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55: 못다한 이야기들 2 |
며칠전 못다한 이야기들 이라고 주제아래, 내가 에술중, 예술고에 미술 전고응로, 원서도 못 내어서, 가장 아쉬워 했다고 , 언급을 했는데, 그후론, 이틀간 밖에도 못 나갈정도로, 메신저와 전화로 많은 질문이 와서, 왜 이리들 놀라지 하고서, 엄청나게 놀랏지.
국민학교 중학교 친구중에도, 그런 속사정을 아는 친구는 거의 없엇고, 고등하교 친구들도, 내가 예고 출신을 엄청나게 많이 아는게 이상햇다고들 하는데, 어쨌건 내 마음속에 잇었던, 20대가 되기전에, 가장 씁쓰름 햇던 사건.
국민학교 졸업후, 예술중, 예술고에서 미술을 전공해서, 미대로 진학을 햇으면, 어려서 부터 생각햇던 , 내 인생의 길로 살아가게 되었겟지. 미술대학중에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었을지는 ,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 첫 걸음도 떼지를 못했으니...
또다른 하고자 햇는데, 제대로 못하엿던 것은, 음악이지. 음악은 취미로 시작해서, 나들대로 전문적이 될뻔 했는데, 난 미술을 전문적으로 하고자 했을뿐, 음악은 좋아햇지만, 전문적으로 할 새애각을 안햇지만, 오히려 여러번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택하지 않은 경우엿지.
난 어릴때,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배우지 않앗는데, 미술 학원에 다녓기에, 피아노 학원에 안 나갔지. 그러다가, 실로본을 배웠는데, 고적대나 밴드에 보면, 모든 악기가 잇는데, 금관 실로폰 주자도 보통 2-3명씩 있고, 아니면 목관실로폰을 하면서, 실로푼 독주자도 적지만 있는 편이지.
1-2년을 배우니까, 어린이 밴드에 참가해서 실로폰 주자가 될수도 있엇는데, 국민학교때 과외 활동을 하려면, 부모가 일일이 데리고 다니는것이 힘들기에, 학교밖밴드 활동은 못하게 되엇고, 학교내밴드는 여학생만 있어서, 학교시간하고 충동이 않되면, 실로폰 주자로, 목관 실로폰과 금관실로폰을 다 연주하면서, 국민학생으로서는 꽤 활발히 활동을 햇었지. 같은 밴드에 잇는 학생들 거의다가, 음악으로 전공하는 악기로 , 예술학교로 가려고 햇는데, 난 실로폰이 아닌, 미술전공으로 가고 싶엇지만, 원서도 못내고.
중학교에 진학을 햇을때믄, 실로폰은 3-4년을 연주 햇기에,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남자 연주자가 아주 적어서, 남자 실로폰 연주자인 나에게 , 여러 밴드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지만, 어쩌다가 객원으로 연주를 하는 정도엿지, 더 이상은 안햇엇지. 예술중학교로 진학한 남자 연주자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서 있는데, 일반 중학교로 진학학 나는, 2부로 깍은 머리때문에, 모자를 써야 했고. 어쨌건 실로폰 연주를 하면서, 학교박의 행사에 다니면서,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느것은 아주 좋았었지. 그리고 많지 않지만, 실로폰 주자로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난다는 것은, 몹시 즐거운 일이지.
중1 학기 초기에, 가곡을 듣는 취미가 생겼고, 예술중학교에 미술로 진학한 친구들을 통해서, 성악을 하는 친구들도 알게 되어서, 노래를 불러보니, 변성기 시절이지만, 목소리가 된다고 (?) 하여서, 나름 열심히 성악을 주말마다, 비공식적으로 (즉 레슨비를 안 받는곳에서) 성악의 기초를 배우게 되엇지. 그러면서, 여러 한국 가곡을 불럿는데, 나에게는 그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 못지않게 아주 좋은 경험이엇지.
작은 음악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합창을 주로 했지만, 몇변은 나도 가곡을 독창으로 할 실력은 되었고, 난 레슨비 없이 참여햇기에, 음악 콘서트, 포스터나 안내서를 작성하는데, 나의 그 당시로서는 뛰어난 미술 실력과, 붓글씨 실력으로, 포스터를 만들었기에, 공짜 학생이라고 차별을 받는 경우는 결코 없었씀. 한번도 성악을 해 보겟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친구따라 강남을 가는것이 아니라, 성악을 하러 다니게 되었는데.
