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98: 즐읽 읽던 소설가와 시인들 |
지난 쓰레드가 올라간 이후로, 다니엘을 비교적 오래 알아왔던 지인들이, 왜 Rainer Maria Rilke 가 빠졌느냐는 질문이 많았슴. 예, 일부러 뺐고, 이어지는 토론에서 설명할 생각이었습니다.
첫번째 인용한, 6명의 소설가는, 소설가라이기도 하지만, 문학사나 철학사를 읽어보면, 철학자겸 소설가라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임.
인간의 고뇌문제와 사상을, 철학적인 논문으로만 설명을 하는데에 한계가 크기에,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하여서, 철학적인 사상을 인간을 주제로 하는 소설로, 풀어서 철학을 논했다는, 공통적이 평가를 받는 작가들임.
그래서 인생에서 생겼던 고민이나, 앞으로 생길수 있는 고민을, 그 작가들에 의해서, 미리 다 알게되었고, 실제로 인생관과 인간세상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생겨야 할때, 아주 쉽게 답을 찾고서, 내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일관적으로 살수가 있었슴.
그런면에서, 나의 두뇌를 지배한 작가들인 동시에, 철학자들 이었씀. (사실 Charles Dickens 를 그런 철학자로 분류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영국 Victorian 시대를 배우게 해준 작가여서, 나에게는, 두뇌를 교육시켜준 작가였슴).
물론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받은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고, .. 무슨 헛소리를 하나? 하는 독자들도 있어서, 읽가 만 독자들도 있었을 것임. 하지만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다니엘에게는, 인생의 질문 문제를 다 대답해준, 거의 확벽하게 대답을 해준 작가들이었슴.
워낙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라서, 평가도 엄청나게 다양할텐데, 다니엘이 어떻게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았나 만을 인용한 것임.
---
그 다음으로 인용 되어야할 작가들은, 소설가와 시인으로 구분이 되는데, 그들의 작품은, 읽고 또 읽고 하면서, 아주 즐겨 읽었지만, 나의 두뇌를 자극 시키기 보다는, 나의 감성을 자극시켜서, 세상을 유미주의로 보게해준 작가 그룹임.
그 대표적인 작가가, Rainer Maria Rilke 이고,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은, 싫어도, 다니엘의 릴케 강의를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임. 가장 많이 , 감성을 자극시켜서, 차갑지만은 않고, 따스한 감성을 갖게 해준 작가임.
Rilke 야,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을 받고, 한국에도 엄청난 독자들이 있기에, 굳이 더 설명을 않겠씀.
Heinrich Heine 도 감성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정치적인 글을 쓰던 행동가 였슴. 어쨌건 하이네의 시도 엄청나게 감성을 자극 시켜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감성이 계속 되살아 났슴.
영국 작가, George Gissing 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성이나 정신적인 갈등이 없이, 그냥 편하게 , 활자를 따라서 글을 읽는다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영국의 빅토리안 시대의 유명한 평론가이자 시인이었던, Mathew Arnold 의 문학평론은, 깊은 지식을 갖춘, 평론가의 문학 평론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기준을 갖게 되어서, 그후로 어떤 평론가의 문학이나 미술 평론도, Mathew Arnold 를 기준으로 삼아서, 판단하게 되었는데, 미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임.
그래서 미국 백인 친구들에게, 영국의 평론가 Mathew Arnold 를 소개를 많이 했는데, 미국 토박이 백인들에게, 영국 토박이 영문학자를 , 이 동양인이 영어로 자세하게 소개를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슴.
또한 영국의 작가, James Hilton 의 중편 소설들은, 내용도 환상적이기도 하였지만, 나고 그렇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자극을 받게하는 작가라서, 아직도 Hilton 의 소설은, 1-2년에 한 번씩, 계속 읽고, 또 읽고 있슴.
이 작가들이, 감성을 깨우쳐준, 둘째 그룹의 작가들이라고 할수가 있슴.
---
그외의 많은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기는 하였는데, 즐겨 읽었을뿐, 인생관을 바꾸거나, 감성을 새롭게 자극 시키는 정도는 아니었슴.
그 밖의 작가별 특색을 일일이 설명을 하기는 힘든데, 그간 종종 간간이 설명을 한적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다시 , 인용을 할 여유가 지금은 없슴.
