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64: 오래전 기억 |
나의 자란 환경과 배경을 남과 비교할수는 없기에, 경험의 정도도 다르겠지.
그간 여러차례 미국 입양아 출신을 도우면서 경험한 것을 언급햇었는데, 많은 그들은, 버려지거나 길을 잃었을때, 입양이 될 당시등을 잘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3-4살때 일.
내가 3-4살때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을 못하고, 유치원때도 약간만 기억을 하고, 거의 기억이 없고... 국민학교 1학년때도, 몇가지는 기억이 나지만, 거의 기억이 없고...
근데 입양아들은, 버려지고 입양되는 과정이 아주 특수한 상황이어서 엿는지, 3-4살때의 일을 기억을 하더라고. 물론 얼마나 정확한 지는 알수가 없고, 말만 겨우 할정도고, 글은 전혀 모르고, 인지 능력도 겨우 갖았을 3-4살 나이 인데도 기억을 하더라고. 그리고 더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고.
그에 비해서 5-6 살 정도만 되어도, 많은 기억을 하기에, 그런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지 않아서, 오히려 나에게 질문이 없더라고. 입양을 늦게가도 유치원때인데, 실제로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더 어린 아이를 원하는 것이 입양부모들이지. 국민학교때 입양을 간 경우는, 한국어도 잘 하는 경우라서, 굳이 티를 안내려고 하더라고.
버려졌을 경우는 기억이 거의 비슷한데,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아주 예쁜 새옷을 사 입혀고, 과자도 한봉지 사주면서, 어딘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온다고 하고 떠났던 경우... 맛있는 과자를 먹다가, 그만 자신이 버려진다는 것을 인지 못하고. 인지 능력이 아직 안생긴 나이니, 자기 이름도 모르는데, 그럴경우, 옷안에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넣어놔서, 나이는 정학히 알수는 잇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이름은 알수가 없고. 많은것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지.
진짜 맨정신으로 듣기가 힘든것은, 625때 피난가다가 폭격으로 식구들 다 몰사하고, 혼자 남아서 울고 있을때, 때로는 몇시간이상인데, 그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데려갔는데, 지나가던 미국이나 국군이지, 미군이 데려갔으면 미국으로 입양될 확률이 높고, 국군이 데려갔으면, 그냥 한국 고아원으로 가거나. 미국으로 입양을 가거나..
어쩌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아주 많이 취하면, 그 당시를 취한 상태에서 조금은 기억을 하믄데, 식구와 친척들이 꽤 여렷이 가다가, 비행기 소리가 들리니까, 다들 길옆으로 피하하면서 숨는데, 폭탄 소리들으로 시끄럽고 나더니, 한참이 지나서, 다른 사람들은 다시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식구들은 다 잠만 자면서, 아무리 울어도 깨이나지 않더라고..... 그리고 지나가던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주는, 물도 마시고, 초코렛도 먹고, .... 그러다가 몇달 혹은 몇년을 미군부대에서 지내다가 , 입양이 되어 오는 것이지....
내가 20대 후반에 6개월 정도, 미국 잡지의 기자 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중동에 2달정도 파견을 나가면서, 그와 같은 상황을 어렵지 않게 여러번 목격을 하엿지. 물론 전방엔 못가고, 후받 도시에서 취재를 하엿지만, 도시 시장등에서 폭탄 테러를 하는것을 여러번 목격 하고서, 두달만에 , 아프리카로 전출을 갈수밖에 없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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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 친구까지 기억을 할수가 있을까? 난 인성유치원이라고, 회기동 경희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는데, 유치원 당시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 일단 그 부근인 회기동과 휘경동에 사는 원생이 대부분이엇기에, 동네 친구들 이었는데, 유치원 같은 반에 있기도 하였고, 실제로는 한두살 나이차이가 있어서, 어떤 친구는, 같은 유치원을 2년, 혹은 3년을 다닌 경우도 있엇지. 유
치원에서 워낙 친했기에, 그후로 같은 학교를 다닌적이 없어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 친구/동창도 있고. 그럴역우는 집안 끼리도 잘 아는 사이이지.
유치원을 졸업하고서는, 아주 가깝게 청량 국민학교도 잇었지만, 사립이었던 경희국민학교를 선호했고, 상당수는 같이 경희국으로 진학. 같은 유치원 국민학교 동창이라고, 국민학교 동창회내에서도, 티를 내면서 만나지. 물론 경희국 내에서도, 경희유치원 출신들도 티를 내고.