중3때, 라디오 방송에서 하는, 학생 성악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국민학생 , 중학생, 고등학생, 다 따로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중학생은 변성기라서, 아주 정확히 판단을 할수가 없고, 무리하면, 변성기라서, 목소리를 망칠수도 잇었기 때문이라는데, 난 그당시 일반중하교에 다니고 있어서, 2부로 빡빡깐 머리엿고, 까만 교복을 입엇는데, 나를 제외한 성악을 하는 모든 남학생은 예술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그 당시에는 서울엔 두곳, 지방에도 한두곳 있었고). 긴머리에 양복인 교복을 입고 출연을 햇는데, 라디오 방송이라서, 청취자는 목소리만 듣지만, 공연장에서는, 난 정말로, 기권하고서 나가고 싶었는데, 기권할 용기도 없어서 못하고, "선구자" 를 불러서, 최고상은 아니엇어도, 상을 받기는 하엿지. 심사평이 목소리가 제대로 다듬어 지지 않았다고 하여서, 주로 혼자서 즐겨 부른다고 하였는데, 그 이후로는, 성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게 되엇지.
하지만 중고등학교 친구중에 , 내가 "선구자" 노래를 아주 잘 불럿던 걱을 기억가는 경우는 꽤 되더라고. 몇년전에 고등하교 동창 모임에 갔는데, 한 친구가 나보고, 선구자 한곡 부르라고 해서, 난 그 친구가 기억을 하는것에 놀랏고, 다른 친구들은 무슨 뒷이야기가 있나해서 놀라고. "Funiculi Funiclua" 라는 이태리 가곡도 즐겨 불럿는데, "O Sole Mio" 는 결코 수준급으로 못 불러서, 가장 많은 요청이 들어노는 곡이나, 선구자와 푸니쿨리푸니쿨라도 대신 하곤 하엿지.
대기업에서 인사담당 임원으로 잇는 중하교 친구는, 내가 한국에 가면, 종종 회사직원들 회식에 나도 불러서, 손님이니까, 노래한곳 들어야지 함녀서, 나에게 선구자 노래를 부탁하곤 햇지. 그 친구네 회사 회식에 초재받으면, 당연히 선구자를 부를 각오로 가고. 그 친구는, 아직까지 나보다 선구잘르 더 잘부르는 성악가가 없다는데, 아마도 중1때부터, 내가 부른 선구자에 익숙해 져서 인것 같더라고. 그 친구 어머님 진갑 잔치에서도, 딸 결혼식에서도 선구자를 불럿으니....
한국의 회식 모임에서 , 2차로 노래방에 갔을때, 희망곡에 "선구자'를 누르면, 모든 참가자의 얼굴색이 확 변하지..... 하지만 여태것 나쁜 반응을 받았던 적은 없었던것 같아. 속일수 없는 것이 얼굴 표정인데, 노래 전주가 나오면서, 선구자 라는 제목이 나올때의, 그 표졍들이란..... 다들 상상하는 그대로야.... 하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보면, 다들 안도의 표정을 짓더라고.
몇년전까지도 노래방에 가면, 선구자를 불렀는데, 그리운 금강산도 부르고. 중1때 부르던, 가곡의 레퍼토리가 아직도 그대로. 이제는 옛날처럼 못 부르지. 힘이 들어서 어느 노래건 못 부르겟더라고.... 다만 "O Sole Mio" 를 만족할 만큼 잘 불러보지 못한것은 큰 아쉬움이지. 어쨌건 성악은 자연스러이 포기를 하게 되엇지.
중1 봄학기가 끝나갈 무렵, 드디어 통기타를 , 아버지 허락을 받아서 사게 되엇지. 그당시 1,000원주고, 세고비아 기타를 샀는데, 고3때까지 사용을 햇지. 통기타를 샀다면, 그당시 청년 통기타와 청바지 바람이 불때고, 더 이상, 언급을 안해도, 나의 모습을 상상할수가 잇으리가 봄. 아주 열심히 통기타 연주를 연습햇고, 고등학새이 되어서는, 피아노나 실로폰으로 연주할수 있는 클래식 소품을 기타로 치려고 노력을 할 정도. 지금도 그 당시 수집한 기타 악보집이 수백페이지를 그대로 갖고 있지. 기타는 혼자서 연습 하기에 아주 좋은 악기지.