---
그럼 미국 작가는?
전의 토론에서 설명을 하였듯이,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미국 작가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슴. 한국에서는 , 문학이나,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은, 미국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살면서, 경험해보니, 세계 top 수준이 많지만, 한국은 미국의 것은 무조건 무시하고, 유럽것이 최고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음.
미국에 80년에 온후로, 대학/대학원을 다니면서, 많은 미국 소설가들을 소개 받았지만, 쉬벡 내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지 못하다가, Los Angeles 시를 배경으로, 탐정 소설을 썼던, Raymond Chandler 를 읽기 시작하면서, 미국 소설 문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이 생겼고, 미국 소설 문학을 더 깊이 , 체계적으로 읽어보려고 하였는데, 아직은 Raymond Chandler 만큼, 나의 취향에 맞는 작가는 없슴.
시대를 느낄수 있는 묘사력은, LA 라는, 내가 사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에, 종종 소설의 무대였던 장소를 찾아 다니는 경험은, 또 색다른 문학과, 여행과 자료수집과, 사진찌기라는 것을, 모두 종합할수 있는, 취미가 되기는 하였으나, 체계적으로 글/사진/여행기 모음을 낼 정도로 , 자료 수집을 하지는 못하였씀.
RC 의 작품을 즐겼다면, 당연히 영국의 Sherlock Holmes 를 뺄수가 없는데, 역시 읽는 재미는 최고. 이성을 훈련시키거나, 감정을 자극 시키지는 않지만, 책을 읽고 추리해 가는 재미를, 최고로 느끼게 해준, Sherlock Holmes 의 작가, Conan Doyle 이나, Raymond Chandler 도 반드시 인용 되어야 할 작가들.
---
하지만 미국시인의 경우는 다름. 미국 소설가는 겨우 읽었다면, 미국 시인의 시는, 한국에서 부터, 즐겨 읽었슴.
특히 미국에 오래 살면서, 영어릐 현실적인 느낌을, 더 깊이 느끼고, 깨달게 되면서, 미국 시민의 영어시를, 영국시인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이 시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슴.
Ezra Pound, Robert Frost, Sylvia Plath, EW Emerson, Walt Whitman, Edgar Allan Poe, Emily Dickenson, Erica Jong, TS Elliot, HW Longfellow 등 많은데, 아무래도 시는, 짧게 간단하게 , 읽을수 있기에, 더 쉽게 많이 읽을수 있었던것 같음.
특히 Walt Whitman 의 Leaves of Grass 를 읽으면서는, 미국의 시 뿐만 아니라, 미국 문학 전체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영문학이라는 틀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미국영어 문학이 차치한다고 깨달게 된 계기가 되었슴.
수년전 까지도 한국어로 완벽한 Leaves of Grass 의 번역판이 않 나온 것으로 아는데, 내가 아는 한국의 많은 영문학자들이, 미국 영어 최고의 시집으로 꼽지마는, 영어로 읽어야만, 제 맛을 느낄수가 있지, 한글로는 영어 특유의 표현을 도저히 번역이 힘들어서,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슴.
---
미국 시인을 언급한 김에, 영국 시인도 언급함.
William Wordsworth, Elizabeth Browning, Samuel Johnson, PB Shelley, William Blake, Aubrey Beardsley, AA Milne, Lord Byron, Agatha Christie, John Keats, TS Eliot, John Donne, Charles Dickens, Thomas Hardy, JRR Tolkien, John Milton, William Emerson 등 시인별로 유명한 시집을 사서 , 다 일고, 또 읽고 함.
아무래도 , 영어를 더 사용하면서, 영어의 다양한 활용과 느낌을 더 알게 되면서, 당연히 영시를 읽는 느낌이, 더 강해질수 밖에 없슴.
미국시인이나 영국시인이나,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있는 시인이라서, 많이 들 읽히는데, 번역본에 의지하지 않고, 영어 원본으로, 읽는다면, 몹시 다른 느낌과 감동을 받을 것임.
확실히 느끼는 것은, 소설과는 달리, 영어시의 한국어 번역에는, 도저히 느낌이 않전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임.
---
소설과는 다르게, 시는 싯구의 압축된 뜻뿐 아니라, 운율도 제대로 맞추어서 읽어야 하고, 리듬도 맞추어서 읽어야, 제대로 시를 감상할수가 있게 되는 경우가 많음. 그래서 시 낭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시라도 느낌히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음.
