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44: 기억에 남는 사람들 (21): 두번째 파양되었던, 친구 형의 입양아 |
지난 며칠간 고아원에 관련된 야사를 올렸더니, 고아원은 나쁜 의미가 있다고, 근래는 보육원으로 불린다고 고쳐써야 한다는데, 내가 경험한 것은 오래전이고, 그땐 고아원으로 불렷기에, 그냥 고아원으로 부르겠슴. 보육원이라고 쓰려고 하니, 내가 모르는 남의 얘기를 쓰느것 같아서, 다시 고아원으로 고쳤슴.
이것도 친구 형집안 얘기인데, 결혼한지 오랫동안 애가 안생겨서 여러가지 방법을 써도 애가 안생기니까, 친구 형은 딸을 양자로 들이자고 하는데, 형수나 부모님은 절대적으로 반대.
근데 고아원에 가서, 갓난 아기를 데려와야, 애기가 기억이 없어서 좋을것 같았는데, 좀 컸는데, 몹시 수줍어서 대답도 잘 못하는 애가 몹시 눈에 간다고, 손 잡고서 걸어서 데리고 왔다는데, 애가 한번 파양을 당했기에, 몹시 수줍어 한다고, 다른 애를 택하라고 했는데도, 그 형은 그 아이을 선택.
부모님한테도 환영을 못받았지만, 그나마 기저귀는 끊었기에, 형수가 애를 가꾸면서 데리고 다니면서, 가족이 되어 가는가 싶엇는데, 그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
복잡한 집안 일 처리를 하는데, 입양한 딸이 가장 문제가 됨. 형수는, 친딸도 아니기에, 재산 일부 떼갖고 나가서, 이 친구 집안과는 인영을 끊고 살면 되는데, 법적으로는 그 형수 딸. 부모님은 파양해서 고아원으로 보내라 하고, 이 친구는 애가 한번 파양되어서 왔는데, 어떻게 또 파양을 시키느냐고, 하지만 이 친구가 입양해서 기를 마음은 조금은 있었는데, 이 친구 와이프는 절대로 못 키운다고 하고, 결론은 파양해서 고아원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
우리 친구들이 , 이 친구집에 놀러가면, 몹시 수줍에 하면서도, 과자 사주고 인형도 사주고 하니까, 귀여움을 떨면서, 노래도 부르고 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고 해서, 학용풒도 새로 사고, 기대가 컸고, 힘들지만 즐거운 초등학교 1학년을 막 시작했는데, 비극이 생긴것이었지.
초등하교 선생이나, 고아원 선생이나,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봄학기가 끊난후에, 아이를 전학시키라고 권했지만, 이 집안 식구들 누구도, 집에서 더 이상 키우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멀리 떨어진 고아원과 현재 다니던 하교를 통학 시켜줄 의도도 없어서, 빨리 고아원으로 돌려 보내려고만 하였기에, 고아원에 데려다 주기로 한 날은 ,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였는데....
애가 한번 파양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느낌으로 알고 있었고, 또 파양을 당하는 것이 , 본인엑게 몹시 서러웟는지, 아이 짐을 모두 싸서 가방에 넣는데, (그 나마 친구만 동정심을 갖고 있었고 신경을 썻지), 다른 식구들은 워낙에 입양을 반대해서 , 신경을 거의 쓰지 안았기에, 정성스레 짐을 싸려고 하는데, 애가 울기 시작하더니....
또 버릴거면 데려오지나 말지 하면서,
그애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지, 그 애 맘속에 그렇게 많은 생각이 있었늦지, 그 애 감정이 그래 풍부했는지 몰랏을 정도로, 울면서 한탄을 하는데, 지난 5월 한국 방문중에도 이 친구를 만났는데, 그 때 그 아이가 울면서 한탄하는것 보다, 더 감정적으로 구구절절한 것은, 어떤 노인네가 인생의 말기에 한탄을 하는것보다 더 슬펐다고.
이 친구가 아이를 고아원에 차로 데려다주고서, 돌아오는데, 아이는 혹시나 삼촌이 맘이 바뀌어서 다시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것 같더라고. 친구는 입양하고 싶지만, 와이프는 이혼 한다음에 데려 오라고 했으니, 맘이 안편해도 그냥 올수밖에 없엇다고.
그러고나서 한번도 다시 찾아가지를 않앗는데, 고아원에서는 , 다시 입양할 마음이 있는지 그 친구에게 몇번 연락이 왓엇다고 하더라고. 자기 자식도 잇는데, 와이프하고 이혼을 할 마음도 없었고. 근데 솔직히 말하기를, 뿌리를 모르는 아이기에, 입양에 별로 찬성을 하지를 않앗다고. 형이 바람이 나서 밖에서 낳아온 아이였다면, 부모도 반대를 안했을것이라고.