통기타, 클래식기타도 꽤 치다보니, 전기기타는 사지는 않았지만, 집밖의 연습실에서 전기기타도 꽤 잘치게 되었는데, 고2때 봄날 어느날, 아는 형들로 부터, 락밴드에 가입을 하지 않겟느냐고 권유를 받았는데, 사실 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엇기에, 섣불리 밴드생활을 하다가 학교고부가 엉망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새로운 밴드가 형성되고, 베이스 기타 연주자가 필요하다고, 내가 베이스 기타를 조금만 연습하면 잘 칠수 있을 것이라고, 밴드는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를 하고, 통행금지 전에 다 끝난다고 하여서, 락밴드에서 연주를 해보고 싶었기에, 참가를 하기로 하엿지.
전자기타를 치다가, 베이스기타를 치니까, 새로이 배워야 할것이 좀 있엇지민. 의외로 리듬을 맞추는 것이, 내 취향에 잘 맞더라고. 그래서 한달 이내고, 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악보를 보면서, 락밴드에서 기타, 드럼, 키보드 주자들과 함께, 한달정도의 연습을 거쳐서, 일부일에 5일을 저녁때, 3-4시간씩 연주를 하게 되었지. 그당시 유행하던 팝송이 대부분이었고, 때론 신중현의 미인등, 한국의 락도 양념으로 끼워서 연주하고.
고등학교는 정동에 있었고, 연주하는 곳은 종로3가에 있었고, 집은 동대문이엇기에, 동선이 아주 가까웠고, 고등학교때 정규수업후에, 하던 보충수업은, 과외 받으러 간다는 핑계로 아주 쉽게 빠질수가 잇었는데, 지녁때 정식 연주를 하기전에 약간의 연습 시간을 거쳐서 실제로 연주를 하기에, 최소 5-6 시간은 클럽에서 연주를 하게되었지.
벵이스기타 연주를 하면서, 키보드도 치고, 락밴드에서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을 모두 연주할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 시작햇는데, 정말로 눈깜짝 할 사이에 한달반이 지나더라고.
중간은 생략하고, 도저히 학교공부와 저녁때 란밴드에서 연주하는 생활을 유지할수가 없어서, 락밴드를 그만 둘수밖에 없엇지. 몹시 아쉬웟지만, 고2때, 도저히 락밴드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수가 없어라고. 그 당시 드물엇지만, 락밴드에서 연주하는 고등학생이 있엇지만, 그들은, 전문 밴드 연주자로 나가려고, 학교에 않 다녔고, 부몬님과 학교 선생들이, 클럽으로 찾아서, 끌고 가는 상황이 연출이 되니까, 다들 고등학생인줄 알게 되엇고.
나의 경우는, 학교도 집안에서도 몰랐기에, 조용햇었지. 학교에서야 내가 과외 받으러 보충 수업 빠지는줄 알앗고, 집에서야 도사관에서 공부하느라고 늦게 오는줄 알았고..... 평소에 성실하게 살면, 상황에 따라서, 적당한 거짓말을 해도, 무사히 넘어가지...... 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어른의 조언이지.
중3때, 송창식 콘서트를 하는데, 주말 티멧이나 저녁 티켓은 너무 비싼데, 낮 시간에 하는 공연은 할인이 되어서, 주말 티켓의 반액. 친구와 같이, 교육 연구원에서 학력테스트를 한다고 참여하라고 했다고, 거짓으로 담임한테 말해서, 아무 의심 없이, 조퇴증을 받아서, 갔는데, 그전에도 , 서울 가 지역의 학생 학력테스틀 한다고 해서, 시내 가 지역학생을 뽑아서 간적이 잇었기에, 통햇던 것이지...... 물론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문제 일으킬일 전혀 안햇고.
그래서 송창식 콘서트에 처음으로 갔엇는데, 역시 라이브 컨서트라서, 몹시 만족스럽다고. 원래는 같이 간 친구가 자가고 해서, 나도 같이 간것이엇는데..... 그후로는 15년전쯤, 미사리에서 송창식이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엇는데, 젊을때 만큼은 아니더라고.
락밴드는 나왓지만, 베이스 연주에 아주 큰 재미를 부쳣고, 그후로 몇차례 , 미국에서 미국인친구들의 밴드에 베이스 연주자로 참여를 햇엇는데, 나에게는, 학교 공부가 우선이엇고, 기타 연주는 취미엿기에, 갈등의 순간에 선택은 아주 간단햇지.