미국의 영문시중에서도, 미국 흑인들은, 흑인들만의 독특한 영어가 있고, (그런 사투리가 좋고 나쁨을 여기서는 절대로 논하지 않음), 일부 흑인 시인들은, 그냥 시를 읽으면서, 압축된 뜻을 이해하기 만을 바라지 않고, 시를 낭독하면서, 흑인 특유의 억양과, 리듬과 운율을 가미해서 읽어야만, 제대로 흑인 시인이 뜻한대로 , 시를 이해할수가 있다고 하는, 현대 미국 흑인 영어 시인들이 있슴.
그래서 더 젊었을때는, 종종 흑인 시인의 시낭독에 참가해서, 아주 생동적이고 강렬한 시낭송을 듣기고 하였는데, 절말로 느낌이 확 다름. 때론 같은 시도, 남자 흑인의 아주 강렬한 목소리와 리듬으로 읽게도 하고, 그러고서는 여자 낭독자가 운율을 아주 정확히 맞추면서, 은은하게 낭독을 하게도 하면서, 다른 감상의 포인트를 주는데 ... 그런 경우는, 시를 혼자서만 읽어서는 제대로 느낄수가 없는 , 감상이 됨.
어쨌건 흑인이 많이 몰리는데, 동양인이 가는것은, 분위기상 위험할수도 있기에, 아주 안전했던 몇 번을 빼고서는, 초대를 받아도 참가하기가 겂나는 지역인 곳이 많아서, 이제는 관심을 완전히 끄고 있으나 .... 시라는 것을, 그렇게도 즐길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였슴.
---
영문시를 읽을때는, 고유의 독특한 운율과 악센트를 넣어서 읽는 방법이 있는데, 미국에 오래 살아도, 그렇게 영문시를 읽는 방법은 아직도 못 배워서 몹시 아쉬움.
일단 미국인은, 그런 영국식의 시를 읽는 방법을 무시하고서, 그냥 현대 미국 영어를 사용하듯이 읽어버림. 그래서 미국인중에, 영국식 운율로 시를 읽을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슴.
반면에, 영국에서 명문대학에 다닌 영국인 친구들은, 영문시를 읽는 운율로 영문시를 읽으면, 그 운율이 얼마나 멋지고,환상적인지.....
때로는 일반 영어 문장을 읽을때도, 영문시를 읽을때처럼 운율을 넣어서 읽으면, 영어 문장 읽기가 얼마나 아름다보, 시적인지....
정말로 그런 영문시 읽는 운율을 배우고 싶은데, 미국에서는 가르쳐줄만한, 백인 친구들이 없슴.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읽는지 알지만, 실제로 내가 제대로 발음과 운율을 내지 못함.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옆에서 들으면서, 교정을 시켜주어야, 내가 제대로 배울수가 있슴.
지금 무슨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회원분들이 대부분일텐데, 수년내라도, 내가 영문시를 제대로 읽는법을 배운다면, 한 번 쯤은, 개인적으로 만나서, 보여주겠슴. 반드시 배워야할 to do list 에 30년 넘게 있는데, 아직도 못 배웠슴.
더 정확히는 80년대 학생 시절엔, 항사 같이 어울리는, Oxbridge 출신 영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꽤 정확하게 영문시 운율에 맞추어서 읽을수가 있었으나, 그 후로는, 영국인 친구들은, 어쩌다가 만나게 되니, 영국식 발음이나 읽는법을 , 게속 까먹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게 된것임.
---
직접 이 주제에 닫는 것은 아니나, 시인 고은을 현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무려 20여년을 고은의 시를 읽으면서도 못 느끼다가, 한 20여년이 지나고, 내 나이가 50이 되면서, 왜 최고의 현대시인으로 추앙을 받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슴. 한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20년이 걸렸다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님. 그 이상을 걸려도 이해를 아직도 못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도 있슴.
그러다가 그만, 성추행 사건으로, 공개적인 활동을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움. 고은의 시를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더 많은 시를 읽고자 하는데....
