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86: 사회가 요구하는 직업의 선택 |
일단은 나와 식구가 편히 살려며는, 그 시대에 인정을 받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해야만 , 생활의 여유에서 생기는 , 마음의 여유도 즐길수가 있겠지.
내가 아는, 법대나 의대에간 친구들 상당수는, 문학가, 역사학과, 철하과나, 곤충학과, 미생물학과나 항공우주공학 전공을 하려다가,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와서 (?) , 진학을 한 경우가 많지. 그러고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니까, 대학 진학때 못해본 전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수가 있겠지.
지난 두달간, 내가 참여하는 여러 모임에서, 가장 신선하게 히트를 한것이, 내가 고3으로 돌아간다면, "서예학과"에 진학을 하여서, 중국과 한국의 한시나 읽으며넛, 붓글씨 쓰고, 동양화나 그리면서 살고 싶다고 한것인데, 엄청나게 많은, 회원분들이 동의를 하였지.
물론 우리때는, 한국에 서예학과가 없었기에, 선택할수가 없었지만, 지금 이나이에,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회상을 할수가 있었지, 먹고 살기에 빠듯했다면, 그런 생각을 못했겠지.
나의 경우도, 어쨌건 수학과 물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서,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고, 감히 조언이랍시고 나에게 섣불리 조언을 하지 못하게 하고서, 그러고서는... 내 뜻대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살게 되었지.
만약 내가 학부만 졸업하였다면, 그가 내가 하엿던 많은 일에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
전광용의 소설중에 "꺼삐딴 리" 라는 일제시대부터, 625때가지의 한국의 현실을 아주 잘 묘사한 소설이 있지.
일제시대엔, 일본어를 당연히 잘해야 햇고, 해방이 되어서, 미군이 들어오니, 영어를 잘해야 살아남지, 일본어는 도움이 안되었는데, 북한 지역엔 러시아군이 몰려와서 지배를 하니, 러시아어를 잘해야만 살아남을수 있었던 현실.
우리 부모 세대, 특히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경우는, 일제시대때 태어나서, 한국어 이름을 갖았는데, 일제시대 말기에 창씨개명을 해야해서, 일본식 이름을 갖앗다가, 해방이 되고서는, 영어 이름을 갖는 경우가 많았지.
일부 중국으로 이주한 경우는, 중국식 이름, 러시아로 간 경우는, 러시아식 이름을 갖아야만 했지.
몇년전에, 나의 이름 변천사를 써서 돌린적이 있었는데, 미국에 귀화를 하면서, Daniel Kim 이 되엇지만, 버클리 시절, 그후로, 몽고와 만주와 위구르와 티벳 문제에 깊이 관계를 하면 서, Dorji 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기도 했었지.
수학이나 물리학은 나의 선택이었는데, computer science 분야가 가장 뜨자, 밥벌이는 대부분 CS 관련해서 하였지. 수학교수 생활을 3년정도 하였지만, 큰 돈벌이는 못했지만, 나에게 명성이라는 것이 잇다면,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는 기회는 되었지.
하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동양고대사, 동양 문학, 한국 고문학, 고대 철학 같은 것은, 나의 취미로 개인 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전문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 나와 같은 2중생활(?)을 하고 있는것 같음.
그래서 수학과나 물리학과 동창들하고 만나면, 수학이나 물리학 이야기는 연구소나 세미나에서나 하고, 개인 취미생활, 역사 탐방, 철학 연구, 인류학 탐사같은 이야기를 주로 나누지.
세상의 흐름이 바뀌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것도 바뀌다보니, 학생들이 몰리는 분야도 바뀌는데,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수는 없다고 생각함.
콤퓨터 공학과도, 한국에서도 77년도경에 생겼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1980년에 미국에 왔는데, UC Berkeley 에서 CS 전공을 한 학생들은, 공대내의 다른 전공배정에서 다 밀려서, 마지막 남은 정원미달 학과라서, 어쩔수 없이 배정을 받았는데, .... 그래서 미래를 몹시 걱정을 하엿지만, 그후로 2-3년 내로 지금까지, 최고 인기 학과가 되었지.