고등학교땐, 대학에 들어가면, 밴드를 결성해서 대학가요제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 만나게 된 침구들은, 성경모임에서 기타 연주자로만 초대를 해서....
한국에서는 종종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서, 땜빵으로 전자기타나 베이스기타를 밴드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어서, 나른대로 즐거웠엇지. 아는 사람은 인정을 해주는 실력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한동안은 악기를 다룰 여유가 없었다가, 대학에 다니면서 , 다시 통기타를 해서, 혼자서 치곤 하였는데, 미국식 아파트에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알테네데, 방음이 잘 안되어서, 시끄럽다고 아파트 매니저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혼자만의 취미로는 별로 유지 하지 못하고 있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를 하게된 경정이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잘못 선택한 경우였는데, .... 그전에 다니던 대학은 수학, 물리학을 공부 하기에는 최고였으나, 학교도 작고, 강의 과목도 몹시 제한적이어서 , 갑갑한 면이 있었는데, 다른 대학으로 전학을 하게된 주된 동기는, 새로운 학교에는, 클래식 기타 전공이 있어서, 수학을 공부 하면서도, 미술사도 공부하고, 클래식 기타도 부전공할수 있다는 것이엇지.
전학해서 한동안, 매일같이 적은 시간이라도, 클래식 기타 연주를 하면서, 정신 노동을 효괒거으로 나누어서 할수 있는것이 좋기는 하엿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다 보니, 그 학교가 클래식 기타전공에게 아주 좋은 학교도 아니엇고, 또한 그 사이에 나의 전자기타나 베이스기타 실력이 거의 session man 수준으로 높아졌기에, LA 의 여러 밴드에서 오디션 제의가 먼저 왓을 정도였는데, 객원 연주라로는 여러번 참여를 햇지만, 음악으로 밥벌이를 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주어지는 기회는 , 아주 정중하게 사양을 하는 법을 배웠지.
거기에다가, 실로폰 연주도 하다보니, 밴드에서는, 락음악뿐 아니라가, 다른 악기와 다른 장르의 음악도 종종 보여주는 기회를 , 나는 취미로 아주 좋게 활용을 할수가 있었지.
결국엔, 그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 전공을 포기하고서, 그냥 수학만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취미로 클래식 기타 치기는 계속 되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연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
대부분이 피아노로 치는 소품을, 난 기타로 치는 것이 혼자만의 취미가 되었는데, 전공으로 하기에는, 학교가 더 깊은 교육을 시킬만큼 교수진이 않되더라고.
대학때 기숙사에 살면서, 혼자서 , 기타저럼 매니저한테 시끄럽다고 경고를 받지 않고서 연주를 할수 있는 악기가, 기보드/미디 음악이엇지. 그래서 싼 키보드를 사고,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으면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는데,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기에, 피아노 치는 실력은 없었지만, 기타를 치면서, 리듬 기타를 치면서, 코드를 잡고, 그 코드는 피아노에서 잡는 코드와 온전히 똑같았기에, 빨리 키보드 치기에 적응이 되었지.
거기에다가, 콤퓨터에 연결을 해서, 미디음악을 하게되니까, 이건 완전히 신세계. 매일 콤퓨터로 일을 해야 하는데, 틈틈이, 미디 음악도 하니까, 효율성도 높아지고, 음악을 하는 재미도 커지고.
한 십여년을 전자음악/미디음악에 빠져 잇으면서, 합동 독주 연주회도 꽤 앴었고, 동료들 일부는, 지금까지도 그 때의 기회로, 할리우드에서 음악인으로 아주 잘 나가고 있는데, 난 전자음악도 취미였을뿐, 바벌이로 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오는 기회가 많아도 잡지를 않았슴.
특히 80년 후반, 그당시 전자키보드중에서는 제일 싸기는 하엿어도 모든 기능을 갖추었던, Korg-1 을 그당시 시세로, $1,200 에 사서, 전자음악을 하니까, 완전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됨. 여럿이 모여서 , 레코드 취입도 하는등, 취미치고는 아주 활발하게 하로당을 했는데, 나만의 독주 연주 CD 를 내지는 않았는데, 그건 조금 아쉬운점. 좀 더 부지런히 연주해서, 연주 CD 한장은 냈어야 했는데... 그 마 만큼 전장음악 연주를 많이 햇엇슴. 지금은 단 한곡 연주한 곡이 남아있는데, 카세트 테이프에서, mp3 로 변환을 해서, 음질은 않좋아도, 그래도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함.
