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68: 마지막 눈빛 |
이 내용들은 엄청나게 무거운데, 살아가면서 직접 본 마지막 눈빛에 대한 것이지요. 성직자 이던가, 스님, 카톨리 신부, 히브리교 랍비, 혹은 심각한 철학을 하거나, 인간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는 지인과 , 상황에 따러서, 경험을 나누기도 하는데...
그 마지막 눈빛은 잊을수가 엇는데, 진신은 모르지요. 다만 그 마지막 눈빛과 절규는 아직까지도, 상화에 따라서 아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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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생화로기, 지역 학교를 막 시작하고 같이 어울이럳 다들 이민 초년생 친구들이 잇었지요. 한 친구는 , 큰형집에서 살았는데, 바로 학교앞이라서, 또래 친구들 여러명이 보통 오후에 가서 죽치고서 지냈는데, 그 당시 큰형수가 아들을 막 낳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벼롤돌보려 하지 않아서, 우리들이 그 친구집에서 라면 끌여먹고 밥도 해먹으면서, 갓난지 3-4일 후부터, 우리들이 놀면서, 그 조카 귀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타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그 학교를 2년 다미니면서, 그 큰 조카가가, 태어나서, 기어다니고, 아장장걷고, 거도, 뛰는거 까지 다 보앗지요. 그러면서, 서로 다른 대학교로 전학을 가고 직장 생활을 하여도, 이민 초년생 친구들이라서 종종 모이는데, 그 조카도 우리는 기억을 하는지, 반가워 하면서도, 어려워 햇지요.
근데 그 조카가, 커가면서 , 흔히 말하는 잘못된 애들하고 어울리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더니, 경찰서에 불려가는 경우도 많아서져서, 그 집안에 아주 골칫거리가 되더라고요. 우리 친구들이, 미국 사회생활을 하고, 대부분 LA 근교에 살다보니, 그리고, 친조카도 아니지만, 태어나서 3-4일 후부터 보아왔기에, 아주 애뜻한 정이 들었지요. 저도 제 친 조카들보다, 더 내조카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 조카가 문제를 일으켜서, 물론 혼자서는 아니고, 애가 조금 어정쩡해서, 다른 애들하고 같이 다니다가, 결국엔 혼자서만 잡히는 상황이 되어서, 혼자가 다 뒤집어 쓰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들이 시간이 되면 가서, 잔소리좀 하면서, 타이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 실토를 해서, 그 조카 혼자서 다 뒤집어 쓰는 경우를 피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그 친구 큰형도, 그 조카가 문제가 생겨서 경찰레 붙잡히면, 우리들을 불러서, 해결을 부탁을 하는데, 사실 남의 일에 관여하기 싫어도, 그 조카는 워낙에 태어나서 부터 보았기에 , 우리 친구들이 번갈아 찾아가게 되고, 일단 가서 물어보면, 하도 솔직히 기다렷다는듯이 다 실토를 해서, 진짜로 일을 버린 나쁜애들을 잡기는 하지만, 이 조카는 항상 이용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리고 한참후, 내 친구는 이혼울 하고 재혼을 하여서, 늦둥이를 보앗는데, 서울근교의 전원주택에 새 살림을 차리고서, 늦둥이와 함께 재미있게 살려고 하엿는데, .... , 어느날 가정부와 늦둥이 딸이 집앞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을 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었지요.
친구는 한국에 재산이 꽤 있다보니, 형제를 대신해서,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지엇고, 외지기는 하여도, 땅이 넓다 보니, 재혼한 부인과 함께 살게 되었고, 문제를 일으키던 큰 조카도, 한국에 와서, 종종 오가면서 지나게 되었는데, 어느날 가정부도 칼에 찌릴고, 그 집을 털던 도둑들의 차에 의해서 어린 딸은 , 겨우 걸음마를 하엿는데, 차에 치여서 죽은 것이엇지요. 그리고 경찰이 이친구 차인 BMW 를 타고서 도망간, 큰 조카를 범인으로 잡으 것이지요. 그 당시가 2000년대 초반, 저도 한국에 자주 방문하던 시기라, 그 소식을 듣고서, 경찰서로 찾아 갔지요.
