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58: 못다한 이야기들 4 |
처음 대학교에 들어갔을때, 점수가 아주 좋아서, 비전공이 전공으로 전과를 할수 있는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과가,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 학교에서 3명에게만 열인, 콤퓨터 공학이었는데, 난 수학을 전공하러 갓었기에, 아무런 갈등없이, 콤퓨터 공학 전과를 안하겠다고 해서, 많은이에게 충격을 주었고, (지금도 왜 그것이 충격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겟고), 일부 학생은, 나에게 판단을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충고를 했을정도라서, 그런 지식 수준이 낮은 대학으로 전학을 온것을 엄청나게 후회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후로 계속 원하는 학생들속에 끼어서 공부를 할수 있는 대학교를 찾아서 , 이리저리 여러번 전공까지 바꾸면서 전학을 다니게 되었지.
내가 최고 명문대학에 갈 성적과 능력이 되었으면, 무조건 가야만 햇지, 랭킹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학교에 가면, 만족을 할수가 없게되더라고.
즉, 능력이 없어서, 못한 사람들의 핑계가, 어느 대학에 다닌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전공한 것이 중요하다고 거짓으로 위안을 삼는데,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만 중요하지, 전공이 무엇이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고. 현실은 대학 전공대로만, 밥벌이를 하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
같은 레벨에서라면,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지만, 못이룬 사람들이 할리화로 말하는, 어디에 잇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과, 다른 종류지.
예로, Caltech 이나 UC Berkeley 나 최고의 이공대학인데, 어디가 더 좋은지는 말하기가 애매하지. 그럴 경우에만 비교가 가능하지. 예로 수학전공이라면, 버클리가 칼텍보다 훨신 좋다고 할수가 있지. 하지만 응용수학이라면, 칼텍이 조금 더 낮다고 할수가 있겠지. 물리학이라면, 거의 마찬가지이지만, 자긍심은 칼텍 물리학과가 더 쎌걸. 그 레벨에서는 그런 비교가 가능하지만, 학교 레벌이 그 정도가 아니라면, 예로 UCLA 나 콜럼비아 대학이라면, 그런 비교가 될수가 없지. 물론 영화학과라면, UCLA 가 미국 최고이지만.
수학에서 원래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위상학, Topology와 기하학, Geometry 가 융합된 분야. 90년대 까지만 하여도, Algebraic Geometry, 대수 기하학이 가장 어렵고, 첨단 분야였지. 근데 내가 진짜 만나고자 했던 기하학 부분의 교후는 , 버클리 마지막 두학기 전에, John Stallings 교수가 가른치는 Algebraic Geometry 를 택하기 전에는 못 만났는데, 그 때가 , 그 교소가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강의엿지. 다른 교수를 찾기도 힘들고, 다른것도 너무 많이 해서, 그 당시는 기하학을 계속 하기에는 너무 늦었지.
그 십년전쯤으로 돌아가서, 마땅한 기하학 교수가 없다보니, 다른 분야를 더 공부하게 되었지. 수학에서는 논리학, Mathematical Logic 을 많이 택했고, 물리학과로 가서, 입자학실험실에서 연구도 하고, 왜 물리학과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몰려 가는지도 이해를 하게 되엇지. LA 지역의 큰 대학엔 , 논리학 교수가 두명 있었는데, 둘다 그리스 사람이고, 일년짜리 논리학 강의가 있엇지. 다시 인사조차 않가게 되는 교수들...... 생략....
물리학과에서, Mathemactical Physics, 수리 물리학과, Astronphysics 천체 물리학을 주로 들었지만, 연구는 Particle Lab, 입자 물리학 실험실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흥미를 갖게 되엇고 , 수학을 완전히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원래 수학전공으로 시작을 했기에, 수학, 물리 복수 전공으로 학부마치고, 대학원도 다니느라고, 엄청나게 힘들엇지.
입자 물리학에서, 여러 저명한 교수들엑게 배우면서 연구도 하고, 그 당시 새로운 입자가속기를 십여개 대학이 공동으로 개발을 하는데, 내 젊은 지도교수인, Herb Chen 교수가 담당을 하면서, 내 마음이 거의 물리학으로 옮겨 갔을 즈음. 그 교수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서, 8개월 남았다는데, 하면서, 연구할 상항도 아니어서,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받느라고 머리가 다 빠져서, 모자쓰고 며칠에 한번씩 학교에 오는데, 그런 모습을 몇주 보니까, 도저히 못 보겟더라고. Chen 교수는, Reines 교수로 지도 교수를 바꾸엇다고 하는데, 그때쯤엔, 물리학에 완전히 관심을 잃어갔지.
