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65: 아득한 추억들 |
한국에 자주 나가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을 하는데,
서울 근교 어딘지 갔었는데, 저 멀리서 뻥튀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뻥튀기는 정말로 추억속의 먹거리자, 볼거리였지. 뻥 터지는 소리가 몹시 시끄럽기는 하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소리. 뻔데기 장수의 뻔, 이나, 소독차가 하양 소독약을 뿌리면서 가는 붕하는 소리 (그래서 어린 이이들 교통 사고가 많이 일어났었지), 아이스케끼 하는 아이스케키 장사의 목소리도 추억의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나쁜 위생 상태로 콜레라나 식중독의 원인이 되어서, 먹고 나면 배가 아픈 경우가 많았지.
근데 가까이 가서qh니, 경찰도 와있고, 어떤 아줌마는 아주 열을 내면서, 시끄럽게 왜 이동네에 와서 , 애들 공부를 방해 하느냐면서, 뻥튀기 할아버지를 다그치고, 경찰에게는 , 왜 제대로 공무집행을 않하느냐고 소리소리 치는데, 뻥튀기 화로 불을 한번 지피면, 쉽게 옮기지를 못하니까, 오늘만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아줌마는 소리치고, 경찰관은 업무 영역이 아니라면서, 자꾸 피하려고만 하고.
뻥튀기가 몹시 시끄럽기는 하지만, 추억의 하나지.
다른 동네 사람들, 화로에 불을 지피면, 쉽게 못 옮기니까, 매일 동네를 바꾸어 가면서 장사를 하니, 오늘 하루는, 이동네에서 하게 해주라는데도, 그 아줌마는 혼자서 미쳐서 날뛰고...
그런 와중에도 , 동네 사람들 일부는, 쌀을 한바가지 들고와서 , 뻥튀길때를 기다리고. 싸우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에 못 담았는데, 그 후로는, 한국에서 뻥튀기는 것을 직접 볼수가 없었슴. 너무 아쉽더라고. 막 뻥 소리가 나기전ㅇ, 아저씨가 곧 터집니다 하면, 다들 귀를 틀러 막고서, 기다리다가 예상된 뻥 소리에 놀라면서도, 즐거운 웃음을 뛰게 되고.
그 아줌마는, 즐거원 하는 사람들을 보며넛, 무엇이 그리 배알이 꼴려서, 혼자서 뻥튀기 장사를 쫒아 내려고 하엿는지? 하기는 지역 동네 주민의, 아주 무식한 이기주의로, 불자동차 사리렌 소리가 시끄럽다고, 그래서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동네 아파트 앞에 새로운 소방서가 들어서는 것을 , 반대하는 시위를 할 정도니......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하는데....
한 아줌마만 소리치고 난리엿지, 벙투기장사 부근에 모엿던 수십명의 어른들과 어이들은 즐겁기만 하엿지. 난 그때 사진 못 찍은것이 못내 아쉬운데....
사실 에전에 묵었던, 압구정역 중국집옆에 뻥튀기 기계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밥풀과자를 팔지. 동네 민원이 심해서, 특수기계를 만들어서, 압축괸 공기를 빼기에, 뻥튀기 기계는 옛것과 거의 비슷한데, 뻥 소리는 않나더라고. 종종 지나가던 사람들이, 뻥 소리 듣고 싶다고 하는데, 구청에 또 민원이 들어가면, 쫒겨 난다고, 절대로 뻥 소리 못낸다고. 현대백화점 대각선으로 건너편쪽에 있슴.
그런 추억 거리를 이해 못해주는 사람들은 이해가 않되.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녀때인가, 뻔데기 장사가 , 둥그런 뽑기 판에 먼저 작은 화살을 던져서 뽑게 하는데, 주로 꽝이 나오고, 아주 작게 , 번데기 한솥 을 줄것처럼 갈라 놓는데, 그 작은 삼각형이 너무 작아서, 찍을 홝률은 아주 적지. 근데 내가 작은 화살을 던졌는데, , 바로 번데기 모두 다가 걸린것이지. 뻔데기 장사옆에는 항상 구경꾼이 있었고, 나도 놀랬고, 다들 놀랫는데, 그 뻔데기 아저씨, 내가 어린 국민학생이니까, 뭐가 어쩌고 저째고, 다시 해야 한다고 하는둥 하니까, 구경하던, 형들이 , 번데기 다 주어야 한다고 하고서 싸우는데, 나야 국민학교 3학녀의 입장에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데, 뻔데기 아저씨는 리어카 끌고서 다른데로 가 버리더라고. 그때 아쉬움이 컸지. 그 번데기로 동네 친구들 포식 시켜줄수 잇엇는데.
