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238: 기억에 남는 사람들 (15): 법학대신 수학을 택한 영국인 동창 |
이 친구 집안은 지난 300년간 대영제국의 부흥과 함께 커온 집안. 영국 왕실 재산의 일부를 관리하기에, 아주 격조놓고, 전통이 지배하는 귀족집안. 그래서 집안의 전통은, 능력있는 남자는, 회계, 법률을 공부해서, 와실자산관리를 아버지로 부터 배워서, 집안 가업을 이어가는것.
오래전에 영국의 이 친구집을 방문햇을때, 집안 곳곳에 조상 할아버지들의 초상화가, 미술관에서 보듯이, 옛날 옷을 입은채로, 그러져 있는데, 저절로 위축이 되더라고. 이 친국 할아버지는 아주 높은 지위에 있었고 영햘력이 큰데 비해서, 그 아들인 이 친구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가는 정도일뿐, 특출하지는 않았는데,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이 그저 그러면, 손자에게 기대를 할수밖에.
이 친구가 Eton College 에 다닐때에도 명민함으로 튀었기에, 집안에서 기대가 컸다고. 대학은 Oxford 로 갔기에, 예상대로 였고, 전공을 법학으로 하느냐, PPE, (Philosophy, Politics, Economy) 로 하느냐예 따라서, 약간 길이 달라지는데, 어느 전공을 하건, 영국의 정치인과 기업의 고위간부를 점령하는 학맥의 일부가 되기에, 이 친구는 결국엔 집안의 왕실재산 관리를 하는 집안회사를 이어갈 것이기에, 둘중에 어느전공을 하건, 영국 상류사회에 인맥만 많이 쌓으면 되는 상황.
근데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와서, 전공은 수학으로 바꿈..... 집안에 얼마나 난리가 났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노햇는지는 그간 수없이 들었슴. 수학전공이 숫자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생각이지만), 와실재산을 관리하는 신탁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맥을 형성하는데에는 별로 도움이 않되는 전공. 수학을 전공햇다고, 화를 내는 부모도 아주 드물지.
그 친구 말로는, 지가 아버지가 아주 똑똑(?)하지는 않아서,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것을 어려서 부터 아주 자주 보았다고 함. 그래도 집안 가업을 이어갈 능력은 되었는데, 아마도 자기 아버지도 가업 대신에 다른것을 공부하고 싶어했던것 같다고. 자신이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수학에서도 수학 철학을 공부하겟다고 했을때, 정 하고 싶으면, 영국에서 할아버지한테서 계속 혼나면서 공부하지 말고, 더 자유스러운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라고, 그대신 아주 잘 해야 한다고 권해주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왓고, 나와 같은 시기에 C대으로 편입을 한것이지. 그리고 나중에 나하고 같이, I대로 옮겨가서는, 이 친구는 수학과 음악 복수전공을 하면서, Pythagoras 가 음악이론을 정립한것을 수학전공으로 하였지.
옥스포드 대학을 다닐때는 기숙사에 살았지만, 주말마다 집에 와서 묵었는데, 집에 올때마다 할아버지한테서,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혼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고. 주말마도 그런 모습을 보는것이 괴러워서, 미국으로 유학을 왓다고.
학교 동창들 여럿이,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당연히 이 친구 집에도 방문을 하였지. 일단은 집의 규모와 화려함에 감탄을 하고 기가 많이 죽엇는데, 이 친구 아버지는, 영국린, 프랑스인, 백인 미국인, 그리고 중국인과 한국인인 나까지 포함된, 10여명의 친구들의 배경이 다양한것에 많은 호감과 관심을 느꼈고, 우리에게 질문을 하기에 바빴지. 즐겁게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영국 왓리궁전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다음으로 화려할 것이라고. 영국왕실만큼 화려하면 안된다고, 왕실보다 한 등급 아래여야만 한다고.
저녁때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그 즐거웟던 점심, 저녁의 분위기가 완전히 깨지는 분위기. 미국에서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온것도 별로 반갑지도 않고, 집안 법학이나 PPE를 전공하지 않고, 수학을 전공한 손주 녀석이 밉기도 하고, 또한 손주가 집안 가업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집안가업은 더 적당한 전공을 택한, 할아버지의 동생의 집안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할아버지로서는 자기 직계손자에게 넘겨주지 못하는 아쉬움도 컷을 것이라는 설명에 , 이해가 되기도 하더라고.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다 보니, 영국 왕실앞만 아니라면, 손자 친구들앞에서 화를 내는것이 문제가 돌리도 없고,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현을 하고....
이 친구 아버지는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으리가는 생각을 우리도 하게 되더라고.
수년간은 항상 붗어 다녓지만, 각자 전공에 따라서 학교도 연구소도 옮겨다니다가, 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겻는데, 나중에 들리는 소식은, 40대에 아프리카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소식만 들었지. 이 소식을 전해준 친구의 말로는, 그 친구가 숨진후에, 나의 연락처를 찾앗는데, 연락이 않되엇다고 하더라고.
나와 몹시 친햇던 친구였기에, 이 친구의 미국집의 짐을 정리하는데, 내가 가장 확실히 정리할수 잇을것 같아서 나를 찾았는데, 연락이 않되어서, 다른 사람이 정리 했다고. 내가 한참 VR 사업에 바쁘고, 한국과 일본에 자주 오가던 시기여서, 제대로 연락이 닺지 않았던것 같더라고. 대학과 대학원 시절 엄청난 추억과 배움을 남겨준 친구. 교류가 계속 이어지지 못해서 몹시 아쉬었던 친구. 미국에서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햇다면, 난 아마 서른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후에,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결심을 하기가 쉬엇을 거야.
(Januar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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