(물론 현재 한국에서 이과학생들의, 지나친 의대 쏠림 현상은 문제가 너무 심하고 문제지).
한국에서는 이상한 가치 기준이 있는데, 돈못버는 분야를 공부하면, 소신이 아주 강한것이고, 돈잘버는 분야를 공부하면 , 너무 시세에만 쏠린다고 하는데, 돈잘버는 분야는, 예로 콤퓨터 공학의 경우, 변화하는 사회에서 몹시 필요하고, 엄청나게 사회를 바꾸는 역활을 하기에, 몹시 요구가 많은 것이고,
나도 종종 언급하는, 조선중기 송강 가사들의 연구, 삼국사 이전의 고대사 연구, 삼국시대 언어, 알타이족의 기원들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사회를 쉽게 바꾸지도 못하고, 몹시 고정되어 있는 분야라서, 영향이 아주 미미한 경우.
다른 예로, "서예학과". 전통을 이어가는 전공이고, 많은 한국인뿐 아니라, 동양인들에게는 마음과 정서와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분야인데....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전공을 만들었으나, 20년내로 폐과가 되었슴. 몹시 아쉽지만, 이해가 가는 상황.
조선땅에서는, 1500년 이상, 한문 실력이, 실력이고 권력이 되었슴.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일본어가 모국어가 되어야 했고, 해방이 되고서는, 영어 실력이, 모든 실력중에서, (물론 아빠빽만 빼고는), 가장 중요한 장기가 되어버림.
현재는 한문을 아무리 잘해도, 밥벌이가 힘든것이 현실. 변하는 세상일뿐. 남들이 어떻게 쏠리건, 내가 하고자 하는대로 하고 살면 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지.
그래서 내가 현실과 절충한 것은,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을 하고서, 밥벌이를 주로 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내 개인 시간을 투자해서 한다는 것.
그런데,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그 안의 매력과 가치와 중요성을 깨닭게 되었지.
그래서 미술과 현실을 융합하는 분야인, 건축학을 , 더 오래 공부하지 못한것이, 왜 그리 수학이나 물리학을, 학문 분야에서 최상위로 두는가를 깨닭게 된것이지.
그래서 이런 독일인 슐츠같은 사람들이, 선배의 조언이라고 내가 어렸을때 한것을, 다 개같은 소리들 이라고 무시하고 경멸하게 되었지.
나 어렸을때, 친가나 외가나, 한양 종로통의 양반집안 출신이기에, 최소한 '천자문"은 떼어야 한다고 해서, 천자문을, 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하면서, 몇달은 아니었지만, 2-3년에 걸쳐서 뗐지. 우리 또래중에, 천자문을 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야.
물론 내가 살던 동네의 어린이중에는 , 천자문을 뗐건, 하다 말았건, 천자문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지.
그러고나서는 60년대 말부터, 삼촌들이 미국에 유학을 가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의 시대 / 영어의 시대라고 하여서, 국민학교 4학년때 부터, 영어공부를 하였지.
일제시대때, 대학 공부를 위해서 , 일본에 유학한 삼촌들이 여러분 계신대, 일부는 그 당시 일본은 독일과 연합 관계였고, 미국과는 적국이었는데, 영어 전공한 삼촌들은, 왜 굳디 적국의 언어를 공부를 하느냐고, 차별을 받았고, 독일어 전공을 한 경우는, 일본 동맹국의 언어라서, 기회가 많았고, 로스께어 (러시아어)전공은, 일본과 전쟁은 하엿지만, 크지만 무시하는 국가였기에, 영어전공보다는 대접을 받았다고.
그러다가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고나서는, 영어 전공자 외에는, 전공에 대한 차별을 많이 받았고, 로스께어 전공은, 다시 다른 공부를 해야 했슴.
사회적인 필요성과 요구는, 일시적일수도 있지만, 사회 변화에 따른 필요가 대부분임.
(June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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