학생 시절엔, 교내에서 talent show 가 꽤 되어서, 학생들이 나와서 경재보다는, 같이 즐기자고 갖가지 악기 연주 경쟁을 하는데, 공부하랴, 연구소에서 일을 하기에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연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계속 거절했던 , 학생회 관계자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많이 남아 잇을 정도로, 초대를 많이 받앗는데, 거의 다 거절을 햇을정도.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이 있다면, 잠을 더 자고 싶엇을뿐.
일반적인 기타 연주를 할 학생이 많다보니, 실로폰 연주나 , 잘 앙려진 클래시같 기타 연주 혹은, 싸이키델릭이라도 불렷던, 전자기코드 연주등을 부탁 받았는데, 그저 피곤해서, 거의 다 사양을 햇엇는데.....
그런것이 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는것이, 여름 방학은 석달이 되고, 여름 방학 중간쯤 되면, 편히쉬었기에, 하고자 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럴때 연주 부탁이 오면, 금새 열심히 연습을 해서, 모임이나 외부 공연에 참가를 하게 되는데, 그럴때, 학중에 누가 부탁한건 안들어주더니, 누가 부탁한건 들어주더라라는식의 , 외부의 나에대한 평가가 나오니까. 대인 관계에 문제가 심하게 생기더라고. 난 학기중에는 너무 피곤해서, 잠이 부족해서, 학과 공부와 연구실에서 일하는것외의 다른 것은 할수가 없엇을 뿐인어었는데....오해가 생기다니.
그렇다고, 방학때만 연주를 한다는 것은 아니고, 학기 중간에도 너무 피곤하니까, 쉬면서, 혼자서 이런 저런 악기 연주에 몰두하기도 하고, 그럴때 연주 초청이 오면, 연습을 햇으니까, 참여을 하기도 하고.
한 5년전쯤에 , 그때 일하던 아주 큰회사에서는, 분기가 끝날때마다, 파티를 열었고, 다국적 회사이기에, 여러나라 출신들이 각국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는데, 그럴때, 여기는 미국이니까, 미국에서 잘 알려진 노래를 자기 나라 악기로 연주를 하면, 음색도 특이하고, 익숙한 노래라서 반응이 좋을테넫, 대부분 그러지는 못하더라고. 어느날 창고에 보니까, 목관실포폰이 있더라고. 관리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실로폰이라는 이름도 모르고, 악기로만 알고 있고, 오래준에 누군가가 산것이라고만 알더라고. 음이 제대로 남아있기에, 이것 내가 연습해서, 다음 파티때 연주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환영한다고.
그래서 한곳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는데, 파티에서는, 중동으로 파견된 군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하다면서, "Tie a yellow ribbon around old oak tree" 라는 70년대 대 히트곡 이엇는데, 아직도 해외에 파견된 군인들이 빨리 귀향하라고, 집 정원에 큰 나무에, 노란색 리본을 달 정도로, 요사이도 잘 알려진 노래.
결코 최고이 연주는 아니엇으나, 특이한 목관실로콘 소리를 처음 들어본 직원들이 많았고, (어린이용 7음짜리 장난감 실로콘은 다들 들어럿 알고 잇지만), 아주 익숙한 노래엿기에, 자식이나 친척중에 해외로 파병된 군인들이 잇는 직원들은, 약간의 눈물을 보였는데..... 몇몇 직원은, 자식이나 친척이 홰외 파병중에 전사한 경우도 잇어서, 울음 바다가 되면서, 파티가 끝났던 적이 있었지. 내 마음은 그래서 연주를 한것이 아니엇는데. 어쨌건 파티는몹시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후일담. 다음날부터, 주차하고 사무실로 걸어들어가는데, 거의 모든 직원이 알아보고서, Good Morning 해주는데, 인사 다 받아주는 것도 쉽지가 않더라고.
음악으로만도 밥벌이가 가능했을 정도여서, 때론 파트타임으로 연주를 해도, 아주 충분한 용돈을 벌기는 하엿는데, 취미엿을뿐. 전자 음악은 사정이 조금 다른데, 콤퓨터 애니메션을 하며서는, 내가 전자음악을 할수 있다는것이, 외부의 음악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 주어서, 아주 효과적이더라고.
(January 1, 2020)
Copyright© 2016-2020 Daniel SW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