인성유치원 출신들 상당수는 , 바로 보근의 청량국민학교로 진학을 햇는데, 같이 경희국으로 진학을 한 경우와, 개인적으로 아주 친햇던 경우가 아니면, 그후 소식은 모르지. 너무 어려서 오밍도 갖을수가 없었고,
유치원 동창은, 지금까지 보아도, 그때 모습이 그대로지. 유치원때 모습이 않변하더라고. 처음 본것이 53년전쯤 되는데, 지금도 국민학교 동창회에 나가니까 , 현재 모습을 아는데, 얼굴 모습이 안변하더라고. 다만 키는 엄청나게 변하지만.
뺑뺑이로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동대문구의 모든 지역의 국민학교 출신들이 왓는데, 몇몇은 아주 익숙한 얼굴. 그래서 서로가 누구지 ... 하면서 째려 보듯이 보아도, 기억이 않나더라고. 그래서 물어보앗지, 너 나 아니? 아니, 모르는데, 너무 눈에 익은데 기억이 않나.... 어디 살아?.. 어디 국민학교 나왓어? 혹시 유치원도 다녔니? .. 응 인성... 유치원 동창인데, 그전 6년간 전혀 본적이 없고, 6살에서 13살로 훌쩍 컸는데도, 얼굴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서로가 알던 얼굴이라고만 기억을 하는데, 기억이 않났던 것이지.
내가 다녓던 중하교에 최소 5-6명의 유치원 동창생이 있었떤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다들 처음에는, 서로가 많이보던 놈인데 어디서 보앗지 하고, 의구심만 많앗지. 그 나이에 사회경험이 없으니, 국민학교나 유치원 동창일수 밖에 없엇던 것이지.
내가 다녓던 국민학교에서, 같은 중학교로 20명이 왓는데, 사립국민학교 전체가 240명이 않되엇기에, 서로가 다 얼굴을 알고 지냈고.
유치원 동창들은, 국민학교 내내 연락이 없더라도, 중학교 1학년때 만나니까, 서로가 얼굴을 그대로 다 기억을 하더라고. 6살때 같이 생활한 기간이 꽤 된다면, 13세에 만나도 기억을 할수가 있다는 것이지. 물론 서로간에 유치원 시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 서로가 친했는지, 안 친했는지도 기억이 없지만, 아주 눈에 익은 사이라는 것은 기억을 하지.
그후로는 때로, 다른 국민학교 출신인 친구와 어울리다가, 그 친구의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나의 유치원 동창인 경우도 서로가 얼굴을 보고서 기억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잇었지. 물론 친구의 국민학교 동창이니, 거 과거로 가보았지, 유치원 동창밖에 없겠지.
그러다가 공동학군인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지. 서울의 각 지역의 국민학교, 중학교 출신이 모이는 공동학군.... 물론 여기서도 유치원 동창을 몇몇 만났는데, 그러면 유치원 이후로 9년이 지났어도, 얼굴은 그대로 라서, 기억을 하는 것이지. 고등학생쯤 되면, 안면이 익은데, 혹시 아는 사이였는지 묻게되고, 몰랐으면, 앞으로 알고 지내면 되고 하게되지. 어느 중학교, 어느 국민학교 해도 곧옻점이 없으면, 혹시 어느 유치원하고 묻게되고, 그때 유치원 동창이면 엄청나게 반갑지.
서로에 대한 기억은, 눈에 익은 사이라는 것 외에는 없지. 서로가 친햇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같은 유치원 , 아마도 30-40명도 않되는 원생이 1년을 같이 지내다보니, 최소한 얼굴은 않 잊어먹고 기억을 하게되는것 같더라고.
6살때 보았어도, 15살이 되니까 기억을 하게되고. 서로가 기억을 하는것이지, 일반 통행은 아니지.
또한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3년간 소식이 전혀 없었던 국민학교 동창들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역시 생긴것은 그대로 더라고. 다만 키와 체격은 많이 닫라졋지. 국민학교때 나보다 커서, 감히 덤비지 못했엇는데, 나만 하거나 나보다 작아진 경우도 잇고. 나보다 키가 작았는데, 훨씬 커진 경우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은, 종종 , 티비나 영화나, 그리고 한국의 현실상 아주 자주 현실에서도 일어나는데, 어럴때 헤어진 동생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이해가 않가더라고.