---
러시아의 대문호들은, Tolstoy, Pushkin, Dostoevsky,, Turgenev, Gorky, Chekhov, Gogol 등은, 인생사, 인간사를 아주 깊이 잇게 다룬 , 작가의 수준을 넘은 대문호들인데, 긴 시간을 두고서, 꾸준히 읽었는데, 이성은 제1 작가군에서 다 깨닭음을 받았기에, 러시아 작가들에게는, 깊은 감동을 받은것 이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지는 않았슴.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몇 편의 한글 번역판을 읽었고, 고등하교 시절, 프랑스어로 번역된 러시아 문학전집을 아주 싸게, 프랑스인을 통해서 구입할 기회가 생겨서, 구입을 하여서, 프랑스어 번역판을 읽기 시작해서, 미국에 와서도 십수년 이상을, 종종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을 읽다가, 프랑스어를 별로 사용을 않하게 되면서는, 영어 번역판으로 읽기 시작했슴. 현재까지 50여년을, 러시아 문학 작품을 종종 일고 있는데, 러시아어 원본으로 읽을 만큼의 러시아어 실력을 기르지는 못하였슴.
---
외국 소설 읽기는, 처음에는 당연히 한국어로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가 지나고 나서는, 영어 작가는 영어로, 불어 작가는 불어로, 독일어 작가는 독일어로 읽게 되었슴. 물론 러시아 작가는 프랑스로 읽다가 영어로 읽게 되었고, 이태리 작가도, 이태리어로 읽지는 못하고(ㅋㅋ), 영어로 읽게 되었고,
스페인어 작가는, Cervantes 의 Don Quixote 단 한 편인데, 영어로 읽었슴.
친구들하고, 문학 토론을 하다보면, 읽은 소설의 일부 문장을 인용하면서, 설명을 하게 되는데, 읽은 작품수가 가장 많은 프랑스어와 독일어 작가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영어로 설명을 하기는 , 그리 쉽지가 않음.
원어로 읽을 때는, 작가의 느낌을 100% 그대로 느낄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다국어로 읽으면, 인용이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슴.
내가 그간 읽은 소설문학에서는, 프랑스와 문학과 독일어 문학이 절대적 다수임. 그 아음이 영어 원어 문학과, 다른 언어의 영어 번역판임.
---
반드시 인용을 해야할 문학의 장르는, 작가의 국적에 상관없이, sci-fi 소설임. sci-fi 소설의 특성상, 완전히 허구인 소설인데, 상상력을 완전히 넓혀준 소설이고, 지구상의 인간관계에서만 아우다웅만 하면서 살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인 우주로 나가서, 더 큰 세상을 개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 꿈을 상상하게 해주었고, 또한 구체적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과학적으로 인류에 더 공험을 하겠다는, 거대한 꿈도 꾸게 하였슴. J
ules Verne, Isaac Asimov, Robert Heinlein, JRR Tolkien, Larry Niven, Ray Bradbury, Arthur C Clarke, George Orwell, Roald Dahl, HG Wells, Lewis Carroll 등 상당한 sci-fi 작가들의 작품은, 한 번 읽으면 그만이고, 대충 읽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읽으면서, 현실을 떠나서, 저 먼 우주로 나아가면서, 원대하고 거대한 꿈을 꾸고, 현실화 시키려는 현실에서의 노력을 꾸준히 할수 있는 자극을 주었슴.
sci-fi 작가의 소설은, 한 번 대출, 훅 읽고 지나가는 식이기에, 읽은 양은 엄청나게 많지만, 많은 내용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작가들만 자세히 기억을 하는 편임. 그리고 상당수 작가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기에, 원래 소설의 재미만큼 느낄수는 없지만, 영화라는 아주 간단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수 있다보니, 원본 소설 읽기가 반감이 되어 버림.
---
다니엘이 한국에 살때부터, 종종 들었던 친구와 지인들의 말이, 인생이나 철학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 토론을 즐겨 할줄 알았는데, 거의 하지를 않고, 그런 토론을 피한다는 것이었슴.
예, 맞고요, 섣부르 인생 철학이나 인생관에 대한 토론은 피해버림.
이번 주제의 지난 토론에서 여러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였지만, 고등학교때, Hermann Hesse 와 Somerset Maugham 의 여러 소설을 접하면, 그 안에서, 마음속에 있던 거의 모든, 인생에 대한 질문에 대합 답을 받았기에, 남들하고 인생관이나 철학을 토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슴.