경찰의 의견으로는, 그 조카가 다른 도둑들과 작당을 해서, 그 친구집에 갔을때, 가정부야 의심을 않고, 문을 열어 주었고, 그 후 다른 일당이 가정불ㄹ 칼로 찌르고, 집안을 뒤져서, 귀중품을 훔쳐서 도망가다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그들외 차로 치였고, 조카는 이 친구의 BMW 를 끌고 가다가, 또 아기를 차로 치여서 , 아기는 사망. 그리고 조카도 차를 잘못 몰아서 벽에 부딪쳐서 , 아주 크게 다쳤슴.
경찰은, 아기가 두대의 차에 치인것은, 몸에 묻은 페인트와 차바뀌 발자국으로 확인이 되고, 문을 강제로 딴 흔적이 없기에, 가정부가 눈에 익숙한 조카에게 문을 열어 주엇고, 조카가 문을 열어 두어서, 다른 일당을 집에 몰래 들게 하였다는 것.
근데 숨을 헐떡이는 , 그 조카는, 자신이 집에 가보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대문에서 뛰어 나오면서, 그들이 BMW을 타고서 급하게 가려다가, 아장아장 걷는 조카를 차로 치는것을 보았고, 집안문으로 들어가다가, 칼에 찔린 가정부를 보고서, 사신도 겂이 나서, 현관문옆에 걸우두는 진구 BMW 차 키를 갖고 나와서, 자신도 겂이 나서, 차를 몰고서 상황을 피라혀다가, 운전 실수고 옆집 벽을 들이 박앗다는 것이엇지요.
논리적으로는, 경찰의 말이 맞지, 그 조칵의 말은 앞뒤가 않 맞앗지요. 그래서 경찰을 계속 다그치고, 그 친구와 다른 친척이 와서 그 조카도 엄청나게 다그치고. BMR 가 아무리 튼튼해도, 벽을 정면으로 들이 받았기에, seat belt를 하지 않은 , 그 조카는 아주 심하게 다쳐서, 생사를 오가고 잇엇지요.
그렇게 사건이 생기고서 며칠이 지난후, 우리 친구들이 모여서, 그 조카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 갔지요. 처음엔 일단 오랫만에 만나니 반갑기도 하엿지만, 그 조카가 2살 이후로는 좋은 상황에서 만난적은 거의 없었고, 커가면서 경찰서에서 사건 조사를 받을때 만났던 경우가 대부분. 이번에 생사가 오가고, 작은 삼촌의 딸을 차로 치 살해강도죄/상해치사로 구속되기 전이라서, 더욱 심각 했지요.
그 조카를 만나기전, 형사들이, 다른 두대의 차가, 어린이을 친것은 확실하니, 혼자 뒤집어쓸 필요없이, 공법이 두명시앗인것 같은데, 공범을 잡아야, 조금이라도 죄가 줄어들것 아니냐고, 우리보고 실토를 받아내달라고 하는데, ... 당연히 우리는 또 공범을 대라고 하겟지만, 어떻게 그집 형제들 다 사람들 좋은데, 어쩌다가 , 그 한놈만 수십년간 속을 썩이는지, 우리도 화가 많이 났었지요.
마친 정신이 돌아와 잇는데, 그간 20년간 쌓인 강점에 , 욕부터 엄청나게 해대고, 너 태어나서 -34일 되었을때부터 기저귀 갈아주고, 우유도 먹이고, 하면서, 엄청나게 심하게 욕을 하게 되엇는데, 그러더니 이제는 살인까지 하느냐고 , 다그치게 되었조. 밖에서 듣고 있던 형사들이 들어와서 오히려 우리르 안정시키려고 했고, 의사와 간호원도 와서, 이렇게 소란ㅇㄹ 피면, 면회를 거절 시키겠다고 하는데,...
우리야 지난 20년간 , 그 조카를 경찰서 에서 꺼내려고만난적이 여러번, 화가 날대로 났었지요.
그러자 그 조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삼촌들이 물어봣을때, 그동안 한번도 하고서 안햇다고 거짓말을 한적이 없엇잔아요?" 하면서 , 아파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데,
그때의 그 울먹이는 눈빛.