첸교수 사망이후에 완성된 새로운 입자가속기에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만 5명이 나왓고, 앞으로도 몇명 더 나롱것이라는게 학계의 정설이고, 라이네스 교수는, 50년데에 neutrino 발견으로 거의 40년간 노벨 물리학사아 후보로만 오르다가, 결국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
그후로 마음을 잡고서, 다시 공부해 보고자, 버클리로 갔고, 수학을 다시하게 되엇는데, 그 사이에 건축한, 언어학, 지역학들을 공부햇고, 건축회사에서 작품도 남겼고, 잠깐동안 잡지사의 사진기자 생활도 하엿엇지.
버클리로 가서는, 알타이언어학을 공부도 하엿지만,역시 수학공부하기엔 어느 대학교 보다고 좋더라고. 그래서 다시 수학 강의를 듣기 시작하는데, 기학학엔 마땅한 궁합맞는 교수를 쉽게 못 찾았고, 그전에도 공부했던 논리학엔, 버클리가 미국 아니 세계 최고였지. 십여명되는 논리한 교수들이 잇었으니. 명문대학 수학과라도, 논리학 교수는 한명뿐인 경우가 대다수.
비록 정말로 원햇던 기하학 공부에 몰두 하지는 못햇어도, 논리학에 엄청나게 몰두하면서, 응요 논리학 분야가 되는, computer science 와 AI 쪽으로 입문을 하게 되엇지. Turing machine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나니까, 콤퓨터공학의 많은 부분을 손댈수가 있는데, 기하학을 응용한, computer graphics를 자연히 하게 되었는데, 예전에 건축을 하면서도, CAD 와 structural analysis 가 주전공이어서, 조금의 공통성은 있게 되엇지.
그럼으로서, 순수 수학의 범주를 벗어나서, 응용 수학의 분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당시 인터넷 광풍이 불엇고, Berkeley AI Lab 에도 엄청난 투자자들의 유혹이 있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연구원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현실로 나와서 startup 을 차렸는데, 대부분은 결구 다 실패. 물론 일부는 천만장자가 되엇는데, 주로 일반 상업용 제품을 개발한 경우에만 성공했고, AI 를 응용한 제품 개발은, 아예 AI 시장이 죽었기에, 다 실패.
나도 그 연장에서 virtual reality 로 platform 개발을 하다가, 그 당시로는 엄청난 투자금과 나의 모든 재산을 날렷지. 그때 이후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조절이 않되. 그전까지는 "김날씬' 하면, Daniel 로 알 정도 엿는데.
사실 학생시절과 VR 회사 설립 상이네는 몇년의 시간이 있고, 그 사이에 난 수학교수 생활을 하엿지.
처음 수학교수 생활을 햇을때는, 80년대 후반이엇는데, CSULA 에서 tenure track 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기 전에 , 교수로 취직을 해서, 대학원도 다니면서, 학교에서 강의도 하엿지. 별로 즐겁지 않은 기억들. 사실 그당히, 한국으로 귀국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미국에 남기로 하엿는데, 60 이 된 지금, 다시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 한국으로 가서, 평범하게 살았어야 햇다는 아쉬움이 크지.
두번째 교수생활은 버클리 이후인데, 그땐 벌써, 세개의 PhC 가 있어서, 교수직을 잡는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세계 구경도 할겸, 중국의 P대학에서 한학가, 상해의 F대학에서 한학기씩 가르쳣는데, 중국 1-4위의 대학이어서, 중국 학생들 엄청나게 똑똑하더라고.
그리고는 싱가포르대학으로 가려다가, 일본의 K대학의 응용수학과로 방문을 햇는데, 막상가서는, 더 이상 연구교수로 명문대학을 떠도느니 보다는, 미국에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겟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지만, 미안햇지만, 교토 대학에서의 교수 생활을 저빅로 하엿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몇년전까지 일본의 여러 회사에 자문을 하면서, 아주 좋은 경험을 많이 쌓게 되었지. 교토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엄청나지...