20살에 미국에 와서도, 20대 초중반에 Malraux, Kafka, Camus 등의 소설로서, 인생에 대한 궁금증을 다 풀어버렸기에, 굳이 사람들 만나서, 인생에 대한 토론을 할 필요가 거의 없었슴.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 되었슴.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와 지인들이 기대했거나, 예상했던, 인생에 대한 토론을 거의 하지 않았슴.
지금 기억 하기로는, 만약에 한국인 친구하고, 그런 토론을 하였따면, 아주 간단하게 스쳐지나가듯히 하였을수도 잇으나, 깊은 토론은 없었슴.
하지만 일부 미국 백인 친구나, 영국인 친구나 프랑스인 친구하고는, 역사학을 토론하면서, 혹은 수학사와 과학사를 토론하면서, .. 그러면 자연스러이 고대 그리스를 뛰어 넘어서, 수메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시대까지 파고 들면서, 그 긴 인류의 역사속에서, 현재의 나, I-self, 란 존재에 대해서, 깊이있게 토론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슴.
---
현실의 실존주의 철학이란, Existentialism 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서, 인생관이나 인생 철학이 무엇이건, 지금 열심히 살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잘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임.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적당히가 아닌,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래서 A+ 로 성적을 도배하고, 미국에서 열심히 살 생각을 해야지, 한국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한국 생각만 하면서 살면는 않된다는 것임. 만약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것이라면, 미국에서 좋은 경력을 쌓은후에, 한국으로 가서, 한국 생각만 하면 되는 것임.
그래서 미국에서는, 미국 이야기, 한국에서는 한국 이야기만을 함.
한국에서는 미국이야기, 미국에서는 한국 이야기 하는 사람들하고는, 아무런 연줄도 만들지 않으려고 함. 세상 어디에 있건, 지발로 걸어가서 사는 것이기에, 사는 곳에서, 잘 살려고 해야 함.
그것이 실존주의 철학임.
거의 모든 철학은, 책으로 깨닭으면 , 그 철학이 이해되는 것으로 완벽해 지지만, 실존주의 철학은, 책으로 깨닭았으면, 1/2을 이해한 것이되고, 행동으로 실행을 해야만 , 나머지 1/2을 제대로 이해한 것으로 간주되어서, 진짜로 이해를 한것으로 간주되어서, 완벽히 이해를 했다고 하는, 2중 기준이 있슴.
그렇기에, 실존주의 철학이 소개되기 시작했을때, 엄청난 환영을 받았지만, 2차세계 대전이 끝나고서, 50-60년대가 되면서, 실존주의도 생명력을 다했는데, 자유세계가 오면서, 독재정권이 거의 대부분의 세계 정부의 정권이 되면서, 행동으로, 자유를 찾으면서, 실존주의 철하글 완성시키려는 것을, 대부분의 독재정부가 막았기 때문. --- 목숨을 잃어가면서 까지,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려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이고, 큰 희생이 따름.
지금 이 지구상에서, 자기 국민을 무력으로 탄압하지 않는, 민주 정부가 몇곳이나 되는가?
그 이야기는, 수십년후에, 다시 실존주의 철학이, 재유행을 할수도 있다는 것임. -
--
미국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을 한적이 없지만, 실용주의 노선과 민주주의 때문에, 실존주의철학이 이루고자 하였던 것을, 다 이루는 , 아주 특이한 상황이 되었슴.
---
한문과 한문학에 관한것도 엄청나게 중요한데,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 쓰레드에 이어서 설명을 하겠슴.
한글보다, 한문을 먼저 배웠기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
---
작가를 인용하는데에는, 상당힌 불군형적이고, 불공평하게 인용이 되어서, 정말로 크게 다루어야 할 작가들이, 이름조차 언급이 않되기도 하였는데, 모든 작가 평가를 다 할수가 없는 것이 현실임.
맘 같아서는,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이, 어떻게 정신적이거나 감정적인 자극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싶으나, (Raymond Chandler, 의 LA 배경 추리소설을 설명한 것처럼 임), 실제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함. 지접 학생들을 대면 강의 하면서는, 약간씩 그렇게 소개한 적은 있었슴.
---
(August 01, 2024)
Copyright© 2020-2025 Daniel SW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