그전과 확 달랐지요. 이번도 정말로 사실이라고 말하는 눈빛 이엇지요. 의사와 간호원이 쫒아내서, 우리는 병실을 나와야 했는데, 휴게실에서 우리끼리 앉아서, 왠진 이번 눈빛은 다르다 햇더니, 다른 친구들도 이번 눈빛은 달랏다... 진짜로 본대로만 얘기 한것이고, 범인은 따로 있을까 ? 하고 생각을 하게되고, 그리고 몇시간은 우리도 혼동이 왔었지요.
근데 논리적으로는, 경찰의 설명이 다 옳고, 그 조카의 설명은 모순이고 앞뒤가 안 맞지요. 그 조카고, 차를 벽에 받은충격이 너무 커서, 마치 십층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내장파영리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저녁 사망을 했고, 새로 개발된 전원주택 지역이라, CCTV 도 없는 지역이라서, 그 조카가 , 한 어린이 죽고, 한 사람이 칼에 심하게 찔려서 파링 마비되는 상처를 입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서, 세상을 떴죠.
그후로 여러차례 그 친구들 만나면서,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 눈빛으로는 억울하다는 말하고 잇는데, 그간 사건이 터져서 경찰서에 찾아갔을때, 우리들이 가서 물어보면, 그전에 사술했던것 다 부정을 하고서, 솔직히 사실을 설명해서, 공범을 잡을수가 있었는데, 내장파열도 심하고, 두뇌에 출혈도 심해서, 본이도 죽을줄 알면서 ,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햇을까? 아니면 죽을줄 알앗기에, 더욱 사실을 말했을까?
사실은 아무도 모르지요.
우리 친구들에게는, 그 조카말을 안 믿어주었을때, 그 조카가 목소리도 제대로 못내면서 했던, 말과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을 하지요. 다른 한 친구는 여러차례, 꿈에 그 조카가 나타나서, 자신은 정람로 안 그랬고 , 사실대로 말했다고 울면서 애원하는 , 악몽에 깨곤 하엿다고 하는데, 소름이 끼치지요. 하지만 그간의 그 조카의 악행르 보고서는, 마지막 말도 , 믿어줄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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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중국 툴르판의 이슬람 시장에 구경을 갔을때 경험한 것이지요, 중국 신장 지구의 푸르판은, 포도 재배와 포도주로 또한 손오공이 백여이 된 도시로 아주 유명하지요. 그리고 지굼 가장 유명한 것은, 중국인의 위구르인 탄압으로 유명해서, 지금은 외국인으 기차역이나 버스에 내리자 마자, 도로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잡화점에서 물건 구경을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중국인 가제 여주인이, 위구르인 여자를 거칠게 머리와 빰을 마구 때리면서, 도둑년아 하면서 아주 심한 중국어 욕을 하는데, 상황을 보니, 위구르여자가 잡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려서 두들겨 맞나보다 하엿지요.
근데, 중국여주인이 엄청나게 잘 때려서, 그 위구르 여자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더라고요. 아주 끔찍한데, 구경거리에 다들 사람들이 모엿고, 구경만 하엿는데, 중국인에게 위구르인이 감히 대들수가 없는것이 현실. 가게 여주인과 다른 중국인 종업원, 둘이서, 무지막대 하게 패더라고요.
그리고 위구르 여자이 옷을 벗기면서 짐울 조사하는데, 도둑질 했을 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으니까, 어디에다 숨겼느냐고 다그치면서 더 때리더라고요. 옷을 거의 벗겨도, 물건이 않나오니까, 중국인 여주인은 더욱 화가 나서, 심하게 때리는데, 얼굴을 알아볼수가 없을 만큼 막 붓고, 자기 도둑 아니라고 울면서 절규를 하는데, 목소리도 제대로 않나오고, ..., 옆에 잇던 위구루 남자가, 위구르 어로, 물건을 훔쳣으면 되도려 주라 하니까, 자긴 절대로 안 훔쳤다고 위구르어로 대답을 하고,... 그 당시만 하여도, 그 정도의 위굴 어는, 저는 알아 들을수 있엇지요. 그래서 저 위구르 여자가 범인이 아닌데, 주인 여자가 착각을 했구나 생각을 하엿지요.
