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41: 기억에 남는 사람들 (18): 청계전에서 중고 책방을 운영하던 동네 형

입양이야기 하나 더. 이것은 아는 형 집안 이야기. 내가 중학교때 그 형은 고등학생이엇고, 그 당시 청계전의 중고 책방이 전성기였는데, 도서관처럼 책을 읽을수 있는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그형을 알게 되었고, 꽤 친해져서, 그 형집에도 종종 놀러가곤 하였지.

그 형은 4형제의 막내. 직장인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들만 네명이니까, 여동생만 둘이엇던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는데, 어느 날, 아주 어린 여자애가 살기 시작하더라고. 내가 그집 남자 형제들보다 어려서엿는지, 나보고도 오빠 오빠 하면서 잘 따르기는 햇는데, 그 집 아줌마가 나이도 꽤 되었고, 임신한 것도 못보아서, 이상했는데....

그형 말로는, 집에서 일하던 나이든 아줌마와, 나이 어린 아가씨가 있었는데, (그 당시는 식모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가사 도우미라고 불리지), 그 아가씨가 어찌어찌해서 임신을 하고 애을 낳았는데, 도저히 키우기 힘들어서 입양을 시키거나 아니면 고아원에 보내려고 하기에, 그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일단은 아들넷이 거의 다 컸고, 귀여운 어린 여자 아이를 보니까, 딸도 키워보고 싶어져서, 큰아들이 장가가기 전이고 해서, 일단은 그집에서 키우겟다고 데려왓다고 하더라고.

몇달 키워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아가씨는 시집을 가야 하는데, 신랑될 사람은 자신에게 애가 있는지 모른다고, 애를 고아원에 맡기려고 한다기에, 그 아저씨 아줌마가, 벌써 애들을 넷이나 키워 보았고, 딸을 키우는 재미도 있엇고, 경제적으로는 아주 여유가 있었기에, 양육권을 다 넘기고서, 그 아가씨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엿는데, 법적인 과정을 다 끝내고서는, 얼마 인있어서, 그후로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고.

그집에선 큰 아들만 넷 있다보니, 어린 여자애는 귀엽고, 집안에 웃음을 주는 활력소가 되었고, 딸도 문제가 없이 잘 컸고.

나중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가, 한국을 방문 햇을때, 그 형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그 형은 막내 여동생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는데, 그형의 형들은 신경이 많이 쓰엿던것 같더라고. 여동생이 대학에도 가고, 연애도 하고 하니까, 얼마 안잇으면 시집도 가야 할테니까, 집안 족보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느꼈는지, 여동생의 정확한 족보가 어떻게 되느냐고 큰형이 물었고, 그 형 아버지는, 그간 너희들이 알아온 그대로다 하니까, 큰형은,

아버님이 밖에서 사고 치신것은 아닙니까 , 하면서 물어보니,

그 형은, 아버님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엇고, 막내인 자기 에게만 화를 냈었는데, 큰형한테,

이 새끼가 , 네 아버지 말도 못 믿으면서, 여태것 살아왔냐고 하는등, 엄청나게 험악한 분위기 였다고 하더라고. 한참 꾸중을 듣고나서, 큰 형은 아버님 말을 믿습니다 했지만,

화가 몹시 난 아버지는, 그 당시에는 한국에는 DNA test 가 없었고, 일본에만 실험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유전자 검사를, 일본에 보냇는데, 그 당시 돈으로 250-300만원 정도. 결과는 친자 관계가 아님으로 나왔고.

(그 형이 막내지만 엄청나게 자주 혼난것이, 그 당시 나도 확실히 기억을 하는데, 그 당시 최고 명문인 경기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전교 석차가 720여명중, 718, 719등을 오갔기에, 너무 창피 하다고, 집안엣 엄청나게 혼남. 그 형보다 더 못했던, 720등 이엇던 동창은, 나중에 그 형 소개로 LA 에서 만났는데, 경기고 선생들이, 얘들이 대입예비고사에 붙을지 말지 내기를 햇을 정도. 그 당시 예비고사는, 명문 고등학교는 거의 100% 합격햇는데, 그 둘이 기록을 세울 정도로 워낙에 못해서, 100%가 깨질까봐 걱정을 햇다는데, 예비고사는 합격. 경기고는 100% 예비고사 합격을 유지).

그 여동생이 결혼을 할때가 되자, 제대로된 혈육을 찾아 주어야 하는데, 그집 성씨로 호적에 올라 잇는데, 생부가 누구인지는 일하던 아가씨가 얘기를 전해 안해주었고, 그 당시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아가씨가, 나쁜데 안 빠지고 , 다행히, 소개소개로 식모로 이집 저집 떠돌면서 일을 하다가 그 형집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정확한 신상을 모르고, 옛날엔 어렴풋이 들었지만, 기억도 않나고, 그후로는 다시 연락도 없고.

입양이 되엇지만, 정확한 혈통을 찾을 방법이 없어서, 그냥 늦둥이라고 하고서, 시집을 보냇다고 하더라고. 입양 사실을 숨기고서. 출생이나 입양과정이 깔끔힌 갓은 아니엇지만, 입양알 하고나서는, 그 집안에 20년 넘게 활기를 넣어준 귀염둥이 엿다고. 때때로 신랑이, 자기 부인하고 형님들하고 닮은데가 한곳도 없다고 하면, 괜히 뜨끔하다고.

난 어릴때 이후로는 본적이 없고, 그 형도 연락이 끊긴지 십여년이 넘는데, 그 형 아버님이 화냈던 것을 생각하면, 몹시 섭섭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기 아들들이, 자신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니.....

그 형은, 청계천의 중고 책방을 사서 운영도 하였는데, 나보다 5살정도 많았어도, 친구 같은 존재엿는데. 중고 책발을 운영햇지만, 자신이 읽고 싶은 중고책을 사모으는 것을 더 좋아햇엇는데. 내가 이민을 가면서,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것이 몹시 아쉬웟던 선배겸 친구.

나이가 더 들어서 만낫을때는, 그 형은 북 + 카페를 같이 경영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당시는 북카페라는 것이 전혀 없던 시절.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나면서 북카페라는 것이 한두곳씩 생겼는데, 그 때쯤엔 그 형하고 연락이 끊겨서 소식을 모르고.

2016, 2017년에 한국에 갔을때, 전국에 북카페가 몇군데 밖에 없었는데, 혹시라도 그 형이 하지 않을까 해서, 전국의 북카페 20여곳 이상을 찾아 갔는데, 없더라고. 언젠가 다시 보고픈 형.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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