그후로 그 번데기 어저씨는, 우리 동네에는 오지 않더라고. 길기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그냥 모륻체하고 가고. 나야 , 번데기 한솥 다 달라고 하고는 싶은데, 어른들한테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 당시 동네 친구들은, 그 사건을 다 기억하고, 2년전에 한국에서 만났을때, 또 얘기하면서, 그 당시 그 번데기 한솥을 다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면, 그 주변에 잇던 여러명에서, 번데기 한봉지 씩리아도 주었으면, 아주 좋은 인상으로 남앗을 텐데 하였지. 5-6명 애들한데, 번데기 한봉지 씩이라도 주었으면, 좋게 남앗을 텐데. 한봉지라, 신분지로 둘둘 말아서, 엄처와 검지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얼마 되지도 않는데.
번데기 장사에 대한 , 어린이의 추억을 훼손시켰지. 뻔에기는 맛은 있지만
또하나 훼;손된 어리때의 추억/악몽은, .... 한참 어리대 인데, 리어카에 해삼 멍게를 팔고, 옷핀을 활짝펴서, 찍어서 먹는, 리아카에서 파는 경우가 많았지. 그당시 시세로, 1원이면 해삼 한덩어리였던것으로 기억.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곤 하엿는데..... 한번은 그 당시 어린이에게는 커다란, 나인들 사람은 기억을 하는, 커다란 회색의 5원짤리 동정을 갖고서, 해삼을 사먹으려고, 해삼장사에게 주엇는데, 일인분만 주고서는, 4원을 거슬러 주지 않더라고. 그래서 잔도 달라고 하니까, 나보고 1원 내고서 왜 거슬러 달라고 하냐고 하고, 난 5원짜리 주엇다고 하고, 어린애가 어른하고 말 싸움ㅇ; 되겠어?.....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동이엇는데,, 그때 경기중학교에 다니던 동네형이, 내가 5원짜리 내는것 보았다고 하고, 다른 애들도 5원짜리 내는것 보았다고 지원해 주었어도, 나이든 아저씨를 이기기가 힘들지. 그 경기중학교에 들어갓던 형은, 아주 성격이 강해서, 아저씨 왜 어린애를 속이냐고 하니까, 그 아저씨는 경기중학교에 다니면 다냐고, 소리치고....
결국 난 4원 읽어비리고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해삼 장사는 리어카를 끌고 매일 우리 동네에 오고, 경기중학교에 입학한 형은, 다른 동네 어른들에게, 해삼 장사가 이린앧한테 5원 받고서, 1원만 받았다고 했다고, 쫒아 내야 한다고 하고. 그러더니 우리 동네로 해삼장사는 오지 않더라고.
그 당시, 5원이면, 혼자서 해삼 멍게 포식을 할 정도엿는데..... 약자는 돈을 잃고, 하소연도 못하고.
그러고서 이문동으로 회기등오르 이사를 갔다가, 4년만에 다시 동대문으로 이사를 왔을때는, 옛날과는 많이 변한 동네 모습에 낯설게 느껴지더라고. 전차는 아직도 다니고 있었기에,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는, 동대문이 종점이어서, 전차를 180도 돌려서 온 방향으로 다시 출발하게 하는등, 볼거리가 꽤 있었고, 지금은 없어 졋지만,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날이 새로이 만들어져서, 오가는 사람도 만들어지고, 새로운 상가도 생겨서, 볼거리가 많아졋더라고.
옛 동네 친구들도 대부분 그대로 있었고, 어려서 부터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고, 동무을 주었던, 경기중학교에 갔던 형은, 경기고들학교 학생이 되엇고, 그 형의 친구와 선후배도 많이 알게되어서, 자주 그 형 친구들집에 놀러가곤 하였고.