그때, 그 위구르 여자으 눈빛. 절규하는 그 눈빛이, 그전에 사자나 표범이 하이에나에 잡혀 먹히기 직전같은, 아주 검먹은 표정의 눈빛이엇고, 다 솔직히 말햇으니, 제발 살려다라는 눈빛.
제 느낌으로는, 어 여자 , 절대로 도둑질을 안햇는데 억울하게 당했다 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위구르 여자는 두들겨 맛다가 쓰러져서 까무러 치는것 같은데, 그전 폭낱데러로 사람이 다칠때와는 달리 더 참혹 햇지요.
그러다가, 중국경찰이 왔고, 가게 주인은 상황 설명을 햇고 , 경찰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사람을 때리면 되느냐 하고 타이르지만, 중국인은 절대로 잘못이 없고 , 위구르인만 잘못이 있다는, 식민지에서는, 형식적이엇지요.
그리고 위구르여자에게, 네가 정말로 안훔쳤냐고 물어보았던 남자는, 가게주인이 공범 갔다고 하여서, 중국 경찰이 잡아 가는데, 자신은 진짜로 안 두둑질을 안했다고 물어 보앗을 뿐이라고 항의 해도, 중국 경찰에 몽둥이로 맞아 가면서, 경찰에 끌려 갔지요.
외국 관광객인 제가, 거기에서 보고 들은대로 , 다 증언을 한다고 해서, 그 남자의 혐의가 벗겨질까요? 위구르어하는 외국인은 입국 금지 입니다. 제가 고생을 사서 할 필요은 없지요. 제 맘치 편하지 않앗지만, 그대로 돌아섰지요.
그날 하루 묵고, 그 다음날 신무을 보니, 기사가 크게 났더라고요. 중국인 여자가 하도 위구르 여자를 심하게 둗ㄹ겨 패서, 눈알 하나가 빠져나와서 실명이 되었는데, 감염이 두뇌까지 번져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요. 근데 그 위구르 연자의 절규하던 눈빛이 안잊져 지더라고요.
그릭고 그 다음날은, 우룬치로 떠났기에, 그후의 소식은 알수가 없었는데, 한쪽 눈알이 빠져서, 두뇌까지 감염이 되엇지만, 살 확률이 거의 없겟지요. 우룸치에서, 먼 지역인 투르판의 뉴스를제가 찾아서 읽을수도 없었지요.
그 위구르 여자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여자만 보아도, 그 때 상황이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눈빛과 절규.
진실은 알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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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 초기, 집에서 liquor store 를 하는 경우가 많고, 아들들이 가게에서 cashier, 를 하다가, 동네의 흑인 도둑들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지요.
제가 살던 동네 부근에서, liquor store 를 하던 친구가게에 자주 놀러 갔엇는데, 항상 조심을 하엿지요. 도둑이 원가에 많고, 총기를 소지한 경우가 많았지요. 그 친구는, 한국어도 조금 구사하는, 흑인 고등학생에게서 벌써 두번이나 강도를 당하엿는데, 그 놈이 한국어로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거니, 한국어로 대답을 안해줄도 없고해서, 한국어 대화를 하는 사이, 경계가 느슨해 지는사이, 다른 일당이 가게로 몰래 들어와서, 강도질을 하려다가 걸린적이 벌써 두번. 결국 한국어를 쓰면서, 바람잡이 역활을 한것이 경찰에서 밝혀져서, 벌써 두번이나 소년원이 다녀왓었지요.
그리고 세번째 비슷한 상황이 생기자, 일차고, 그놈을 지적햇고, 시간이 좀 을러서, 다른 일다도 잡히기는 하였지요. 현장 검증을 나왓는데, 그날 나도 갔었고, 그놈은, 전에 두번은 자신도 일당이엇지만, 이번은 정말로 아니고, 다른 잡힌 놈들이, 지들의 죄를 경함 시키려고, 사신도 끌어넣고 있다고 계속 울면서, 사정을 하는데, 두번이나 강도를 당하고, 세번째로 당한 입장에서, 그런 말이 귀에 ㄷㄹ어 올까요. 현장 검증때, 그 놈 어머니, 할머니, 외할머니까지 같이 와서 울면서 지켜 보는데, 보기에 참 답닫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러가지 상황을 재현 했고요.
