하고, 영어도 너무 유창해서, 독일군의 위장 간첩이 아닌가 의심을 하였을 정도라고.

Algebra, 대수, 강의를 들었고, 조교생활도 하였는데, 너무도 쉽게 문제를 풀어서, 학생을 기죽였슴.

외국인으로, 독일인으로 18세가 넘어서 부터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50년을 영어를 모국어 처럼 사용을 해도, 외국인 이기에, 그 아주 조그마한 미국식 발음은 고쳐지지가 않는다고 하였슴.

순수 미국 백인 출신들도, 오래 대화를 같이 하다보면,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 아니라고 느낀다고 하는데, 동양인 이민자로로선, 이해하기가 힘들었슴.

근데 숫자를 셀때는, one, two, three 가 아닌, eins, zwei, drei 하고 독일어로 숫자를 셌슴. 아주 묘하더라고.

겉으로 보기엔, 완전 미국 백인처럼 생겼는데, 본인의 가족은 히틀러에 의해서, 아우슈비츠에서 사망을 하였기에, 마음속에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긍지와 자아가 강해서, 완전히 미국인처럼 살지는 않은것 같았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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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웠던 모든 교수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고, 좋은 느낌을 받고 배운교수들만 추렸슴.

다시는 꼴보기 싫은 교수도 여럿있었고, 일찍 사망한 일부 교수는, 수학과의 장래를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낀 교수들도 있었슴.

일부러 리스트에서 뺀 5-6명의 교수중엔, 수학이나 물리학의 거대함에, 좌절감을 느껴서, 자살로 인생을 스스로 끊은 안타까움 경우도 있었슴. 그분들이 학문적으로 이룬것이 많았는데, 더 이루지 못한 좌절감. 우리같은 사람은, 그 정도도 못 이루었는덷...

그리고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어서,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교수들도 몇 있는데 , 포함을 못 시켰씀. 반드시 기억을 해야 하는 분들인데, 자료를 전혀 찾을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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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물리학과에서의 주된 전공은, Astrophysics, 천체 물리학, 과 , Mathematical Physics, 수리 물리학. 하지만 물리학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면서는, particle physics, 입자 물리학, 을 더 많이 했슴.

나를 필요로 하고, 대접을 잘해주면, 그리고 가서, 연구하는 것이지, 꼭 한두군데에만 제한을 둘 필요는 없슴.

나의 수학에서의 주된 전공은, Mathematical Logic, 수리 논리학, 과 Algebraic Geometry / Topology, 대수기학학 / 위상학, 이었으며, 비공식적인 부전공은 History of Mathematics, 수학사, 와 Recreational Mathematics, 취미로의 수학이어서, 수학의 재미로움을 응용해서, 일반인들이 재미있게, 수학을 바라보게 하는것이었슴.

하지만, 뜻하지 않게, Game Theory, 게임이론, 을 공부하면서, 경제학에 응용을 하게도 되고, Abstract Algebra, 추상대수,를 공부하면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 응용을 하기도 하였슴.

지도 교수중에, 논리학을 AI로 응용을 하지 않거나, Game Theory를 경제학에 응용하지 않은 수학과 교수들의 이론은, 거의 모둔 물리학의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로 응용이 되는 경우여서, 수학과 교수이지만, 물리학과에도 동시에 적을 두기도 하였고, 세미나엔 물리학과 출신들이 많이 참석하기도 했던 경우.

그 교수들은, 자신은 물리학을 공부한적이 없고, 오직 수학자를 위한 연구만 하였다고, 물리학과에서 초청 세미나를 부탁하면 , 몹시 불편해 하였는데, 물리학과의 입장에서는, 수학적인 이론을 만들어서 , 물리학에 응용을 하게 해준, 수학자에게서 직접 기초적인 원리를 듣고 싶어 하기에, 초청 세미나를 열게 됨.

나의 전공과 부전공이 여러개인것 같아도, 다들 연결이 되기에, 게속 그 안에서 돌고 돌았슴.

언어학을 공부하여도, Cognitive Science, 인지과학, 을 하니, 논리학의 AI 분야 응용 분야중의 하나.

학생때는 몰랏는데, 사회에 나와서 , 다른 교수와 학생들의 경우를 보니, PhD 과정으로만 대학원을 다닐것이 아니라, 하나의 좋은 PhD는 필요하지만, 일단 하나를 받았으면, Doctor of Science, Doctor of Applied Science, Doctor of Mathematics, Doctor of Applied Mathematics, Doctor of Mathematical Logic 같이, Phd에 준하는 학위과정으로 다녓으면, 좀도 쉽게 대학원 생활을 햇으리라는 아쉬움이 컸슴.

미국 토박이 백인들은, 어려서 부터, 일찍부터 , 그런과정이 있음을 알기에, 효과적으로 진학 플랜을 세우지만, 이민자 학생으로서는, 모든 정보를 다 처음부찾아야 하기에, 그때는 몰랐고, 긴 학생 생화을 끝내고서야 알게 되었슴.

이렇게 공부하기 바빴어도, 틈틈이 여학생을 사귈 시간은 꽤 있었으나, 오래 사귀지를 못하다보니, 결혼에 이르지 못햇고, 여태것 독신이 된것은, 몹시 아쉬움.

(Dec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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