그러고서 미국으로 곧장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 들렷는데, 미국에서의 인연으로, P대학 수학과에 초대를 받앗는데, 임용을 받아들이게 되엇지. 그땐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국인 동창들이 몹시 많았지. 근데 막상 조금 있어보니, 학문적인 자극이 안 생기더라고. 또한 오히려 일뵨 K대학 교수가 나앗을 것이라는 생각도 계속 들엇고. 또한 일본의 진구들보기도 민망스럽더라고. 일본에 안있고 미국으로 간다고 하고서,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임용을 햇으니....
그 당시 분위기는, 미국에서 박사받고, 일단은 P대학 교수로 몇년 잇다가, S대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지. 근데 나에게도 그런 오퍼가 들어왔지. 응용수하과 콤퓨터공학쪽으로 3명이 패키지로 옮겨가면 어덯겟느냐는 것인데, 난 한 학기도 않 마친 때어서, 그리고 교토대가 더 나앗을 것이라는 생각도 강했기에, 고려해 보겟다고 하였는데......
상황이, 그 몇년전에, 수학과의 논리학교수가 없어서, 임용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엿는데, 그 당시는 내가 논리학보다 AI 응용에 더 빠져 있었고, 학계에 남을 것인지, 현실에서 사업을 할것인지 망설이고 있던때여서, 교수 임용지원서를 안내고서, 거부햇었지, 나중에 듣기로는 5명에게 임용을 해주겟다고 했는데, 모두 다 걸절햇다고 해서, 나같이 자만심 많은 놈이 꽤 되네 하고서 놀랏지. 몇몇 친구는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할것이야. 당장 비행기 타고서 한국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엇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것은, 별다른 학문적인 성과를 못 냇기 때문.
두가지의 기회가 겹치니까, 정식 임용 절차로 들어가자고 하는데, 고민끝에, 다시 학계로 가지는 않고, 현실에서의 응용에 더 치중하겟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임용 포기한다고 하엿지.
하지만 혼자서는 , 만세를 부르면서, 임용이 될 정도로 인정을 받앗다는 것에 엄청난 개인적인 자부심을 갖게 되었지만, 또한 일부는, 네가 그 좋은 대학교수직을 마다하고서, 얼마나 잘되엇나 보자 하면서, 비꼬는 사람도 훨씬 많아졌지.
그러고는 현실에서만 살다가, 몇년전에, 5대 MBA 에 속하는 학교에서 Operational Research 로 여름학기 강의를 바란다는 초청장이 왓지. 일반적으로 지원을 할 경우는, 많은 학문적인 배경 조사를 철저히 하고, 아주 까다론운 인터뷰 고장을 거치지만, 초청을 받을 경우는, 그간 학계나 연구소에서 활약해온 연구 결과르 ㄹ다 분석하고서, 필요하다고, 오라고 초청을 하면, Yes 만 되는 것이라거서, 필요하다면 하면서 , 연구하기로 하고서, 아주 만족스럽게 여름학기를 마쳤지. Tenure track을 시도할 것이냐고 하길래, 더 이상 teaching 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몹시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할수 박에 없엇지.
또한 미국 산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돈맛을 보앗고, 자유스러뭄을 보았기에, 내가 얼마나 편히 살수 있는가도 알고, 그리도 주머니가 두둑해야 마음도 여유로워서, 관대해 질수도 잇더라고. 그래서 학문적인 욕구가 크기는 해도, 어차피 적당한 시기가 지나갔기에, 그냥 현실에서 더 이루자 하게 되엇고, 교수직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지.
참고로, 수하교수들 , 월금 빼면, 다른 부수입이 전혀 없지. 책을 써서 돈을 버는 교수도 극소수고. 또한 정신적인 부담도 커. 수학은 모든 학생이 택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고, 거의 모두가 싫어하는 과목이지. 수학에서 낙제점 받아서, 학점 떨어졌다, 학사경고 받았다, 마지막 학기인데 졸업을 못하게 되엇다 하는 불만은 수시로 듣지. 그리고 자살하는 학생들 상당수가 수하과목 낙제를 받아서지. 국어과목, 역사과목 낙제 받았다고 자살을 하는 경우는 업고, 주로 수학과목 낙제 받았다고 자살을 하는 경우는 많지. 두번 세번 수강을 해도 낙제를 받고.... 이건 여담이엇고.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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