그러고서, 그 날 밤늦게,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술이 많이 취해 있었는데, 술이 약해서 술을 못 하시는데, 만히 취해 있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세번째 강도 사건을 당하면서, 그 놈을 지명햇느데, 그간 강도일당이라는데 의심이 없었는데, 그날 낮, 경찰과 현증 검증을 하며서, 그놈은 일당이 아닌것을 확실히 알앗다고. 서로가 모르는 사이가 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해야 하나 하기에, 지금 괜시리 말해버리면, 더 복잡해 지고, 어차피 두번이나 같은 놈에게서 강도를 당했는데, 그놈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데서 강도짓만 하면서 살놈이다 , 신경쓰지 말라고 하엿지요. 16세에 소년원 두번 다녀오고, 세번째로 걸린 것인데, 이번엔 아닌것 같다로 하는데, 낮에 현장 검층르 할때, 울면서 아니라고 하는 눈빛에, 정말로 자신은 아나라고 하면서, 그래서 할머니와 회할머니도 오시게 했다고, 솔직히 자신이 니아엇다고 말해달라고 그 친구한테 애원을 하는데, 그때 까지도, 친구는, 그놈이엇다고 확신을 햇었다네요.
근데 나눈 그 눈빛에서, 혹시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햇엇지요. 근데 현장 검층이 끝나고나서, 치누고, 그 놈의 눈빛에 생생하게 기억에 떠올랐낭봐요. 현장검증때는 자신도흥분을 해서, 차분히 생각울 못했지만, 저녁때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자신의 착각 이엇다고.
제 입당에서는 깜두잉들 그냥 그렇게 살게 두라고, 말할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부터 몇달후, 그 친구가 다시 술에 취해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 놈이 수감되엇다가, 감방내의 다른 갱단에 의해서 살해 당했다고요.
전 그 소리를 듣자 마자, 그놈의 애언하는 눈빛도 떠올랏고, 현장검증에서 우눈 그놈의 할머니와 외할머니늬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도 마음을 안정 시키기가 힘들엇지요.
그 친구는, 그 현장검증때, 사실대로 재증언을 하엿으면, 그 놈은 형무소로 가지 않았을것이고, 형무소에서 살해도 안 당했을 테네데 하면서, 괴롭다고 하더라고요. 제 대답은, 너가 아니더라고, 다른 가게에서 나중에 강조짓을 하다가 잡혔을 것이고, 어차피 형무소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이엇다고 , 조언을 해줄수 밖에 없었지요. 미국에서 그런 범죄만 저지르다가 일찌죽는 흑인 청소년을 많이 보앗지요.
근데 그당시 그놈의 눈빛은 잊져지지가 않더라고요. 도서지 자신의 말로 결백을 증언할수가 없으니까, 할머니와 외할머니도 현장검증에 오게해서, 자신의 결백을 표현해 보려고 한것에.... 한숨만...
미국에 40년 살면서, 저도 몇번 흑인을 도둑으로 몬적이 잇엇지요. 상황상, 제 주위 사라들이 , 제 laptop 으 도둑으로 지명을 했고, 나도 의심치 않았고...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실수 한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 라고요. 보통은 실수 안했다라는 느낌이 드는데, 몇번으 , 내가 실수했다라느 ㄴ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되돌릴 수는 없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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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 친구집안중에, 형제가 많다보니, 복잡해 지는 경우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생락하고, 원래 잔치를 축하해 주려고 갔는데, 여조카가 아주 심한 골칫거리라서, 형제들끼리 사우면서, 손님으로 갔어도, 밥도 못얻어먹고, 콜라만 마시고서 와야 하는 상황이 된적이 잇엇지요. 근데, 친구의 붇탁대로, stanford 대하고 로고가 새겨진 shirts를 여러장, 나이어린 조카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사갔는데,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어서, 제대로 전해주지도 못하고, 어수선한 분위겡서 , 오랟동안 알아온 집안 식굳ㄹ이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잇었는데....
집안을 들쑤셔 놓앗던 그 여조카가, 아주 미안한 표정으 없이, 그래도 눈치를 엄청나게 살피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니까, 다른 식구들이, 무슨 낯짝으로 , 그얼얼로 다시 들어왔나고 하면서 화를 내는데, 그대로 아주 당당하게 나에게 오더니, 삼촌 스탠포드 셔츼 주세요 하는데, 어차피 주려고 샀던 두장이 남았기에, 그냥 두장을 주었고, 펼쳐 보더니, 이쁘다 하고서, 다른 식구들의 잔소리를 다 들으면서, 다시 잡밖으로 나가 다러고요.
