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45: 기억에 남는 사람들 (22): 고아원 보낸, 친구의 두 조카

이건 안쓰려던 야사중의 하나인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은데, 또 쓰게 되네.

아주 어린애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단순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것 못하게 하면, 그냥 울고 마는데, 조금 더 커지면, 운다고 무조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지. 그래도 울어보고 뗑깡도 부리고 하는데, 어른 입장에서는, 그리 우는것이 귀엽기만 하지.

어른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울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고나서, 장난감이나 간식을 더 사주고서 만회하려고 하지. 물론 그론것이 통하는 나이는 아주 어릴때인데, 내가 독신이어도, 조카나 친구들 아이들도 많다보니, 남들과 같은 경험을 하게되지.

이와 비슷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는데, 대표적인 한 에피소드는, 친구 형이 결혼을 했는데, 십년이 넘도록 애가 안생겨서 부부가 고민을 해도, 인위적으로는 만들수가 없었는데, 그 형이 그만 하루밤 일탈로 애가 생겼고, 복잡한 과정 다 생략하고, 친자확인에서 그 형 아기로 판명되어서, 그 친구 부모님이 , 우리가 대신 키운다 하면서 데려와서 키웠는데, 첫벗째 일탈후로, 술집 여작 임심을 했다고 해서, 그 형과 형수는 싸움을 멈추지 않다보니, 집에 잘 잘 안들어가고 하다가, 다른 술집여자와 다시 일탈을 하고, 그 여자도 임신을 하고,.....

첫번째 애가 태어나고서, 6개월 정도 후에 둘째가 다른 여자 한테서 태어나고, 그 형수는 남의 애를 둘씩 못키우겠다고 난리고, 그 형은 할말이 없는데, 애들 둘은 아주 귀엽거든. 그 부모님은 힘들어도 우리가 키울께 하면서, 금전적으로 두 여자에게 엄청나게 보상을 하고서, 애들 둘을 데려다가 키우기 시작했고. 내 친구와 부인은, 자기 애들 둘도 키우기 힘든데, 노인네 둘이서 갓난아기 둘을 키운다고 하니까, 친구 부인도 힘든데 가서 도와주어야 하니 몹시 힘들고. 그래도 애들은 귀여움 많이 받으면서 컸는데, 형이 낳은 애들이 남매라서, 더욱 귀염을 받았지.

그리고 친구와 부인은, 본의 아니게 지기 애들 귀저귀 띈지 오래되었는데, 다시 형의 애들 둘 귀저기 갈아주느라고 스트레스 쌓이고, 우리가 그 친구집에 가면, 그 친구 형도 , 겨우 한 살위라서, 친구형이라가 보다는, 친구같았고, 그리 바라던 애를 낳았기에, 집에서는 애를 항상 껴안고 살았고. 애들이 기다가 걷다가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귀여움을 유난히 많이 받앗지. 물론 그 형 부인은 애를 못난것이 자신 책임이니까 , (흔한 의학적으로는 둘다 문제가 없는데 안생긴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 였지만, 이혼은 안한상태였고, 그 형은, 거의 부모님집에서 애들보면서 자고 가고.

그 친구는 종종 조카돌보면서, 어린이 장난감이나 옷은 계속 좋은게 나오고 값도 훨씬 비싸지기에, 내 새끼들도 이리 비싼것 못사주었는데, 조카들것은 이리 비싼것을 사주고 잇으니 하면서, 한숨을 종종 쉬었고, 밖에서 친구들 모임을 갖으려다가도, 그 형을 생각해서, 집에서 음식 배달시키고서 술을 마시자고 하면서, 돈을 절약해서, 그 형의 애들한테 선물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 형과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분다 돌아가시는 비극이 생김.

이 친구, 충격으로 많은일을 해결해야 했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 친척이 별로 없는 그 친구를 도와주기는 했는데, 사건 처리후 남는것은, 진자로 힘든문제.

도저히 조카둘을 입양해서 키울 자신이 없다고, 이 친구도 생각하고, 그 부인도 생각했는데, 애들 양육만이 문제가 아니라, 둘다 술집에서 만난 여자에게서 낳았기에, 부모님과 형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보상금도 세사람몪으로 많이 나왔겠지 하면서, 혹시라도 애들을 빌미로 떼먹을 몪이 있나, 장례식중에도, 그후에도, 깡패들을 동반애 와서 난리를 치고 갔기에, 앞으로 문제가 커지면 거졌지, 양육권을 돈주고 판 엄마로 남을것 같지가 않아서 였지.

거기다가 형수는, 자기애도 아닌데, 못 키운다고 했고, 애들 얘기는 다시 꺼낼수가 없었다고.

남은 방법은, 어린 애들을, 고아원에 맡기는 방법뿐. 엄연히 그 친구 집안 핏줄이기는 한데, 고아원에 맡기는 것도 비도덕적이나, 애들 엄만 때문에 앞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골치썩을 것은 명확했고, 그렇다고 어느 친척도 애들을 데려다가 키우려고 하지는 않고, 계속 이 친구를 설득해서 , 키우라고만 하고. 근데 이 친구 부부는 도저히 못 키우겠다고 하고.

듣기로는 애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온날, 이 친구 애들도 아들, 딸인데, 조카들보다는 열살정도 많기에, 이제 막 걷다가 뛰기시작하는 애들이 너무 귀여워서 같이 놀아주기는 하는데, 두고와야만 하니까 눈물을 보이는데, 남겨진 애 둘은 , 정말로 자신과 부인을 후회할만큼 엄청나게 울어 대는데, 고아원 선생은 아주 냉정하게 애들을 데리고서 들어가더래.