우리 친구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엇던 친구네집 상황.
내가 2006년경부터 압구정역 부근의 원룸에 살았는데, 집에서 음식을 안하니까, 편의점에 자주 들려야 하는데, 원룸건물 바로옆에, 미니스탑 편의점이 있어서, 자주 들릴수 밖에 없엇지. 집에 들어가지 전에, 포치의 테이블에서 맥주한캔을 하고 들어가기도 하고. 먹거리도 사러가고.
근데 한번은 가서 물건을 사러 들어갔는데, 어린 여직원이 되게 불편해 하더라고. 종종 밤 12시가 넘어서 가기도 하지만, 캐셔 여직원 혼자 일하는데, 남자 손님 혼자 들어간다고 무조건적으로 그리 불편함을 보일 정도로, 내가 범죄자로 생기지도 않았고,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주로 맥주나 도식락이나 빵을 사고서, 지불을 하면서도, 처음엔 불편하다가 기분이 나쁜 상태가 되더라고. 때론 주인이나 다른 앏바하고 같이 있으면, 그 사람들보고 계산을 하라고 하고.
그래서 한번은 , 가게 주인도 옆에 있을때, 내가 직접 물어보았지, 내가 왜 불편해요? 하니까,
어저씨를 보면, 두번째 파양 될때가 생각나서요, 하더라고.....
그때 나도 아----- , 하면서 예전 친구네 형 일이 생각이 나더라고. 가게 주인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궁금해만 하고, 난 까맣게 잊었던 일이라서, 아 그랬구나 외에는 달리 할말이 없었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밤 12시가 훨씬 넘었지만,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얘기 했는데, 그 친구도 , 파양하면서 고아원에 데려다 주고 나서는, 다시 찾지도 않았고 연락도 안했다고.
그 다음날 저녁대, 그 친구가 옆에 편의점에서 혼자 맥주마시고 있다고, 나오라고 하기에, 만났는데, 그땐 파양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만 하더라고.
그리고 며칠 후에 또 왔는데, 부모님들을 전혀 관심이 없는데, 그렇다고 그대로 이대로 다시 인연을 끊어야 하는지 모르겟다고, 그 친구는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것 같더라고. 한번 크게 상처를 주엇기에, 다시 안보는 것이, 도와주는 것일거라고 했는데. 나도 원룸옆에 있는 그 미니스탑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기 시작했고.
일년후쯤 다시 가보니, 알바를 관둔것 같더라고. 가게 주인은 그대로 였는데, 물어보니까, 상황 설명을 들었다고, 잠깐 이지만 아주 행복햇던 시간이엇고, 삼촌 친구들이 오면, 과자도 사오고 인형도 사오고, 귀여워 해주어서, 그호로도 그때만큼 행복하게 느낀적이 없었기에, 삼촌 친구들 얼굴을 오래 되엇어도 다 기억을 했다고 하더라고. 난 얼글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지난 5월 한국 방문때 이 친구를 만나서 예전 얘기도 하엿는데, 그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것이 가장 가슴 아프게 남아서 가슴을 항상 찌르지만, 입양햇던 손녀가, 파양되어서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짐을 쌀때, 아이가 울면서 한탄을 했던 그 모든 말들도 계속 가슴을 찌르면서 남아 있었다고, 하시더래.
그렇다고 입양한 아이를 친손녀 처럼 받아들익기는 누구에게도 힘들었고.
이 글에서 빠진것이, 애가 얼마나 울면서, 한탄을 햇을까 하는것인데, 그당시 비디오카메라가 있어서, 애가 노래하면 찍어주고 했는데, 고아원으로 데려다 주는날, 이 친구가 짐을 싸면서, 비디오 테이프로 녹을을 햇기에, 그 모든 과정이 다 녹음되어 있어서, 우리도 나중에 다 들을수가 있엇기에, 가슴에 쓰라리게 남아있슴.
내 특기인, 비디오 테이프에 있던 영상을, 콤퓨터 동영상으로 변화해서 , 쉽게 보관하고 돌려볼수 있게 하여서, 친구들이 나누어 보게 되어서, 더 가슴에 쓰라리게 남아있슴.
또 버릴거면 데려오지나 말지, 하면서 우는것은, 정말로 가슴이 메어지더라고.
원가에 슬픈 상황을 경험하니까, 그 어린 나이의 일을 다 기억하고, 두번째로 파양이 되니까 , 그렇게 격한 감정을 보여주는데, 어린애의 어휘가 제한되어도, 아주 극하게 할말은 다 표현한 것에 놀랐지. 그냥 평범하게 자랐던 우리들은, 그 나이때 무슨일이 잇었는지, 거의 기억을 못하는데.......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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