근데 그 얼굴 표정이, 집안에 불란을 일으켜서 욕을 잔뜩 먹으면서도, 그 셔츠 두장이 탐이 나서, 욕을 더 먹을줄 알면서도, 일단 집안으로 들어와서, 셔츠를 쥐고, 예빠다 하고서는, 다른방에 가서, 셔프오 갈아 입고서는, 그대로 나가는데 아주 애기같이 , 전진난만한 모습을 , 그대로 지켜 보면서, .. 그 집안 다른 어륻들이 다 또같이느겼는지, 왜 그런 펴정을 짓고 나가서, 그전에 잔소리한 어른들을 미안하고 가슴 아프게 해, 하는데.,.... 참, 할말이 않 나오더라고요. 저도 그 얼굴 표정이 아주 인상에 남더라고요. 겨우 대학 셔츠 두장으로 , 한 사람의 마음을 그리 발게 해주엇다는거에도 놀랏지요. 아뭏든, 그날, 나와 친구들이 가기전에, 그 집안 식구끼리 , 엄청나게 싸움을 햇던 모양 입니다.
나보고, 다음엔 sweatshirts 사다 제수오 하니까, 다른 조카가, 자신이 고부 잘해서 스탠포드 들어갓으면, 납보고 사다달란 소리 안해도 되는데, 공부도 못해서 , 스탠포드에 못 들어가면서 , 왜 스탠포드 셔프를 입느냐고, 잔소리도 하더라고요 거기다가 동조하는 소리도 들리고. 그래도 그 여조카는 , 그 스태포드셔츠을 입은것애 행복해 하더라고요.
우리는 친구와 함께 나와서, 저녁을 먹고, 잡담을 하다 헤어져서 각자 집에 갔는데, 한밤중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다른 조카 한테서 전화가 왓는데, 집안에 사고가 생겨서 , 술취한 어른들이 많아, 한국처럼 대리 운전도 없어서, 식두들 이동을 부탁한다고요..... 무슨일이냐니까, 어느 병원 이래요. 식구끼리 싸우다가, 너무 흥분해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어른이 잇나했는데, 가보니깐, 그 여조카가 집에서 나가자 마자 교통사골르 당하였는데, 전 직접 모습을 못 바옸지만, 그 나에게서 얻은 스탵포드 셔츠릴 입은 상태에서 , 아주 흉찍하게 다쳤는데, 어른들은, 불과 몃시간 전에 그셔츠를 입으면서 좋아햇던 모습과 , 교통사고 당한 모습이 겹치니까, 마음이 몹시 아팠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술에 잔뜨 취해서....
내 minivan 에 잔뜩 태워서, 집으로 모셔다 드렷는데, 저에게도, 그 셔츠를 입고서 좋아하던 모습이 계소 떠올라서, 우전하기가 딤들엇지요. 그리고 지금도 종종 떠올라요. 선물을 하면, 상대가 좋아서 받겟지만, 그후로 그때와 같은 달ㄴ 불행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후론 선물은 아주 제한적으로 하지요. (어슬픈 핑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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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르 여행 하면서, 가슴에 남는 마지막 눈빛을 많이 보앗지요. 상당수의 경우, 진실은 모르지만, 그때의 느낌으로는, 죽기전에 솔직한 표현 이엇다고 생각을 하게 되네요.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과,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는데, 내가 아무것도 해줄수 없엇다는 것에는 , 몹시 아쉽지요. 운명은 그대로 받아 들이고서 살아야 하나 봅니다.
일례로, 바위 등반을 할대, 밧줄을 아주 여유있게 가져 가야지, 모자라게 가져갔다가, 연결할 밧줄이 없으면, 높은 바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떨어질수 박에 없지요. 그리고 밧줄에 연결해서 내 몸음 의지하는 카라빈이나 못등도 여유잇게 가져가야지, 없으면, 내 몸을 밧줄에 매달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암벽 등반에서, 내 목숨도구를 덜 가져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요.