원래는 주말에만 찾아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하도 않되어서, 주중에도 찾아가고, 주말에도 데리고 나와서 하루 재우고 데려가고 햇는데, 고아원 선생들은 애들이 적응하기 위해서, 한달에 한번 정도만 찾아오라고 하더래.

그 고아원이, 예전에 내가 알던 목사님이 원장으로 계셨고, 문교부에서 일하는 친구가 관여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고아원 운영자들과 잘 알기에, 내 나름대로 그 애들을 더 신경써 지기를 바랬는데, .... 현실에 빨리 애들이 적응을 해야지요 하더라고.

나도 그 애들하고 같이 놀아준적도 있기에, 나를 보면, 삼촌 친구라고 알아볼정도, 말은 겨우 배우기 시작햇을 나이인데, 고아원에서 맡겨지고서도 1-2년을 내가 한국에 갈때마다, 찾아 갔고, 가는김에 애들에게 초코렛이라도 선물을 사기지고 갔었지.........

애들이 무엇이건 가지고 놀다가, 어른이나 누가 뺏으면 울기부터 하는데, 어른들이, 나나 친구들이, 우는 모습도 귀엽다고, 일부러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기도 하고, 그러면 울면, 가지가 있던 과자를 주면서 달래기도 하고..... 애들도 알지, 삼촌 친구들이 오면, 과자를 사오면, 직접 안주고, 울린 다음에 준다는걸.....

일때문에 고아원에 자주 방문을 했고, 어른을 위해서는 원두커피를 사갓는데, 애들 둘을 위해선, 장난감이 있는 과자를 사갔는데, 갈때마다, 애들이 반응이나 감정 표현을 안하는 것을 느끼겠더라고.

처음엔 우리를 보면, 어른 내 손뒤에 과자를 숨기지 않았을까 찾기도 하더니, 갈수록 우리들곁에 못오고, 과자를 직접 주어도, 받아야 되는지 않되는지, 옆에 선생님 누치먼저 보고, 귀엽다고 앉아서 들어줄려고 가까이서 보면, 그 어린애가 울음을 참고 꾹 참고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

그러면 나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지고........ 볼일 마치고, 돌아갈때, 아저씨들 갈께 하면서, 인사를 하려하면, 애들이 순간적으로 따라갈까 말까하는 머뭇거리는 것을 쉽게 느끼는데, 우린 과감히 돌아서서 가다가, 슬쩍 뒤돌아 보면, 애들은 선생님손에 끌려서 원생들 방으로 가면서도, 슬쩍 우리는 보는데, 울면서 가는것 같더라고.

그 고아원에 갔다온 날은, 우리 친구들도 다 우울해 지는것이, 애들이 엄청나게 울음을 참거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였지. 다들 결혼한 시기가 달라서, 총각부터, 갓난애부터, 중학생의 학부형까지 다양 햇는데, 왜 남의 애에 이리 연민이 가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우울해 햇었지.

내가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하고, 친구들대로 따로 가기도 하고, 1-2년을 그랫는데, 그 친구들도 다 똑같이 느낀 것이지.

한 친구는 밖에서만 본것이 아니라, 방에 들어가서 같이 놀기도 하엿는데, 예전 식으로 장난을 치려니끼, 아직도 어린 나인인데, 운다고 해결이 될것이 아니라고 깨닭았는지, 울지는 안고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기만 하더라고. 고아원에서 많은 고아들속에서 몇명의 선생들에게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기에,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신경을 안써주는 분위기에서, 울어보았자, 자기 목만 아프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닭기만 한것같다고.

우리야 단순한 어른일뿐 아니라, 교육가 , 심리학자, 행동과학자등이 있었기에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지.

나중에 듣기로는, 딸애는 하도 울기에, 선생들이 경기 일으킬때 까지 울어도 무시해 버린다는데, 여섯시간을 울어도 아무도 달래주지 않자, 그후로는 우는 것을 뚝 그쳤다고........

내가 마직막으로 방문을 햇을때는, 더 이상 그 고아원을 방문할 일이 없을것 같아서, 토끼모자와 거북이 모자를 선물로 사갔는데, 그걸 주었더니 얼마나 좋아 하던지,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고 바빠서, 내가 작별 인사를 할 여유도 안주더라고. 그냥 그대로 작별 인사가 없이 가는것이 오히려 다행 이엇겟지. 우리 친구들도, 그 고아원에 굳이 들릴 이유가 없어서 안 들렸고.

근데 그 후로도, 울어야 되는데 못 울고서 참고 잇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여러번 보았는데, 이 경우가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

그 친구 한테는, 거의 20년이 된 지금도 소식을 종종 물어보는데, 선생들이 정 떼야 한다고, 한달에 한번이상 오지 말라고 해서, 어쩌다갸 한번 들렷고, 후원금만 계속 보냇다고. 18세가 되면 퇴소해서, 독립적으로 살아야 하기에, 두애을 따로, 원룸을 얻어 주엇는데, 한애는 생모가 나타나서 원룸보증금을 담보로 이상한짓 해서 들고 튀어서, 거리로 나 않게 되엇지만, 네가 알아서 살아가라고만 했다는데. 다른애는 그 원룸에 계속 살고는 있는것 같은데, 굳이 만나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친형 핏줄이기는 해도, 도저히 더 가눌수가 없었다고. 보육권에서 나와 독립을 해서는, 명절때라도 밖에서 만나자고 하엿다는데, 별 얘기없이, 밥만먹는데, 너무 불편해서 , 꼭 소화불량이 된다고.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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