그형하고는, 내가 중학교 다닐때즘 부터 ,연락이 완저히 끊겼는데, 어릴때와 , 형이라고만 불럿지, 이름은 기억을 못하기에, 그후로 전혀 찾을수가 없더라고. 그형이 동숭도의 서울대로 진학을 햇기에, 종종 나를 데리고, 그 당시는 개천을 복개공사 하기 전이라서, 마로니에 개천변을 걷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함. 학림다방에도 자주 들럿고. 개천 길에 다리가 여러개 놓여있고, 마로니에 길은, 몹시 분위기 있는 장면 이었슴.
어렸을때도, 서울이 경기도보다 좋다고 알고 있었는데, 예외가 단 하나 있었씀. 그 당시는 중하교도 시험제 엿기에, 동네형들이 경복, 서울, 용산, 휘문, 중앙등 여러 명문중학교에 입학을 하면, 지나던 어른들이나 동네 뻔데기, 해삼, 아이스케키 장사들도 축하한다고 해주곤 하였는데.
서울중학교에 들어간 형에게도 명문학교에 들어갔다고, 엄청나게 축하한다는 소리를 하였는데, 경기중학교에 들어간 형에게는 더 많은 어른들이 축하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위에 언급했던 해삼을 리어카에 팔던 아저씨는, 그 형보고, 경기중학교에 들어 갔다며, 함녀서 축하한다고, 해삼을 공짜로 먹으라고 옷핀핀 찍는것을 그냥 주더라고. 그러자 그 형이 어떻게 혼자 먹어요, 얘들도 주어야지 하니까, 핀옷핀 여러기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면서, 너희들도 하니싹 먹어라 하기에, 그때 해삼 하나 얻어 먹으면서, 그후로도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계끼는, 다른 중학교에 입학학 형들에게는 공짜로 해삼을 안주었는데, 경기중학교에 들어간 형에게만 공짜로 해삼을 주엇기에, 경기중학교가 몹시 좋기는 한데, 성루이 경기보다 더 좋은줄 알았는데, 단 하나의 예외. 학교의 서열화라는 것은, 한참 커서야 알게 되엇고, 그 당시로는 , 경기중학교에 입학학 형이, 서울 중학교에 입학학 형보다, 축하 인사를 더 받는것에 놀랐고, 경기중학교에 입학한 형을 쫒아 다니다 보면, 축하한다고, 과자도 주고, 떠복이도 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기중에 들어간 형을 더 쫒아 다녓슴.
그랬던 그 해상파는 아저씨는, 며칠뒤에 내돈 5원을 받고서, 1원만 받았다고 우기니까, 아주 밉고, 원통하더라고. 4원이면, 번데기 한봉지, 해삼 한조각, 떡볶기 일인분등, 네번이나 간식을 사먹을 수 있는 큰동이었는데.......
그 경기중에 들어간 형은, 지금은 얼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지막 만낫을때가, 중2-3때 였는데, 그 당시 대학생인 그 형은 나보다 키가 작았던 것으로 기억. 왠지 실망도 컸지. 중3때 키가, 지금 내 키인데.
아주 어린 시절, 그 형은 동네에서 어닐 우리들을 끌고서, 창경원에 종종 갔엇는데, 몰래 개구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입장료를 내고서 들어간것도 아니고, 문지기 아저씨와 뭐라고 한창 말을 하더니, 우리들을 그냥 이글고서 들어가더라고. 흔히 말하는 , 아주 수완이 좋은 사람이엇는데, 어려서 부터 수완도 좋고, 당당하게 앞에 나거기를 망설이지 않더라고.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인데, (다큰 후에 다시 생각을 해도), 어린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만을 보여주엇던 형.
희미하지만 결코 잊여 지지 않을 , 오래된 추억들..... 같은 추억을 나눌수 있는 사람이 잇으면 , 더욱 좋은 추억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울렷는데, 벌써 넷은 병으로 먼저 갔고, 이제 셋만 남았는데..... 형 한명도 지금 암으로 누워 있는데,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몇년째 메신저로만 주고 받고, 만나지는 못했슴.
같은 좋은 추억과 과거를 나눌수 있던 사람들과 , 오래 같이 살아올수 잇엇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엇다고 봄.
(May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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