유치원동창도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교 혹은 미국에 와서도 얼굴을 보고서 기억을 하는데, 유치원 동창, 혹은 국민학교 동창이라고 해도, 완전히 남이고, 개인적인 사회활동을 전혀 할수가 없는 나이라서, 식구들이 데리고 다녀야만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나이라도, 십여년씩 지나도, 기억을 하는데, ... 한집에서 한방에서 부대끼고 자란 식두인데도, 국민학교때 헤어졌는데도, 나이가 훨씬 들어서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지금까지도 이해가 않가더라고.
국민학교 동창중, 친한 친구들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지냇지만, 240명중에 몇명하고만 지속적인 연락을 하엿지, 대부분 하고는 소식도 거의 모르고 지냈지. 그러다가 내가 한국에 자주 나가기 시작한 40대 초반 이후부터 , 조금씩 더 연락이 되기 시작하엿는데, 서로가 얼굴을 보면, 금새 알아보겟더라고. 서로가 친하지 않아서 , 대화를 나눈적이 없었던 것도, 서로가 기억을 하는데, 생긴 얼굴은 다 기억을 하게되더라고. (극히 일부 성형 수술을 많이한 여동은 못 알아보게되지만).
내가 미국에 살면서, 여행이나 출장도 자주 다니면서, 넓은 미국땅에서, 혹은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중에, 20-30년만에 완전 타지에서 마주친, 동창이나 지인을 아주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도 종종 잇었지.
얼마전 한국의 모임에서, 국민학교때 헤어졌다가, 삼십대가 되어서 다시 만나게된 남애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상당히 dramatic 한 부분이 잇는데, 나나 일분 참가자들은, 내가 언급한 비슷한 경험을 갖고서, 국민학교때 헤어졌는데, 어째서, 얼굴을 기억을 못하느냐는 것이엇지.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저학년때 친구들, 서로가 친하지 않았어도, 같은 학교에 다녓다는 것을 기억을 하는데, 식구사이에서도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이해가 않되더라고.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기에, 굳이 이해를 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나나 내 주위의 친한 지인들의 경우, 다들 종로돝에서 자라서, 어려서 동네친구들부터 그후로 다닌 학교까지, 계속 인간관계가 이어저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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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衛八處士 증위팔처사(위팔 처사에게 드림) 杜甫두보 人生不相見 動如參與商 인생불상견 동여삼여상 今夕復何夕 共此燈燭光 금석부하석 공차등촉광 少壯能幾時 鬢髮各已蒼 소장능기시 빈발각이창 訪舊半爲鬼 驚呼熱中膓 방구반위귀 경호열중장 焉知二十載 重上君子堂 언지이십재 중상군자당 昔別君未婚 兒女忽成行 석별군미혼 아녀홀성행 怡然敬父執 問我來何方 이연경부집 문아래하방 問答未及已 兒女羅酒漿 문답미급이 아녀라주장 夜雨剪春韭 新炊間黃粱 야우전춘구 취간황량 主稱會面難 一擧累十觴 주칭회면난 일거루십상 十觴亦不醉 感子故意長 십상역불취 감자고의장 明日隔山岳 世事兩茫茫 명일격산악 세사양망망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함이 별자리들이 움직이는 것 같아 오늘 저녁은 다시 어떤 날이길래 함께 이리 촛불을 들었단 말인가? 젊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하여 둘 다 귀밑머리 허옇게 되었고 벗을 찾으면 절반이 귀신 되었거늘 날 불러주는 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졌네 어찌 20년 만에 그대 집에 다시 오리라 생각했겠나 작별할 때 그대는 아직 미혼이었는데 아이들이 벌써 여럿이네 기쁘게 아비의 친구를 공경하며 내게 어디서 오셨나 묻고 문답을 마치기도 전에 아녀자들이 술상을 펼친다 비오는 밤에 봄부추를 잘라오고 새로 메조를 섞은 밥을 짓는다 주인은 얼굴 보기 어려움을 들어 내리 열 잔을 권하는데 열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음은 당신 마음이 그대로임을 고마워 해서지 내일 산을 넘어가면 세상일은 양쪽 다 아득하겠지
(April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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