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47: 기억에 남는 사람들 (24): 혼자 남으 큰 지벵서 사는 시베리아의 할머니

난 소비에트 시절에만 방문을 하였고, 러시아연방이 되어서는 방문할 기회가 없엇는데, 러시아는 훨신 자유스럽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밝은 사회가 되엇다고들 함. 하지만 소비에트 유니온 시절도, 그리 어둡다고 느끼지는 않았고, 몹시 차갑다고는 느꼈지만, 완전히 통제된 시대엿기에, 몹시 자유스러운 미국에서 갓기에, 도특한 분위기가 오히려 더 좋게 느껴졌슴.

특히 여러 고등하교 대학교를 방문 햇는데, 대부분 군사학교였는데, 멋진 제복을 입고서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아주 인상깊게 보았슴. 미국 대하에서만, 아주 자유스럽게 옷을 입기에, (한국에서 보면 옷을 너무 못입는 정도), 쫄병이 아닌 장교 군복을 입고서 공부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슴.

하지만 그 당시는 냉전시대라서, 그들이 몇년 잇으면, 우리의 적이 된다고 햇을때는 몹시 슬퍼졌슴.

시베리아의 아주 외진 시골에 소비에트정부가 보내준 가이드와 함께 갔는데, 가이드가 우리가 원하는대로, 의무적으로 보아야 하는것만이 아닌,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줄 정도로 , 우리를 배려해 주었슴. 시베리아는 일년내내 삭막하고, 여름엔 눈은 없어도, 몹시 삭막한데, 어느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 집이 여러채 있었고, 한집은 꽃으로 잘 가꾸어 놓은것이 인상적이엇고, 우리도 쉬었다 가야해서, 저집에 가보자고 하니까, 가이드가 이곳 시골집엔 워낙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잠깐 들리는것이 부담이 된수 있다고.... 하지만 부탁해 보겟다고.

시베리아는 여름이라도 아주 쎈 찬바람의 불었고, 일단 우리는 집안에 들어가니 바람을 피해서 좋았는데, 미국팀 12명에, 러시아쪽 가이드와 운전사 3명, 동네 이장쯤 되는 사람 2명 , 18명이 들어갔는데도 그리 쫍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큰 집이엇는데, 할머니 혼자서 사신다고.

할머니 혼자서 작은 텃밭도 가꾸고, 꽃을 화분에 키워서 집을 장식을 햇다고. 손님이 거의 찾아오지 않아서, tea 가 모자랄것 같다고 하시면서, 아주 오래되고 , 녹슨 양철통에 든 tea 까지 찾아서 , 끌인물에 주는데, 할머니 한분이 사는곳 치고는, 너무도 살림살이가 많더라고.

혼자서 다 관리하기 힘들지 않냐고 하니까, 힘들어도 한다고. 도시나 영로원에 들어가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니까, 이집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고. 너무 힘들지 않냐고 하니까, 너무 힘들지만 , 그냥 이집에서 살겟다고.

우리가 계속 질문하고 설득을 하는것을 귀찮아 하면서도, 다 대답을 해주는것이, 똑같은 권고를 엄처아게 받았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식의 답변이엇고, 우리들과의 대화도 즐기는듯 하였슴. 우리 8명은 물리학과 학생들야 20대 초중반 이었기에, 활기찼고. 우리들도 러시아아어를 조금하거나, 좀 하거나, 아주 유창햇기에, 대화는 강이드가 없이도 가능햇었슴.

집안의 tea 를 우리가 다 마신것이 미안했는데, 우리가 타고다니던 미니버스에, 그당시 심각한 소련의 식량난을 걱정해서, 아주 충분히 갖고 다니면서 배고프지 않게 준비를 햇기에, 우리가 다 먹은 이상, 소세지와 tea 를 주기로 결정.

근데 왜 나이든 할머니 혼자서, 왜 비교적 큰집을 혼자 관리하면서 지내나 의문도 들었슴. 동네 이장쯤 되는 사람은, (아마도 동네 공산당 간부였겟지) 집을 넘기고 양로원에 들어가라고 계속 설득중이엇고, 혼자서 관리는 잘햇지만, 집이 작아도 관리하기가 힘들것 같은 할버니의 모습에,

우리들도 , 더 살기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 어떻겠냐고 권하기 시작했는데.... 응접실 벽에 걸린 사진을 가르키면서, 광산에서 일하던 남편도 죽어서, 뒷뜰에 묻혔고, 군인이엇던, 큰아들, 작은아들, 그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때 죽어서, 뒷뜰에 둘다 묻었는데, 그런 뒷뜰을 놔두고서, 어디에 가도 편하게 못산다고 하는데......

그때의 그 할머니의 처절하고 슬픈 눈빛과 목소리 ................

우리 아들들도 학생들 또래 엿는데 ..................

비록 학생들의 적국의 군인이엇지만....................

내가 가면, 뒤뜰의 내 두 아들과 남편의 무덤은 누가 돌보나................

슬픔을 참으면서, 태연한척 말은 하엿지만, 계속 줄어드는 목소리와 , 슬픔에 떨리는 목소리..............

그 말을 다 알아들은 우리는, 집안에 잇을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고, 러시아어를 잘 모르는 학생은, 궁금은 한데 몹시 심각한 이야기 같아서, 어색해 하고....

감정을 추스리는것이 몹시 힘들었고, 간신히 감정을 조절 하고서, 미니버스에 있던 싸가지고 다니던 음식과 마실것 모두를 할머니집 식탁에 옮겨놓고서, "건강하세요" 만 하고서, 더이상 아무말도 못하고서, 미니버스로 목적지로 가면서, 다들 아무말도 없이 갔었지.

하긴, 그 할머니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겠지만, 시베리아의 추위도 정말로 견디기 힘든데.

그 당시 냉전시대엿고, 소련의 물리학은 미국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고 그래서 소련의 물리학 교과서를 참고하면서, 미국의 물리학교과서로 공부를 했었고, 과학용 러시아어 교재도 있어서, 조금마나 노력하면, 영어사용자는 비교적 쉽게 러시아어를 배울수가 있었슴.

수소폭탄은 미국보다 소련이 먼저 성공을 거두었다고들 하고, 사하포프 박사등, 러시아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련의 물리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씀. 솔제니친의 시베이아 수용소에 관한 문학등, 미국과 소련은 냉전시대 엄청난 경쟁을 하였고, 물리학과 학생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물리학 교과 과정이 결코 낮지 않았음에, 더 한숨....

그러다가, 소비에트가 , 공산주의 이론의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서 해체될줄은 예상도 못했슴.

러시아도 전쟁을 많이 해서인지, 위와 비슷한 슬픈 이야기가 많은것 같더라고. 한국인 친구 하나도, 얼마전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의 유명한 섬에 갔는데, 몹시 친절한 할머니가 차 대접을 한다고 해서 , 집에 들어가니, 위와 비슷한 스토리가 있어서, 울다가만 나왓다고. 친절히 차대접 한다고 해도, 집에 따라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감정 조절이 힘들다고.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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