등산길에 만났는데, 밧줄이 모자라거나, 카라빈이 모자라지만, (그런 장비가 목술과 직결 되기에 엄청나게 비싸지요), 그냥 등반을 시도하는 일분 산악인을 보게되고, 아떻게든 말려 보려고 하지만, 그런 권고는 무시하고서 가려고만 하지요. 그렇다고 내 장비를 대신 주고서, 내 목숨과 직결되는 밧줄과 카라빈을 빌려 주엇기에, 내가 등반을 안할수도 없지요. 난 내 목숨의 안전을 위해서, 밧줄이니다 카라빈을 , 항상 여유있게 가져 가지만, 그겋다고 , 그 여유분으 다른 등반객에게 주었다가, 내거싱 모자라게 되면, 내 목숨이 위토로워 지지요. 등반중에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장비는 항상 보통보돠, 몇개씩 더 여유있게 가져가지용.
그랫는데, 그 밧줄이 부족햇던 등반객이 , 예상대로(?), 밧줄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 위험하게 하산을 하다가 추락을 핟다던가, 카라비니이 모자라서, 밧줄에 제대로 몸을 연결하지 못해서 추락을 해서 사망 한다면, ....., 참 씁쓰름 해지지요. 부족한 장비에 분명히 사고가 날줄 알앗는데, 내 장비를 줄수도 없고, 말려도 말을 안듣고.... 결국엔 사고사. .... 그런것이 그 사람의 운명이겠지요.
제가 중학교 시절, 저는 지금도 수영을 못하는데, 그때 수영을 아주 잘하던 동네 형이, 그당시 뚝섬에서 수영을 시작해서 한강을 여러번 거넌적이 잇었는데, 70년대 초반,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서 한강을 건너기던 시절이엇는데, 나와 친구는 그냥 배타고 건너자고 하여도, 그 동네형은, 자신은 려러번 한강을 수영해서 건넌적이 잇었다고, 배삮을 아끼겟다고, 수영으로 건넌다고 하는데.....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그냥 수영르 하게 하였지요. 배로야 금새 건넜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몇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안오더라고요. 그래서 놀러 가지도 못하고, 마냥 기다리다가, 저녁때가 가까워 왼 보도 고프고 하여서, 다시 나룻배타고 건너와서, 물어 물어서,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그 형집에 상황을 알려 주엇지요. 그 당시는 전화가 있는 집도 많지가 않아서, 공중전화룰 주로 사용했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들으니, 지난 밤에 시체를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수영에 자신이 있었고, 벌써 한강을 여러차례 수영으로 건넜던, 그 고등학생 형이, 물에 들어가기전의 자신만만했던 표정과, 중학생이 되어서도 수영도 못하면 어떻나냐고 거겆해주던 그 얼굴 표정이 그대로 기억에 남지요. 지금은 많이 기억해서 희미해 졋지만, 아마도 그 당시에,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는 것을 금지 시키니다는 폿말앞에서, 옷을 벗고서, 물로 들어가던 뒷 모습은 왠지 망설이는듯이 보여서 놀랏지요.
첨벙첨병하면서, 앞으로 쭉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머뭇 거리면서, 나가다가 머뭇거리다가 나가다 함녀서, 물속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저 형 너무 우리파에서 폼을 잡으려고 일부러 수영으로 거너는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덜라고요. 하지만 벌씨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어서, 말릴수도 없엇지요. 그런 마지막 모습도 그대로 기억에 남는데, 그 형의 운명이었겟지요.
나중에 더 커서 , 알게된 지식으로는, 그 당시 한강물의 수온이, 수영을 학기에 적당하지 앟은 온도여서, 계속 망설이면서 들어갔던것 같습니다. 수온이 적당치 않으니까, 수영중에 심장마비가 났겠지요.
살면서 ,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눈빛을 절대로 잊지 못하는 상황은 두고두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요.
세상은 그런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잘만 돌아가지요. 세상엔 즐겁게 할일 많아요. 그래서 계속 전 제가 추구하는 여러가지에 몰두하면서, 살고 있지요. 그냥 갖가으 운명을 받아 들익고서 살려할분ㅇ, 어던 윈위적인 것으로, 사람의 주어진 운명을 바꿀수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May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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